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달 간의 유럽 부부 여행 - 4. 베네치아 무라노
호텔 근처와 산마르코 광장 주변을 잠깐 보고는 점심을 먹은 후라, 기운도 채웠겠다, 조금은 여유로운 기분으로 흔한 베네치아의 풍경을 구경하러 돌아다녔다.
사람들이 많지 않은 골목 안쪽으로만 들어가도 인기척 없이 조용한 것이, 햇빛 내리는 소리가 들릴 지경이었다. 근데 햇빛이 너무 날카로워서 소리가 난다면 "찌릿!찌릿!" 같은 소리일 것 같다.
아직 기운이 있을 때 가려던 곳을 가는 게 나을 것 같다. 오늘 오후에 갈 곳은 무라노 섬. 자동차 이름으로나 봤지, 여기 오기 전에는 자동차 트렁크문 옆에 붙은 무라노가 뭘 말하는 건지 생각도 안 해 봤다.
무라노 섬을 가기 위해서는 수상 버스를 타야 한다. 무라노 섬으로 가는 배가 맞는지 한 번 물어보려 했는데, 별생각 없이 "무라↗노?"라고 물었더니 대답해 주기를 "무↘ㄹㄹ라노"라고 한다. 허헛. 어설프게 발음했다간 악센트와 ㄹ의 연타에 귀 마사지 하겠네.
무라노 섬의 여행은 Murano Faro, 즉 등대에서 시작해서 한 바퀴 돌아 Murano Colona로 돌아오는 코스가 보편적이다. 그 외에 몇몇 둘러볼 곳이나 추천 코스가 있었지만, 우리의 목적은 선물용으로 적합한 이곳에서만 살 수 있는 작고 유니크한 유리공예품을 찾는 것이었다.
그렇게 목적을 잡으니 오히려 그냥 둘러보고 지나칠만한 조그만 가게들에 조차 들어가서 구경하고 물어보고 하니 나름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이곳의 햇빛은 "피슉!피슉!" 소리를 내는 것처럼 강렬해서 돌아다니는 것도 오래 할 일이 못되었다. 갈증도 나고 지쳐, Sophy가 슈퍼마켓에 가서 체리를 사 먹자고 한다. 자기가 파리에 있는 동안 여름에 사 먹는 체리가 갈증 해소에 최고였다고.
근처에 보이는 DESPAR 슈퍼마켓에서 신선식품 매장의 시원한 공기도 쐬며 체리를 한 봉지 사 왔다. 우와아~~~ 이 동네 체리는 가격도 싸지만 달기도 엄청 달구나.
그리고 또 선물 찾기가 시작됐다. 여러 가게를 둘러다니다 보니, 대략 초점이 맞춰지는 것들은 있는데, 또 이걸 얼마나 싼 가격에 사느냐에 사활을 걸게 된다. 그리고 수공예품이다 보니, 모두 문양이 다르게 생겨서 그것도 (쓸데없이) 자세히 보며 다니니 금방 다시 녹초가 됐다.
힘들고 더위에 짜증을 내기 시작하는 Sophy. 유리공예품 상점 밖에 안 보이는 이 곳에서 또 어디서 기운을 차릴지 걱정이다. 바로 앞에 뭔가 마실 것을 파는 것처럼 보이는 가게가 있다. Pub 같은 외관이었지만 그런 것 가릴 때가 아니지.
이름이 마리오일 것만 같은 앞치마를 두른 후덕한 아저씨가 동네 아저씨랑 큰 소리로 대화를 멈추지 않은 채 우리에게 메뉴판을 던져주고 다시 주방으로 가 버렸다.
이탈리아어를 아는 것도 별로 없지만, Caffe Freddo 정도면 우리가 원하는 음료가 나올 거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유럽에는 차가운 커피 잘 안 마신다고 그러지 않았나?'라는 의문이 들긴 했지만.
주문을 받은 마리오(?) 아저씨는 요란한 소리가 나는 기계를 몇 번 돌리더니, 뭔가가 가득 찬 Pub에서 나올 것 같은 유리잔을 우리 테이블에 턱! 하고 놓고 가셨다.
"이게 뭐지?"
그렇게 내 인생 커피를 만났다. 기네스 맥주 아니고 냉커피였다. 이탈리아 베니스 무라노 동네 Pub에서 마리오 아저씨가 만들어준 냉커피.
한 모금 마시고 Sophy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 아저씨 모시고 서울 가서 카페 차리자."
그 후로 서울에서 몇 년 동안 비슷한 커피는 보지 못했고, 최근에 샤케라토나 니트로 커피, 아메리치노 등등 비슷한 커피들을 보긴 했지만... 비교 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