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젠테이션 디자인의 정석, 애플 키노트 프레젠테이션
애플은 일 년에 정기적으로 두 번의 큰 프레젠테이션을 한다. 상반기에는 wwdc라고 불리는 개발자 포럼이고, 하반기에는 새 제품을 출시 발표하는 스페셜 이벤트다. 이때마다 애플이 진행하는 프레젠테이션 디자인 스타일은 큰 변화 없이 매번 같은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 스타일은 프레젠테이션 디자인의 정석으로 뽑을 수 있을 만큼 놀랍고, 적어도 십 년 이상 동안 같은 디자인 스타일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하게 까지 느껴진다.
애플의 아이폰 8(그리고 아이폰 X)을 발표하기 2주 전, 삼성의 갤럭시 노트 8 언팩 행사와 비교해보면 애플의 프레젠테이션 디자인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삼성은 프레젠테이션 방식에 엄청난 공을 들였는데, 규모면에서도 애플을 압도한다. 가로길이 48미터의 초대형 스크린가 24미터 정사각형의 바닥 스크린으로 채웠고 그 안에서 화려하게 나타나는 애니메이션 콘텐츠들은 시선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D37VVMda88&t=3336s
어느 발표 스타일이 좋다고 말하는 것이 무의미한 것 같고, 애플과 삼성의 프레젠테이션의 방향은 정말 다른 것 같아 보인다.
다시 애플 프레젠테이션 디자인으로 돌아와서, 챙겨보면, 애플 프레젠테이션 디자인을 보면, 우리가 프레젠테이션을 디자인할 때 꼭 참고해볼 만한 사례들이 많다. 큰 틀에서 보면 몇 가지 규칙들이 있는데, 규칙들을 정리하여놓은 포스팅은 아래를 참고하고, 이번 스티브 잡스 극장에서 열린 2017 스페셜 이벤트에서 디자인적으로 살펴볼만한 점들을 정리해 보았다.
https://brunch.co.kr/@forchoon/14
빛나야 할 건 오로지 제품이다.
프레젠테이션은 그냥 거들뿐, 애플의 프레젠테이션은 항상 제품보다 튀지 않는다.
이번에도 애플 프레젠테이션 디자인은 그 점을 명확하게 지켰다.
이번 애플 프레젠테이션은 애플의 새로운 캠퍼스 내 스티브 잡스 극장에서 열렸는데, 프레젠테이션 디자인이 뭔가 바뀌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팀 쿡이 걸어 나오고, 스크린에 텍스트가 뜨는 순간 내가 잠시 미친 생각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바뀐 점을 찾아보라고 한다면, 배경 컬러가 조금 어두워졌다는 것? 그뿐이다.
위의 이미지 중에 좌측은 2017년 상반기 wwdc 당시 스크린 캡처다, 프레젠테이션 배경화면을 보면 블랙과 화이트의 그러데이션이 넓게 배치되어있는 것이 보인다.
하지만 이번 애플 이벤트 프레젠테이션 배경 디자인을 보면(우측이미지), 확실히 그러데이션 영역이 많이 줄고, 언뜻 보면 거의 배경 컬러가 블랙으로 보일만큼 블랙으로 많이 채워진 것을 볼 수 있다. 블랙 배경화면은 스크린과의 경계를 없애주면서 좀 더 프레젠테이션 내용에 집중할 수 있게 하고, 더 넓어 보이는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좋은 프레젠테이션 디자인을 위한 정석 애플 프레젠테이션 디자인
다른 제조사들이 새로운 제품이 나오면 그에 걸맞은 브랜드명에 대한 로고 디자인을 만들어 홍보하는 반면, 애플에서는 새롭게 출시되는 제품이 그 무엇이든 애플은 따로 브랜드 로고를 따로 디자인하지 않고, 2016년 새로 개발된 샌프란시스코 서체를 활용하여 브랜드 명을 표기한다. 통일된 타이포를 통한 브랜드 디자인은 애플 제품군에 대한 신뢰감을 상징하고, 제품들이 산발적으로 나열되어 보이지 않고, 제품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든다. 뿐만 아니라 키노트 프레젠테이션에 활용되는 모든 서체도 하나로 통일하고 있는데 심플함의 최고를 보여주는, 애플만이 할 수 있는 프레젠테이션 디자인이라고 생각된다.
화려한 이미지도, 영상도 필요 없이 텍스트로만 깔끔한 슬라이드 디자인을 할 수도 있다.
인용구를 넣을 때는 좌측 정렬
숫자와 관련된 내용을 전달할 때는 숫자와 의미에 대한 사이즈 대비로 명확한 스토리를 전달한다.
애플 키노트에서는 제품 출시를 알리기 위한 프로모션 영상이 초반부에 삽입되기는 하지만, 프레젠테이션 도중에, (발표자가 본격적으로 설명이 들어가면서부터는) 영상은 나오지 않고, 시원시원한 이미지로 스토리를 이어가는 형식이 많다. 텍스트도 등장하지 않으며, 오로지 발표자의 각본에 따라 그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보조 이미지들이 시원하게 나타난다. 스티브 잡스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스티브 잡스 이미지가 커다랗게 나오고, 카메라와 같은 기능에 대한 설명을 할 때면 실제로 찍은 이미지 사진이, 그리고 발표되는 제품에 대한 설명을 할 때도 잘 촬영된 고해상도의 제품 이미지를 배치시킨다. 텍스트 설명 없이 감성적으로 촬영된 이미지들은 움직이 없어도 청중들에게 강한 메시지와 울림을 전달한다.
이번에 애플의 페이스 ID를 설명하면서도, 같은 인물의 여러 장의 사진을 이용하여 손쉽게 디자인했을 뿐 아니라, 보는 청중들마저 폭소하게 만들었다.
페이스 ID에 대해 설명을 마칠 때 즈음 프레젠테이션을 함께 보고 있던 아내가 '잉 그럼, 사진을 보여주면 어떻게 되는 거야? 열리는 거 아냐???'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그 순간, 아래와 같은 재미있는 이미지를 통해, '그럴 일은 없다'라고 말해줬다.
히어로 이미지에 대한 포스팅은 아래 참고
https://brunch.co.kr/@forchoon/24
애플 키노트로 초반에 프레젠테이션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 중 가장 많은 실수를 하는 것은 애플 키노트의 화려한 애니메이션들을 과도하게 삽입하는 것이다. 과도한 애니메이션은 절대로 독이 된다. 청중들은 정신이 없어 핵심 메시지를 놓칠 가능성도 있다. (마치 트랜스포머 영화를 보고 나오면 스토리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고 로봇들의 화려한 특수효과만 기억에 남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강조해야 할 부분만 적절하게 사용하는 게 좋다. 애플 키노트의 경우에도 과도한 애니메이션을 사용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으며, 화려한 키노트에 숨겨진 깨알 같은 장면 전환 효과도 없이 cut, cut 형태로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발표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구에만 가끔씩 포인트를 주기 위해 애니메이션이 들어가기도 한다.
애플 키노트는 크게 1단 구성, 2단 구성으로 나누어지는데, 주로 큰 키워드들은 한 줄로 표시할 경우가 많고, 기능들에 대한 디테일한 설명이나, 세부 스펙과 같은 사항들은 아이콘이나 이미지를 왼쪽에 배치하고, 텍스트들은 오른쪽에 배치하는 2단 구성을 많이 사용한다. 이렇게 사용되는 텍스트들은 프레젠터의 설명을 좀 더 명확하게 한번 더 짚어 줄 수 있는 보조 역할을 하는 동시에 스크린 화면에 대한 디자인 요소로 활용되어 청중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1단 2단 구성만으로는 심심한 레이아웃이 될 수 있는데, 가끔씩, 이해를 돕기 위한 파격적인 레이아웃들이 등장하면서 1, 2단의 심심한 레이아웃을 파괴시켜주기도 한다. 발표자의 설명에 따라, 슬라이드 디자인이 자유스럽게 구성이 되기도 한다.
발표자가 직접 만들었다는 곳곳의 증거
자타공인 프레젠테이션의 귀재였던 스티브 잡스는 발표장에서 프레젠테이션 할 내용을 자신이 설계하고 디자인까지 했다는 것은 이미 익히 알려진 사실인데, 현재까지도 그렇게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애플에서 만들어서 발표하는 키노트 디자인을 살펴보면 충분히 아직도 그렇게 하고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디자인을 만들어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있기 때문인데 한 번씩 보고 있으면 따라 만들어 보고 싶을 정도로 (충분히 애플 키노트 애플리케이션만 있다면 당장에 초보자들 조차 구현해낼 수 있는) 단순한 구성이 많다. (아마 삼성에서 진행한 프레젠테이션 디자인을 급히 수정해야 한다고 했을 때, 수정 과정이 매우 힘들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고, 관심 있어하는 것만 보고 들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성향은 프레젠테이션 디자인을 할 때 반드시 고려해봐야 할 문제인데, 기본적으로 사람의 성향은 이기적이기 때문에 슬라이드 속에 아무리 많은 정보들이 들어있어도 청중들은 그냥 눈으로 볼뿐, 모두 다 소화시키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슬라이드 디자인은 최대한 심플할수록 좋다. 슬라이드 디자인을 한다는 것은 청중들에게 내가 하고픈 이야기에 대해 이해를 시킨다는 것인데, 사실 슬라이드 디자인만으로 청중들의 이해를 시키는 것은 무리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발표자의 언변인데 슬라이드 디자인은 언변을 보조해주기 위한 보조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다. 애플도 이 점을 잘 알고 있고, 프레젠테이션 디자인에 적극 활용한다.
애플의 프레젠테이션 구성을 보면 청중들이 발표자의 입에 귀 기울이게 만들기 위해 텍스트와 이미지 정보들은 최소한으로만 제공한다. (단 이미지 퀄리티는 최상으로) 만약 청중들의 발표자의 스토리를 듣지 않고, 화면만 본다면 어쩌면 명확하게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생길 수 있을지도 모를 정도다. 청중들은 실제로 발표자의 유머나 제품이 등장할 때마다 자신의 일처럼 박장대소할 때도 있고, 찬사를 보내기도 한다. 프레젠테이션이 끝나면 마치 한 편의 영화나 연극 한 편을 본 듯한 느낌마저 들게 하는 이유도 이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앞서 설명하였듯이 애플의 키노트 프레젠테이션은 방식과 디자인면에서 애플 스타일의 한 축이 되었고, 이런 모습들은 매번 진행하는 프레젠테이션에도 고스란히 담겨있어, 청중들에게 과거의 기억을 소환시키는 방법으로 극적인 효과를 연출하는데 대표적인 예가 아래 사진의 'one more thing...'이다. 고 스티브 잡스가 숨겨둔 비장의 제품(?) 발표할 때 많이 썼던 멘트와 슬라이드 디자인으로 발표자는 팀 쿡으로 바뀌었지만 같은 멘트와 디자인 그대로 사용함으로써 청중들에게 환호성을 받았다.
이번 발표는 애플의 새로운 캠퍼스 내 스티브 잡스 극장에서 열렸는데, 이 순간 울컥했을 팬들도 많았을 테다.
'내가 여러분들을 위해 파티를 준비했는데,
그냥 와서 좀 즐겨줬으면 좋겠어'
지금까지 2017년 애플 스페셜 이벤트 프레젠테이션 디자인을 살펴보았다. 이 프레젠테이션의 목적은 자신들의 1년 동안 열심히 만들어 놓은 제품을 청중들에게 짠~하고 멋지게 소개하는 자리다. 애플의 프레젠테이션은 한 번도 과한 연출을 한 적이 없고 어떻게 보면 굉장히 소박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한다. 마치 '내가 여러분들을 위해 파티를 준비했는데, 그냥 와서 좀 즐겨줬으면 좋겠어'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이렇게 부담감 없는 연출은 사람들을 끌어오으며 오랫동안 기억 속에 좋은 기억으로 남겨두는 역할을 하는 듯하다.
나는 애플이 부럽다.
나도 현업에서 일하는 디자이너 로지만, 심플하게 무언가 하고 싶어도 그렇게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직도 대다수의 많은 윗(?)분들은 심플한 것은 너무 급하고 날조한, 성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많고 이전에 비해 더 화려한, 이전 것을 뛰어넘는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심플한 언어를 가지고 있고, 또 이렇게 청중들에게 매년 자신 있게 짠! 하고 보여주는 애플이 부럽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