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들, 그 스물 두 번 째
중학교 때 친절히도 이름까지 지어줘 가며
나를 위한 소모임을 운영해주던 친구들이 있었다.
모임의 이름은 무려 "성고테" 였다.
성고테가 뭐냐고 ?
혹시 들어본 적 있나 모르겠다.
"박고테" 라고,
박경림 고속도로 테이프 만들기 프로젝트.
한 티비 프로그램에서 진행하던 건데,
그 프로젝트에서 박경림씨가
"착각의 늪" 이라는 곡을 발매했었다.
이제 좀 감이 오시는가,
"성고테"는 내 이름의 성을 따서 친구들이 만든
장난 반 + 진담 반의 소모임 이름이었다.
악기 연주를 매우 잘하던 친구가 작곡을 맡았고,
뛰어난 춤실력을 가진 친구 한 명이 안무가를,
뛰어나다 못해 전교생을 휘어잡던
학생회장 친구가 매니저를 자처하며
박경림도 노래했는데,
너도 할 수 있다며 용기를 가지라고(응?)
우리도 해보자며, 내 의사와는 정말 전혀, 상관없이
마냥(?) 신나서 테이프를 만들자며 그러고 놀았다.
지금 생각하니 참 순수하고 귀여웠던 열 여섯 시절.
충분히 예상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내 목소리는 아주, 많이, 매우, 무척이나,
허스키한 보이스를 가지고 있다.
어릴적부터 노래를 너무 좋아했다.
언제 어디서나 음악이 있으면 춤을 춰댔고,
룰라 김지현 언니 따라한다고
그렇게나 천사를 샤바샤바 하며
골반을 하도 뚜들기며 춤 춘 덕에
골반에 피멍이 들 정도 였으니까.
노래도 곧잘 했다.
친구따라 갔던 교회에서 노래하는 시간이 즐거워
예수님도 하나님도 모른 채
성가대 노래하려고 교회를 다녔다.
초등학교 저학년땐 중창단도 하고,
아무튼 난 노래를 할 수 있는 거면
무엇이든 다 좋아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4학년,
인생 첫 2박3일 외박(?)이었던 수련회에서
2박3일 내내
미친듯이 소리를 지르며 떠들고 놀고 온 덕에
그 날 이후로
목소리가 이렇게 변해 버리지만 않았어도
꾀꼬리같은 목소리를 가지고 살아갔을텐데
(얼마나 많이 떠들었기에 아예 목소리가 안나오냐며
어처구니 없이 딸을 멍하니 보던
그 때의 아빠 얼굴이 떠오른다)
나의 시련은 그 때 부터였나보다.
4학년 수련회 이후, 목소리가 돌아오질 않았다.
여자는 변성기가 없다고 했던 것 같은데,
원래 내 목소리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음악시험은 봤다 하면 무조건 100점이었던 나인데,
중학교 내내
음악 점수는 내가 노력한 만큼 받을 수가 없었다.
이론을 아무리 다 맞아도,
꼭 실기에서 점수를 다 깎아 먹었다.
허스키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나를
당시 음악 선생님은 인정해주지 않으셨다.
그게 너무 슬펐다.
오로지 예쁜 목소리로만 평가를 받는다는게.
나는 음악을 사랑하고, 노래를 사랑하는데.
갈수록 점점 노래에 자신감을 잃어갔고,
점점 나는 노래를 부르지 않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시험 끝나고 친구들과 노래방을 놀러가게 되었는데
그 날따라 자꾸 친구들은 너도 하나 좀 불러보라며
나에게 노래방 리모컨을 건네 주었다.
당시 좋아하던 남자애도 있었는데,
또 허스키한 목소리로 놀림 받을까봐
노래를 부르기가 싫었다
노래도 안할거면 왜 같이 왔냐던
친구들의 성화에 못이겨서 결국
그 당시 그 애가 추천해줘서 매일같이 들었던
토이의 좋은 사람을 예약했다.
남자 노래이고,
저음이니 나도 할 수 있을거란 생각에
바들바들 떨며 예약을 해두곤 내 차례를 기다렸다.
내 차례가 돌아오고 ,
남자키를 여자키로 바꾸지도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 남자노래 정도면
쉽게 부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미 자신감이 바닥에 내꽂혔던 나는
그 노래를 염소마냥 메에에에 바들바들 떨며 불렀고
더 부르다간 너무 창피해서 눈물이 터질것 같았다.
그런데 노래를 끄려던 그 찰나,
그 노래를 추천해줬던 그 남자애가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같이 불러주는게 아닌가 !
그 친구 덕분에
나를 보고 낄낄거리고 놀리며 웃던 친구들도
웃음을 멈추고 노래를 들어 주었고,
그 날을 계기로,
난 다시 노래를 사랑하겠다고
이런 목소리로도 잘 부르고 말겠다고,
달라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 날 이후, 시도때도 없이 노래를 불러댔다.
원래 노래를 좋아하니까, 음악을 사랑하는 나니까.
부모님 오시기 전 집 청소기를 돌리며
청소기 소음 속에 내 목소리를 묻어 가며 불렀다
가끔은 안되는 고음을 내지르며 삑사리(?)도 나고
남자 노래 여자 노래 동요 트로트 팝송 할 것 없이
전부 다 일단 불러댔다.
남들 눈치 보지 않고,
노래도 연습하고 연습하면
다시 잘 부를 수 있을거라 믿으며
매 ㅡ 일매일 노래를 불렀던 것 같다.
그 즈음에 때마침 너무나 감사하게도
거미며 빅마마며,
목소리가 허스키한 여자 가수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내 노래사랑은 더욱 각별(?)해졌다
스티비 원더의 love me tender로
실기 점수 70점 받은 내가,
그런 내 목소리가 각광(?)받는 시대가
드디어 오고 말았다. 만세이 -!!
그 후 고등학교에 입학한 나는,
수업시간에 아이들이 공부하기 싫으면
"선생님 쟤 노래 한 곡 시켜요"의
그 "쟤" 가 되었다.
sg워너비의 timeless를 성대모사 하듯 부르면
아이들이 열광을 하고 좋아했다.
허스키하다고 놀림받던 내 목소리가
너무나 개성이 있다며 다들 너무나 좋아해주었다.
그렇게 성인이 된 지금은,
노래방 가면 마이크와 탬버린을 놓치 않는
다시 노래를 사랑하는
허스키한 흥부자로 거듭나게 되었다.
코로나로 노래방을 못간지
어언 일 년이 넘어가는 것 같다.
성인이 된 지금의 나는 취미로 밴드 보컬을 할 만큼
언제 어디서고 노래를 시켜도 절대 거부하지 않는
흥 많은 흥부자 어른이가 되었는데
그 흥을 발산하지 못하니
영 삶의 활력이 생기질 않는다
감정 조절이 잘 되지 않아 우울해질때면
일부러 댄스음악을 찾아 듣고,
한껏 목청을 높여 크게 따라부른다.
그럼 좀 기분이 확실히 나아진다.
그만큼 노래는, 이제 나에게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취미이자,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이자,
내 기분을 다스리게 해주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내 하루의 기분을 크게 좌지우지하는 요소가 되었다
아,
노래하고 싶다.
절절한 발라드도 부르고 싶고,
목청 터져라 고음도 내지르고 싶다.
탬버린 흔들며 춤도 추고 싶고,
열심히 외운 인기차트 팝송도 부르고 싶다.
(빨래 개며 노래 듣다가 흥이 끌어올라
목청을 높이지 않으려 애쓰는 것, 이제 지쳤다)
이번 주말엔 혼자 코인 노래방이라도 가서
목청껏 노래를 부르고 와야지.
그렇게 또 다시 내 자신을
긍정의 기운 위로 꺼내놓아야지.
노래도 연습하니까 늘더이다.
그러니 내가 음치이다, 노래는 쥐약이다 하는 분들,
저 믿고 한 번 죽어라 연습 해봐요
뭐든 노력해서 안되는 건 없더라구요.
이상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