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락커가 된 사연
올해 겨울은 유독 추울 거라는 기상청의 예보가 있었다.
'암만 추워봤자 남부지방인데. 지가 추워봤자 얼마나 춥겠어?'
이런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수은주의 온도는 영하 8도, 9도를 가리키다가 여래를 데려오기 며칠 전에는 공식적으로 영하 11도를 찍었다. 산청에 기온을 측정한 이래 최저 온도다. 참고로 이곳의 겨울철 평균 온도는 영하 1도를 넘나드는 수준이다. 이런 날씨가 계속되던 와중에 여래를 입양했으니, 걱정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삐쩍 마른 4kg짜리 개를 밖에서 키운다는 건 얼어 죽으라고 내모는 것과 다름없었다.
"겨울에만 집 안에서 키울게."
내 발언에 부모님은 떨떠름한 기색이 있긴 했지만 의외로 쉽게 허락했다. 전에 키웠던 별이나 초롱이도 혹한이 계속되거나 비바람이 칠 땐 현관을 내어주곤 했으니까.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거친 털 사이사이 푹 배어든 농축된 깊은 냄새. 대충 닦아 낸 토사물도 한몫 단단히 하고 있다. 과연 여래가 태어나서 한 번이라도 목욕을 한 적 있을까? 목욕도 목욕이지만 가정용 헤어드라이어로 젖은 개를 말리는 건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이럴 때 필요한 사람이 전문가다. 우리는 처음으로 애견 미용이란 것을 받아보기로 했다.
여래와 함께 미용실로 떠나는 길. 이번엔 검은 봉지와 함께다. 구토를 요령 있게 받아내며 애견 미용실에 도착했다. 끽해야 한 삽십 분 걸리려나 생각했는데 한 시간 반 있다가 오란다. 연일 계속되는 이벤트에 여래는 어안이 벙벙한 눈치다.
"여래야 언니 금방 갔다 올게!"
시간 보내기에 다이소만 한 곳이 있을까. 평소라면 주방용품 코너에서 붙박이가 되어 눈이 뒤집어졌겠지만 이번만큼은 애견용품 코너에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씻고 나오면 추울 낀데... 옷 한 벌 해 입혀야 안 되나?"
미용 시간이 끝날 시간에 맞춰 다이소를 나온 엄마 손에는 살구색 애견용 패딩이 들려 있었다.
목욕과 기본적인 위생 미용뿐이었지만 전문가의 손길은 달랐다. 보들보들해진 정수리에서 꽃향기가 폴폴 피어올랐다. 빗질을 해 죽은 털을 다 빼냈는데도 영양 부족 때문인지 여전히 등의 털은 빗자루였다. 거친 털은 앞으로 잘 관리해 주면 된다. 냄새가 안 난다는 것만으로도 대만족이었다.
여래 정수리에 코를 박고 집으로 돌아와 외부기생충 약을 목덜미에 바르고, 켄넬 안에 사료그릇을 밀어 넣었다. 켄넬에 대한 좋은 기억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포획될 당시의 기억이 꽤나 공포스러웠는지 여래는 켄넬 안 폭신한 담요를 마다하고 차가운 방바닥을 택했다. 집안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이동해야 할 상황이 생길 때를 대비해 켄넬 교육은 필수였다. 여래는 순하고 사람친화적인 강아지였지만 아직 우리는 서로를 잘 몰랐다. 나는 언제라도 여래가 돌변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입구에서 들어가기 주저하던 여래는 약간의 고민 끝에 발을 옮겨 켄넬 구석에 놓인 사료를 먹기 시작했다. 엉덩이는 뒤로 쭉 뺀 상태였다. 그래도 이만하면 성공적이었다.
며칠 동안 켄넬에서 밥을 먹은 여래는 이제 사료그릇을 들면 켄넬 안으로 쏙 들어가 기다리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훈련을 따로 하지 않았음에도 앉아와 기다려를 할 줄 알았다. 유기견으로 살아오며 눈치가 생긴 건지 이전 주인이 훈련을 시킨 건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영리한 녀석임은 틀림없었다. 무언가 원하는 게 있으면 앞발로 나를 긁었다. 대체로 배변 신호였기 때문에 내 발을 긁으면 리드줄을 채우고 밖으로 나가 배변을 하고 돌아왔다.
보호소 직원의 말이 딱 맞았다. 변 상태가 좋지 않고, 피가 섞여 있기도 했다. 배변을 할 근력이 없어서 제자리에서 두 발로 섰다가 빙글빙글 돌며 힘들어했다. 그야말로 낮밤을 가리지 않는 장트러블이었다. 잠에 들만 하면 침대 위에 올라와 긁는 통에 자정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몇 번이고 옷을 챙겨 입고 나갔다.(밤길 겁내지 않는 주인을 만난 걸 천만다행으로 알아라) 그렇게 나가서 시원하게 일을 보면 좋으련만. 손톱만큼 배출하고 집으로 총총 들어가는 여래의 뒤꽁무니를 보며 제발... 오늘 밤은 이걸로 끝이길 빌었다.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추위 속에서 과수원 주변을 배회하는 건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게다가 이 조그만 녀석이 까탈스럽기는 얼마나 까탈스러운지 원하는 장소가 나올 때까지 배설을 참는 거다. 그날은 영하 8도. 침대에 누웠다 일어난 게 벌써 다섯 번째였다. 장갑을 깜빡하는 바람에 겨울밤의 날카로운 냉기가 손등을 바늘처럼 찔러댔다. 까맣던 밤하늘에 푸른빛이 섞이는 걸 보고 절망적인 기분이 들었다(단지 자다 깨서 나온 걸 반복했을 뿐인데!). 푸르스름한 빛이 드리워진 돌콩만한 개의 눈빛과 꾹 다문 입매에 불만이 그득하다. 이젠 과수원도 싫단다. 이놈의 개는 잠도 없는지 리드줄을 팽팽하게 잡아끌고 산길로 향하기 시작했다. 나는 밥보다 잠을 선택할 정도로 잠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사랑 폭격을 주겠다 약속했지만 입양 후 열흘 가까이 쪽잠을 잔 상황이었다. 나는 참지 못하고 샤우팅 폭격을 날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