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킹맘이 말하는 참여의 장벽과 제도적 배려의 필요성
“제안을 하고 싶어도, 그런 자리에 갈 수가 없습니다.”
하귀에 사는 한 워킹맘의 말이다.
그녀는 평일 오전 10시에 열리는 주민참여 회의 공지를 보고 한참을 망설였다. 회의는 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열린다.
그러나 그 시간에 그녀는 아이를 등교시키고, 회사로 출근해 업무를 시작해야 한다.
“연차가 있지만, 아이 병원이나 가족 행사를 위해 써야 해요. 동네를 위해, 제안을 하기 위해 연차를 쓰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죠.”
시민의 참여를 말하지만, 정작 시민이 참여할 시간이 보장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참여는 권리이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여유 있는 사람의 특권처럼 작동한다. 특히 일하는 여성, 워킹맘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정책을 논의하는 자리가 평일 낮에만 열리고, 의견을 낼 수 있는 창구가 오프라인으로만 존재한다면 그 자리는 ‘열린 자리’가 아니라 ‘닫힌 구조’다.
이제는 시민이 제안할 수 있는 여건 자체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할 때다.
첫째, 주민참여회의나 정책토론회에 참석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정책참여 특별연차’를 도입하자.
가족 돌봄이나 개인 사유와는 별도의 연차로, 공공 의제에 참여하는 시민을 보호하는 제도적 신호가 될 것이다.
둘째, 온라인 제안 통로를 확대해야 한다.
지금처럼 행정이 준비한 설문조사나 공모 플랫폼이 아니라, 시민이 스스로 제안을 올리고 다른 시민의 공감을 받을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내가 사는 동네의 문제를 제안하고, 이웃의 공감을 받으면 행정이 검토한다”는 참여 루프가 만들어진다면 시민의 제안은 훨씬 더 살아 있을 것이다.
셋째, 시간의 다양성을 보장해야 한다.
야간이나 주말에 운영되는 ‘정책 카페’나 ‘시민 의견의 밤’ 같은 형식도 가능하다. 행정의 편의가 아니라, 시민의 생활 리듬에 맞춘 참여 설계가 필요하다.
참여민주주의는 단지 “누구나 말할 수 있다”로 완성되지 않는다.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시간과 조건을 가진다”로 완성된다. 그녀의 말은 그저 한 워킹맘의 사정이 아니다. 오늘도 수많은 시민이 제안을 품고 일터와 가정을 오간다. 그들의 시간이 행정의 시간과 만나지 못한다면, 참여는 말뿐인 구호로 남을 것이다.
시민이 말할 수 있는 시간, 제안할 수 있는 조건. 그것이 보장될 때, 진짜 민주주의의 문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