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이 소리쳐서 지향하게 된 어설픈 비건인
"배고파"
"뭐가 먹고 싶은데? 치킨이나 떡볶이 ?"
"아니, 그런거 말고"
"그럼.. 고기를 먹으러 갈까?"
"음.. 아냐, 그런게 아니야. 너무 헤비해"
"그럼... 파스타 먹을까? 아님 맛집 좀 찾아볼게."
"아니야. 그런 느낌이 아니야. 어떤거냐면.."
팔팔 끓는 물에 일단 미나리를 한 줌 가득 넣고 데치는거야.
냄비 한 가득, 아주아주 한 가득.
아마 데치고 나면 끽해봐야 한 줌 정도 밖에 되지 않을거거든.
미나리를 데치고 난 물을 굳이 버리지 말고
거기에 그대로 그냥 통통하고 싱싱한 오징어나 한치를 살짝 데쳐내.
알지? 이건 내장을 제거하고 데쳐야해.
그래 맞아, 숙회로 먹고 싶은거니까.
아직 팔팔 끓고 있는 냄비 속 물에 내장을 제거한 오징어나 한치를 통으로 집어 넣어.
집에 남은 소주나 청하 없지 ?
없다구? 그래, 그게 남아있으면 술이니 ?
여하튼 청하를 국자로 한 국자 정도 넣어줘.
아 없는데 어떻게 넣냐구? 나가서 사와야지 !
어차피 남은건 반주로 곁들일거잖아 - ?
그럼 그 미끄덩한 애들이 삶아지며 통통하게 탱글탱글 하얗게 익겠지?
다 데쳤으면 그걸 건져내어 슥슥 썰어줘.
하.. 너무 뽀얗고 탱글한 오징어.. 한치 속살이 이미 입 안 가득 탱글거리는 느낌이야.
오족뽀족뽀조족한 그 느낌 !!!!
거기에 데쳐서 향긋한 미나리를 곁들여서 탁 ! 초장을 찍어서 탁 !!
히야.. 이미 입 안 가득 탱글뽀족 !! 너무 맛있을 것 같지 않아??
....
" 그러니까 그 말은, 지금 가서 미나리랑 오징어를 사오라는 뜻이야?"
그런 이야기 들어본 적 있지 않은가?
지금 당장 당기는 음식이 있다면,
그건 지금 내 몸에 필요한 영양소,
혹은 스트레스 해소 요소가 그 음식에 들어있어서라고.
평소엔 먹고 싶지도 않던 돈가스나 치킨이 당긴다면
그건 아마도 내가 지금 몸에 기름진 무언가가 필요해서이고,
일 년에 한 두 번 먹을까 말까 하는 초콜릿이나 달달한 디저트가 생각나면
그 날은 아마도 업무 스트레스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
어느 평일의 당 떨어진 오후일 것이다.
그런 내가 요즘 너무나도 몸에서 땡겨 찾아먹는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바로 야채류이다.
별다른 조리과정을 크게 거치지 않은, 데치거나 간단하게 볶은 정도, 딱 그정도류의 야채류.
혹은 해산물들.
난 원래 야채를 좋아한다.
아니지,
어릴 땐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 좀 알아서 잘 찾아 먹을 뿐.
어렸을 적부터 모든 야채를 지금처럼 좋아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왠만한 어린이들보다는 야채를 잘 먹긴 했던 것 같다.
그것은 어렸을 적 엄마아빠가 바로 잡아 둔 식습관 때문이었을건데,
"어린이" 치고는 잘 먹는 편이었다는거지,
모든 엄마들이 로망으로 삼던 모든 야채 골고루 잘먹는 착한 어린이는 아니었다.
어린이 향은, 밥상에 고기가 없으면 밥을 안먹고 숟가락을 탁 내려놓던
(_그 숟가락으로 아빠한테 등짝 여러 번 맞고 밥그릇도 뺏겼었던) 고기러버 어린이였으니까.
어릴 적 우리집 밥상은
대체적으로 완전한 집밥 밥상을 차리던 아빠로 인해
인스턴트 식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밥상이었다.
(아, 우리집은 아빠가 출퇴근이 없는 프리랜서 디자이너셔서 보통 아빠가 대부분의 살림을 하셨다)
돈까스와 탕수육, 떡볶이조차도 전부 아빠가 직접해주셨고
인스턴트 식품 _ 분홍햄이나 심지어 참치조차도 !!!_ 거의 밥상에서 볼 수 없었다.
그렇기에 동생과 나는 나름 몸에 해롭지 않은 건강한 집밥들만으로,
어린이 입맛과는 별개로 의도치 않게 건강하게 자라났다.
_다른 집에 비해 분명 잘 먹고 컸지만-
그래도 어린이들 입맛 어디 가겠는가,
나도 향이 어린이였단 말이다. 가끔은 햄도, 참치도 먹고 싶었다고 !!
유치원에 햄 반찬 싸온 친구가 어찌나 부럽던지 !
그렇게 우리집 어린이들_나와 내 동생_은 반강제적 건강밥상에 길들여진 어린이들이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짚어 봐도 야채를 막 어마어마하게 좋아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아빠엄마가 먹으라고 했으니 열심히 잘 먹는 척을 했던 것 뿐.
버섯류는 정말 너무나 다 싫어했고, 두부도 그닥 좋아하진 않았던 것 같다.
(심지어 그 어떤 종류이던간에 버섯이 들어가 있는 모든 요리는 입에 대지도 않아서 밥그릇을 아빠에게 뺏기기 일쑤였다)
시금치 먹으면 뽀빠이처럼 튼튼해진다는 말에는
그냥 뽀빠이나 더 먹으라고 갖다주고 싶다 생각했고,
도대체가 고기 쌈을 싸먹을 때, 상추에 깻잎도 꼭 넣어서 먹으라는 아빠의 잔소리가
진짜 세상 너무나도 듣기 싫었다. 아니 왜 ? 향이 너무 강하잖아 ! 씁쓰름한 그 맛이 너무너무 싫은데!
(다행이도 지금은 싫어서 안 먹는게 아니라, 없어서 못 먹는다 없어서.
깻잎에 쌈장만 있어도 밥 두 공기는 뚝딱 할 수 있는 어른이로 자라났다)
여하튼 그래도 간식으로 오이를 된장 찍어 먹고,
상추쌈을 좋아하던 나름 건강한 어린이 입맛이었다 자부한다.
여하튼, 원래도 어린시절부터 식습관을 잘 들이고 그만큼 건강하게 잘 먹고 커서
돈까스나 치킨보다는 제육볶음과 닭백숙을,
사탕 초콜렛 아이스크림보다는 감자 옥수수 고구마 과일을 좋아하는 어른이로 자라났는데
요 근래는 꽤 많이 먹는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나 야채가 땡긴다.
분명 남들보다 배로는 먹는거 같은데,
(스스로의 별칭을 브라키오사우르스라 칭할 정도면 말 다한거 아닌가?)
그럼에도 몸에서 야채 ! 야채 ! 야채 ! 를 외쳐대니
내 몸이 원치 않게 근래에 기름진 것들을 먹었나 싶다.
그렇게 많이 먹지 않은 것 같은데 ...
맨 처음 비건이라는 분야를 접했을 때,
참 사람들이 유난스럽다 - 싶었다.
뭘 그렇게까지 자연을 지키고
뭘 그렇게까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나 싶었다.
사실 각자가 추구하는 식생활에서의 원하는 맛은 따로 있는데
남들에게 좋아 보이려 연기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비건지향이 뭔지 제대로 모르는 내 입장에선
그냥 유난떠는걸로밖에 안보였는지도 모르겠다_
라고 이실직고 하는 중이다. 죄송합니다)
사전적 정의에 따른 채식주의자 유형에서 골라보자면
난 아직은 채식을 하지만 아주 가끔 육식을 겸하는
준채식주의자인 플렉시테리언 정도 되는 것 같다.
채식주의자 단계 중에서도 가장 하위 단계인 플렉시테리언 수준이긴 하지만
지금의 난, 확실히 고기보단 야채를 먹을 때 속이 가장 편안하다.
내가 채소가 가장 좋다고 하면,
무슨 그런 애가 남의 내장은 그리도 잘먹느냐고
주변 지인들이 비웃을 정도의 수준의
비건인 같지도 않은 비건인이지만,
(그래 맞다. 난 무언가 내 스스로의 강한 신념의 의한 비건인은 아니다 ! 고기 좋아 ! 고기 러버!)
완전한 비건인의 삶을 지향하는 것도 아닌, 여전히도 고기를 그렇게 좋아하는 나는,
이제는
야채를 찾고, 아주 가아끔 비건을 외치는 비건지향인이 되어선
야채를 주기적으로 먹어줘야, 그래야 내 속이 편하단 이야기를 한다.
여하튼간에 내가 되고자 하는 비건인의 삶이란,
때론 내 몸이 이끄는대로, 내 몸이 바라는대로 먹는 순리대로
내 자신의 건강을 돌아보고,
진정으로 내 몸이 원하는 영양소와 요소들을 제 때에 섭취하는 것이
가장 건강하고 바람직한 비건라이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완전한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내 몸이 스스로 적극적으로 필요한 영양소를 땡겨할 때에,
시기에 맞게, 제철에 나는 건강한 재료들을 섭취하려 노력한다.
땅에서 오고, 자연에서 오는 풍부한 영양소를 그 때 그 때 몸으로 받아들여
건강한 식습관 라이프로 내 몸을 제대로 들여다 볼 줄 아는 채식주의를 지향하는 것이
개개인 모두에게 가장 적합한 비건라이프는 아닐런지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