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한 번 본 걸로 사상충 치료를 한다고?
곧 다시 전화를 드릴 테니 입양은 보류해 달라고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 말미에 직원은 가족들과 상의해 보라는 말을 덧붙이긴 했지만, 침통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입양하지 않을 거라 확신한 듯 보였다. 예전 같았다면 '제가 입양할게요.' 지르고 봤을 테지만 엄마의 심기를 거슬러봤자 일이 어렵게 될 뿐이다.
"안 된다. 얼굴 한 번 봤다고 사상충 치료를 한다고? 비용이 백만 원이 넘는다는데. 더 건강하고 어린 강아지도 많이 있더만. 그 개는 안 돼."
냉정하기가 밀양 얼음골 저리 가라다. 엄마에겐 감성팔이가 통하지 않는다. 엄마와 나는 mbti 유형이 다른데 공통점이 있다면 사고형에 판단형이라는 점이다. 감성(F)보다는 논리(T)로, 인식(P) 하기보다는 판단(J)을 해버리는 유형이다. 상황이 발생하면 이미 이성적인 판단을 끝내버리기 때문에 감정에 호소하는 건 시간낭비일 뿐이다. 엄마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리며 동물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우리 마당에 사는 고양이들이 모두 이 원장님께 중성화수술을 받은 만큼 믿을 만한 분이다.
"원장님 안녕하세요. 유기견을 입양하려고 하는데 그 친구가 심장사상충 양성이라고 해서요. 저희가 입양을 안 하면 안락사될 거 같은데, 비용 부담 때문에 고민 중이거든요. 혹시 완치하는 데 비용이 얼마 정도 들까요?"
묻고 있지만 말도 안 되는 질문이란 걸 알고 있다. 개체마다 건강상태와 병의 진행정도가 다른 데 비용을 묻는다고 대답해 줄리가 있겠는가? 이건 오로지 액션을 위한 전화이다. 그건 알 수 없다고 대답할 줄 알았는데 뜻밖의 대답이 들려온다.
-개가 밥은 잘 먹습니까? 활력은 있고요?
전날 보호소 직원의 말에 의하면 밥도 잘 먹고 활력 있는 친구라고 했다. 사상충만 없다면 모든 것이 완벽(... 그렇게 말한 적은 없지만)하다고 말씀드렸다.
-아 그럼 델꼬 오이소. 문제없습니다. 시간은 좀 오래 걸리지만 비용은 훨씬 저렴합니다. 밥 잘 먹고 활력 있으면 충분히 완치할 수 있습니다.
스피커폰으로 들리는 원장님의 구원 같은 목소리. 주방으로 자리를 피한 엄마의 귀가 쫑긋한 게 느껴졌다.
"네. 감사합니다! 입양해서 검진받으러 가겠습니다."
아빠한테 소식을 전했다. 사상충 양성이란 것과 직원이 말한 치료비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걸 알리자 바로 허락이 떨어졌다.
"낼모레 보자고 약속을 했는데! 나중에 만나면 안면 받치구로 쌩깔 수 있나?"
날 것의 대답이 돌아왔다.
보호소에 다시 방문할 땐 엄마와 단 둘이 갔다. 4.2kg 강아지를 입양하러 가는데, 가지고 가는 물품은 모두 20kg 진도 기준이다. 별이가 쓰던 걸 그대로 가져가서 그렇다. 켄넬만 넣었는데도 승용차 뒷좌석이 꽉 찬다. 별이를 데리고 병원에 다니던 기억이 생생한데 그 켄넬에 다른 강아지가 들어간다니. 묘한 기분에 사로잡혀 미처 시간을 확인하지 못했다. 3시 이후에 오면 된다고 했으니까 4시 전에만 가면 되겠지 여유 있게 생각했는데 보호소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오고 계시지예?
"예! 가고 있습니다. 물품을 챙기고 싣고 하다 보니까 늦었습니다.
-아잇, 오시는 거면 괜찮습니다. 온다 해 놓고 안 오시는 분들이 있어서 하핫. 그럼 좀 있다 뵙겠습니다!
직원도 우리가 도착할 때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나 보다. 어떻게든 입양을 보내려는 마음이 느껴져 뭉클해졌다. 도착해서 신발을 소독하고 서류를 작성하는 동안 직원이 강아지를 데려왔다. 한 번 봤던 사람이라고 꼬리를 붕붕 흔드는 게 사람 친화적인 강아지다. 엄마가 강아지와 면을 트는 동안 직원이 준 서류에 빈칸을 하나씩 채워나갔다. 칸을 채울 때마다 심장박동이 더 크게 뛴다. 이제 진짜 빼도 박도 못 한다. 집착광공 같은 멘트를 하나 남겨보자면 이제 이 강아지는 죽을 때까지 나와 함께다.
"동물 등록하려면 이름도 정하셔야 되거든요. 이름은 지으셨습니까?"
동물 이름을 등록하는 란에 '여래'라고 크게 써넣었다. 사실은 포인핸드에서 보자마자 지었던 이름이다. 뜨겁게 사랑한다는 '열애'를 음차대로 발음한 것이다. 여기에 심장사상충이 얼른 치료되길 바라는 마음에 '약사여래불'의 여래를 따 왔다. 불교에서 약사여래불은 질병과 고통을 사라지게 하는 존재다.
모든 서류 작성을 마치고, 강아지를 데리고 나오는 길. 우리가 준비한 목줄이 너무 큰 걸 본 직원이 보관하고 있던 빨간 목줄을 주셨다.
"처음 보호소에서 데리고 가면 변 상태가 안 좋다고 하더라고요. 집에서 잘 케어하면 금방 좋아지니까 크게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겁니다. 이제 낙장불입입니다. 무르시면 안 됩니다."
우리는 마음 써줘서 감사하다는 의미로 준비해 간 곶감 한 상자를 드렸다. 미신일지 모르지만 강아지를 데려올 때는 선물을 준비해야 무탈하게 오래 산다고 한다. 켄넬에 넣으려는데, 보호소에 들어올 때 안 좋은 기억이 있었는지 켄넬 입구에 발가락을 걸고 뻗대는 걸 직원이 덜렁 들어서 억지로 밀어 넣었다. 여기서 산청까지 차로 1시간. 제 몸보다 훨씬 큰 켄넬 속의 여래는 비틀거리면서도 한 번도 앉지 않았다. 두 번의 구토와 함께였다.
고속도로 졸음쉼터 인근 야산을 배회하다가 보호소 생활을 한 달 넘게 한 강아지. 이제는 여래라는 이름으로 지리산 자락 어느 산골에 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