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마주친 그 순간
출발 전 다들 단정하게 옷매무새를 다듬고 차려입은 걸 보니 나만 설렜던 건 아니었나 보다. 설렘을 주체하지 못하고 10분 일찍 도착해 버렸다. 먼저 들어가자는 아빠의 말에 세 시 전까지 보호소 청소 및 소독시간임을 강조하며 차에서 시간을 죽였다. 시동을 껐음에도 낯선 배기음을 알아챈 개들이 짖기 시작했다. 저음은 대형견, 고음은 소형견. 거대한 소리의 덩어리 속 수백 겹의 레이어가 느껴졌다. 몇 마리가 저 안에서 가족을 기다리고 있는 걸까. 복잡한 마음이 일었다. 에누리 없이 딱 세 시 정각이 되어 우리는 차에서 내렸다. 개들은 여전히 짖고 있었다. 들어가기 두려울 정도로 맹렬하게, 지치지 않고 꾸준히.
차에서 내리자마자 알아 챈 건 짙은 냄새였다. 곁눈질로 재빨리 아빠의 안색을 살폈다. 어린 시절부터 학습된 행동이다. 냄새에 유독 민감한 아빠. 매 끼 새 반찬을 원하지만, 막상 요리하면 냄새에 눈살을 찌푸린다. 주방 문을 닫고 창문을 모두 열어 환기하지만 100% 없앨 수 없다. 식탁 위에 떡하니 밥상이 차려져 있는데 음식 냄새가 안 나길 바라는 것도 웃긴다. 먹는 음식 가지고도 별나게 구는데, 누가 맡아도 싫을 법한 냄새가 나니 어찌 눈치를 안 볼 수 있단 말인가.
"아빠. 이게 무슨 일이고? 주인 없고 버려진 개가 이렇게 많네. 이래 많은 개를 모아놓으니까 이건 어쩔 수가 없다. 어휴 나쁜 인간들. 인류애 바사삭이네."
호들갑을 떨며 선수를 쳤지만 아빠는 대답이 없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숨을 참고 있는 것 같았다. 아직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입구에 도착하니 목 언저리까지 오는 낮은 담 너머로 작업복을 입고 청소를 하는 직원들이 보였다. 보호소는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다가가서 인사하니 반갑게 문을 열어준다.
"어서 오세요! 들어오시기 전에 이거 밟아주세요. 지금 보호소에 파보 바이러스가 유행해서요. 입장 시 무조건 소독하셔야 하거든요."
용액이 담긴 통을 가리키며 양해를 구한다. 군말 없이 소독액에 신발을 담갔다. 포인핸드를 보며 가졌던 의문이 사라졌다. 유독 자연사가 많은 보호소였다. 어리고 건강해 보이는 개체 사진 하단에 '종료(자연사)'가 박혀 있는 걸 보며 '설마 안락사하고 미안해서 자연사로 바꿔둔 건가?' 의심을 했는데. 밝은 직원의 표정을 보고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 연락 주셨던 강아지 데려올게요. 이공이사 공공육일팔 맞지요?"
우리는 보호소 한편에 마련된 사무실에 앉아 우리 식구가 될 그 아이를 기다렸다. 상상했던 것과는 다른 시스템이었다. 유기견을 먼저 입양한 선배들의 영상을 보니 개들을 쭉 둘러보고 내 가족이 될 아이를 찾던데, 이곳은 견사를 둘러보는 건 안되고 번호를 말해야만 개를 볼 수 있었다. 특히 강아지들이 모여있는 쪽은 더더욱 가까이 갈 수 없었는데 바이러스에 취약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치사율이 높은 바이러스가 보호소에 돌고 있다니 이해 못 할 것도 없었다. 게다가 나는 원픽 강아지가 있으니까.
"자. 이 친구입니다."
보호소 직원이 데려온 강아지를 바닥에 내려놓고 사무실 문을 닫았다.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갈색 털과 뾰족한 주둥이, 순진무구한 표정을 가진 개다.
"이 개가 아닌데요?"
"그럴 리가 없는데?"
잠시 마주 보고 말없이 대치.
"제가 본 친구는 흰 강아지였어요. 이 친구요."
"사진 하고는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여기 서류를 보시면 공공육일... 칠?"
포인핸드 속 개를 보여주자 고개를 저으며 착각할 수 있다고 말하던 직원이 서류를 다시 확인했다. 서류를 넘기던 손이 파르르 떨린다. 서류 누락 덕분에 다른 강아지가 잠시 철창밖으로 나왔다.
"데려오신 이 친구는 수컷인데요?"
덜렁 들려있는 강아지의 고간사이를 가리키니 화들짝 놀란다.
"말씀하셨던 강아지 서류를 따로 빼뒀더니만. 여기 있네요. 밑에 곶감이라고 적어놓은 거."
곶감농가라서 좀 기다려 달라 전화했더니 친절하게도 메모까지 남겨 따로 빼두셨다. 직원분은 아이고 정신이 없네 혼잣말을 중얼거리더니 강아지를 데리고 다시 견사 쪽으로 향했다. 쿼카를 닮은 갈색 수컷 강아지는 다시 직원 품에 안겨 돌아갔다. 버둥대지도 않고 순둥하게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번엔 확실합니다."
데려온 개를 보곤 말문이 막혔다. 미숫가루처럼 누리끼리한 삐쩍 마른 개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사무실 바닥에 서 있었다. 보호소 직원분의 카메라 기종이 뭔지 묻고 싶을 정도였다. 톤업잡티제거 효과로 희고 뽀얀 개인줄 알았다. 뜬장에 갇힌 한 달 동안 다리털은 붉게 물들어 있었고, 얼굴에는 얼룩덜룩 엷은 반점이 가득했다. 포인핸드에 올라온 사진은 이 강아지의 인생샷이었다. 첫인상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미안하지만) '못생겼다.'였다. 개가 못생기기 쉽지 않은데. 바닥에 내려놓은 강아지는 오랜만에 땅을 밟는지 정신없이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짖거나 경계하는 기색은 없었다. 움직일 때마다 간장 달인 것 같은 쿰쿰한 냄새가 났다. 직원이 서랍을 열어 육포를 꺼내 주자 냉큼 입에 물고는 책상 가장 아래쪽에 숨기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봤다. 윤기 없는 털 아래로 척추뼈의 윤곽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너무 말랐다."
정적을 깬 건 엄마였다. 움직임을 주시하느라 부모님의 반응을 놓치고 있었다. 수십 년 장사해 온 짬으로 감추고 있었지만 딸인 나는 알 수 있었다. '너무 말랐다.' 아래에 숨겨진 실망의 기색을. 실망이 전염되기 전에 황급히 변명을 늘어 놓았다.
"델꼬와서 딱 한 달만 지내봐라. 바로 달라진다. 원래 사랑 주면 예뻐지거든."
"맞습니다. 성격도 유순하고 활동적입니다. 마침 내일 수의사 선생님도 오고 하니까 검진하고 다음 날 바로 데려가시면 되겠네요. 오시는 날에는 서류 작성할 게 상당히 많거든요. 시간 여유를 좀 갖고 오셔야 됩니다."
직원이 파일을 꺼내 우리가 작성해야 하는 서류를 책상 위에 늘어놓았다. 그때였다. 바닥에 코를 박고 돌아다니던 강아지가 서류를 펼치는 소리에 두 발로 기립하더니 책상 위를 눈으로 훑기 시작했다. 자신과 관련된 서류란 걸 아는 걸까? 아슬아슬 균형을 잡으며 한참을 미어캣처럼 서 있는 강아지를 본 아빠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핫. 짜슥. 웃기네. 니 뭐 보면 아나? 지 관련 서류라고 벌떡 일어나서 보는 거 봐라. 하, 고놈 참 맹랑하네."
맹랑. 이 단어가 나왔다는 건 아빠의 마음에 들었다는 청신호다. 아빠는 맹랑한 녀석들을 보면 호감을 느꼈다. 사업하는 집에 고양이는 절대 안 된다고 결사 반대하던 아빠가 고양이 '철수'를 보고 사르르 녹아버린 것도 맹랑한 행동 때문이었다. 누워있는 엄마 위로 어질리티 게임하듯 연거푸 뛰 넘는 철수를 보고 맹랑한 게 맘에 든다며 집에서 키우는 걸 허락했었다. 조짐이 좋았다. 직원은 한 달 넘게 문의조차 없던 강아지가 입양을 간다는 사실에 상당히 고무되어 보였다.
"보호소 있는 동안 접종도 했고요. 칩이랑 검사비용은 시에서 지원해 주고, 추후 중성화하고 병원 가는 것도 한도 내에서 60%까지 지원해 주니까... 내일 수의사 선생님이 오셔서 검진하고, 특별한 이상 없으면 오셔서 데려가시면 됩니다. 목줄이랑 케이지 준비하시고요. 심장사상충만 없으면 될낍니다. 그게 치료 비용이 상당히 많이 들거든요. 그거만 아니만 바로 입양되는 거죠. 결과 나오면 바로 알려드릴게요"
"그라모 됐습니다. 검사하고 결과 나오면 전화주시고예. 어이 강아지. 낼모레 보자. 한 이틀만 더 고생해라이."
친근한 인사를 건넨 아빠가 서둘러 일어났다. 아빠, 엄마의 냄새를 킁킁 맡던 강아지가 내 발치에서 냄새를 맡더니 무릎에 앞발을 대고 일어나 눈을 맞췄다. 거슬거슬한 털에서 고되었던 지난 삶이 느껴졌다. 유기견 입양한 후기를 보면 사랑스럽고 예뻐서 입양했다는 사람이 많던데. 사랑스럽고 예쁘기보다는 도전정신을 불러일으키는 강아지였다. 우리가 이렇게 만난 데에는 필시 이유가 있을 거다.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잘해줄 테다. 넘치는 사랑을 한번 받아봐라! 집에 오는 내내 아빠는 두 발로 벌떡 일어서서 서류를 확인하던 맹랑한 강아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느낌이 좋았다.
다음 날 아침. 9시도 되지 않은 시간에 전화벨이 울렸다. 보호소였다.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받았는데 직원의 목소리에 침울한 기색이 역력했다. 직감적으로 문제가 생겼단 걸 알았다.
"아... 이걸 어떡하지요... "
"...왜요? 많이 안 좋나요?"
"쓰읍... 아침 일찍 검사를 했는데... 양성이네요. 사상충이요."
직원이 길게 말을 늘였다. 거의 입양이 결정 난 상황이었는데, 그도 낙담한 듯했다. 이럴 땐 무어라 말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내 표정을 본 엄마는 대번에 고개를 저었다. 아픈 강아지는 안 된다는 무언의 반대였다.
그렇지만 단박에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입양 문의가 왔다가 취소된 강아지는 안락사 최우선 대상이 된다고 들었다. 게다가 심장사상충 양성이 확인된 상황이라면 더더욱 예외란 없을 거다. 어제 우리가 주고받은 눈빛과 나눈 인사가 있는데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두 발로 서서 자신의 서류를 넘어다 보던 동그란 눈이 어른거렸다. 말을 잇지 못하는 내게 직원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입양... 하실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