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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범한츈 May 10. 2019

프레젠테이션 할 때 찾아오는 망신(亡神)

어김없이 프레젠테이션 할 때 찾아오는 신

어김없이 프레젠테이션 할 때 찾아오는 신이 하나 있다.

그 신은 망신....(亡神)


이 분은 중요한 프레젠테이션 순간에 훅 들어오고, 정신을 쏙 빼놓고 훅 나간다. 잦은 망신으로, 여러 상황별로 준비의 준비를 거듭해도 중요한 순간에 어김없이 다시 찾아와서 발표자를 위기에 빠뜨린다.

첫 번째 접신 - 대학생 애플 키노트 프레젠테이션

나의 첫 번째 접신(?)은 대학교 때였다. 나름 애플 맥북을 사용 중이었다. (당시에는 맥북 유저들은 매우 드물었던 시절) 이전에 발표자가 끝나고 RGV선을 맥북에 꽂았는데 이런 젠장맞을 아무리 설정을 바꿔보아도 맥북과 프로젝터 연결이 안 된다. 결국 부랴부랴 PDF로 출력하여 마지막에 발표를 했지만, 보이던 애니메이션을 보여줄 수 없으니 내 머릿속은 멘붕의 연속이었다. 발표가 끝나고, 맥북과 프로젝터의 연결에 대해 수많은 고민을 하고 설루션을 찾아보고, 맥북과 프로젝터 환경이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 당황하지 않는 방법에 대해 내재화(?)하는 데 성공하고, 한동안 그 신은 만날 수 없었다.


두 번째 접신 취업 - 디자인 캠프 면접장

잘 찾아오지 않던 망신이기 나의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였던 취업을 위한 2차 면접장에서 찾아왔다. 당시에 키노트 제출은 안돼서, 피피티 파일 형태로 제출하였다. 물론, 확인은 했다. (내 컴퓨터에서) 면접장에서 앞단의 설명을 아주 열심히 열심히 하고, 마지막으로 '자 이제 동영상을 보시겠습니다'라고 호기롭게 외쳤는데, 동영상이 재생되지 않는다. 그냥 빈 화면만 나온다. 정적이 흐르고, 전체 발표를 4분 내 마쳐야 하는데, 시간만 흘러간다. 무슨 용기였던지 당시에 29살이었던 나는 '동영상이 긴장을 해서, 나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보여드리겠습니다'라고 발표를 마치려고 했다. 그 용기를 알아봐 주었던 어떤 임원분이 '저는 꼭 그 영상을 보고 싶네요'라고 해주셨고, '그럼 잠시 시간을 내주시겠습니까?'라고 말하고 그 자리에서 얼른 인터넷을 들어가서 다시 다운로드하고, 영상을 재생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최종 합격을 할 수 있었다. 낯을 많이 가리는 나로서 그때의 그 임기응변은 아직도 내 입에서 나왔다는 게 신기하다. 이렇게 망신이는 나에게 영원히 떠나는 줄로만 알았다.


세 번째 접신 - 2018년 겨울, 프로젝트 보고

입사 7년 차, 작년 하반기 내내 리딩 한 프로젝트를 센터장님께 보고하는 자리다. 프로젝트 내용을 소상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프로토타입이 아니라, 실제 웹의 서버를 연동되는 아웃풋을 설명해드려야 하는 보고였다. 당연히 사전 리허설은 철저히 했다. (엄청 많이) 그분이 오실 걸 대비하여, 미리 해놓은 리허설 순서에 따라 step을 밟고 있었다. 무사히 잘 끝낼 것만 같았는데, 갑자기 파일 업로드를 하는데, 회사 보안 프로그램이 실행되면서, 업로드가 실패했다.


'순간 정적'


팀장님의 임기응변으로 무사히 다음 스텝으로 넘어갈 수 있었지만 이번 접신은 나에게 심각한 트라우마를 남기게 되었고, 유야무야 2018년이 그렇게 끝났다. (연말에 망신이여 다시는 오지 말라는 기도를 올릴걸 그랬다)



네 번째 접신 - 2019년 다시 보고

지난해 말 보고한 프로젝트를 1분기 정착화시켜, 최종보고를 다시 하는 기회가 있었다. 작년 말의 실수를 만회해보고자, 다시 열심히 사전점검을 했다. 팀장님께서도 이전의 나의 실수를 만회하고픈 마음이신지, 준비를 엄청 열심히 하셨다. 보고 장소는 항상 하던 곳이 아니라, 센터장님 집무실이었는데 사전 점검 당시 랜선 환경이 없고, 무선환경만 된다는 점이 약간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랜선보다는 조금 느리긴 하지만, 접속은 되던 상황이라 그렇게 준비를 마쳤다.

보고 시간이 되었고, 팀장님께서 조리(?) 있는 설명으로 분위기가 한껏 고무되었다.

팀장님 '자 이제 실제로 동작해보겠습니다.'


'.... ' (망신 접신 중)


웹페이지가 뜨긴 뜬다. 무슨 전화 랜선을 꽂아놓은 아주 인터넷 초창기에 야후 홈페이지 뜨는 느낌으로 아주 아주 아주 천천히..


센터장님 '다음에 기회 되면 다시 봅시다'


그냥 그대로 보고가 끝이 났다.

작년 8월부터 올해 3월, 어떻게 보면 이날을 위해 준비한 보고가 이렇게 그냥 끝났다.


이날 보고 이후 며칠 동안 심각한 트라우마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디자인 캠프 때처럼 왜 순간 기지를 발휘하지 못했을까에 대한 후회감과, 왜 유선 랜선을 챙기지 못했나, 왜 서버를 직접 가지고 올라가서 세팅할 생각을 못했나, 왜 dp to hdmi를 미리 준비하지 못했나,. 별에 별 후속 대책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연속되는 접신의 폐해

회사에서 연속되는 접신의 폐해는 참으로 가혹하다. 접신이 2번 이상 누적되면 그 실패의 이미지를 벗어나기가 힘들다. 다행히 상사분들은 모두 좋으신 분들이라 내 탓이 아니라고는 하시지만,  본질로 파고 들어가 보면 변수를 준비하지 못한 엄연한 내 탓이다. 실수의 누적으로 실패의 아이콘이 된다던지, 다른 사람들 입에 안 좋은 사례들이 입에 오를 때 받는 대미지는 굉장한 치명타가 된다. 그리고 트라우마가 되고,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망신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

망신을 떨쳐내기 위해서는 변수에 최대한 대비하는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도 밝힌 바, 내가 알파고도 아니고 그 변수를 어떻게 다 대비할 수 있겠나.. 하지만 분명 대비를 하면서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더 구체적으로 "영상 삽입이 너무 용량이 큰데, 플레이할 때 무겁진 않을까?'') 생각한 일은 언젠가 일어난다. 그 변수는 제대로 준비를 하는 게 좋겠다.


하지만  안되려고 하면 뭐든 안 되는 것 같다.


위에서 언급한 보고 후, 다른 (더 높으신 분) 보고를 위해 dp to hdmi를 이번엔 미리 준비해놨었는데, 보고 하루 전 사전 리허설에서 그 라인이 뻑이 나서 스크린과 연결이 안 되는 어처구니없는 (하...) 다행히 하루 전날이었어서 쿠x에서 로켓 배송으로 다음날 새벽에 dp to hdmi 3개를 가지고, 이번엔 정말 무사히 보고를 끝냈다.  


'망신님 이젠 제발 날 괴롭히지 마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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