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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밍웨이 May 30. 2020

경계선을 넘다.

겨울과 봄, 밤과 아침이 공존하는 경계선과 닮은 나의 모습

마음이 어지럽거나 위로가 받고 싶을 때면 산을 찾아간다. 짙어진 푸른 잎 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햇살과 그림자가 어우러진 등산길이 펼쳐진다. 이름 모를 새들의 대화도 엿들어 본다. 푹신한 흙길에 발자국을 남겨도 보고, 바위를 디딤돌 삼아 힘껏 올라가면 정상이 가까워진다. 산에 풍덩 안기고 내려오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산에 가면 뒤엉킨 감정도 정리할 수 있어 좋다. 스스로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 때문에 마음이 힘들었을까?’ 감정의 근원지를 찾아본다. 그리고 나의 마음을 살펴 본다.


2018년 4월 어느 날. 무작정 여행을 떠났다. 무계획의 장점은 순간의 감정에 충실할 수 있다는 것이였다. 동해안을 따라 올라가다 ‘설악산에 가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어 속초까지 향하였다. 설악산 주변 게스트 하우스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일찍 등산길을 올랐다. 내가 살고 있는 경남에는 벚꽃이 흐트러졌지만 강원도는 아직 목련 꽃 봉오리가 솜털을 입고 몽실몽실 올라왔다. 그리고 목련 뒤편에는 봄이 왔지만 산에 눈이 덮혀 있었다. 떠오르는 태양에게 자리를 비켜주지 못한 달이 하늘에 공존하였다. 겨울과 봄, 밤과 아침의 경계선이 나의 위치와 참 많이 닮아 있었다.



누구나 고비가 온다는 직장생활 3년차, 잘한다는 주변의 칭찬이 내 모습인줄 착각하다가 부족함이 속속히 드러나자 한없이 움츠러들었던 나.

 
중2가 지나서 겪는 사춘기는 엄마 마음을 뒤집어 놓았고, 방황이 끝나야할 시기에 반항이 시작되니 서로에게 준 상처로 엄마와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는 나.  


욕심으로 쥐어진 손을 펼치지 못해 그의 손을 놓쳤고, 이제는 털어버리자 생각하지만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어 어떻게 사랑을 만들어갈지 고민하는 나.


경계선에 방황하고 있는 나에게 산(山)이 말을 걸어온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고. 지나가는 과정이라고.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오는 것처럼 너에게도 포근한 봄과 따스한 햇살을 맞이할 수 있는 아침을 맞이할 수 있다고, 경계선에 서게 된 것은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2년 뒤, 2020년 5월의 어느 날.

직장 생활 5년차, 시간이 선물해 준 다양한 경험으로 노하우가 쌓여 여유가 생기고 있는 나.
 
엄마의 잔소리도 능글맞게 받아줄 수 있는 마음이 자라고, 추억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나.

욕심을 내려놓으니 손을 펼칠 수 있었고, 내 손을 먼저 내밀어 주는 것이 아깝지 않은 사랑을 하고 있는 나.  
 

나의 경계선을 넘어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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