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산불의 가운데에서
건조한 나날이 계속되던 어느 날. 닳아버린 타이어를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입양 후 두 달 동안 장거리 외출은 거의 하지 않았는데, 하루에 산책만 5번을 하는 여래를 두고 가려니 걱정이 앞섰다. (꼭 강아지 때문은 아니고 원래도 나는 외출하는 걸 즐기지 않는 사람이다)
"아빠! 여래가 발 긁으면 화장실 한번 가주세요!"
아빠한테 부탁하긴 했지만 영 못 미더웠다. 찝찝한 기분을 안고 20분쯤 달렸을까. 소방차들이 줄줄이 반대차선을 지나쳐 가는 게 보였다.
"엄마. 어디 불이 났는가보다."
"소방서는 시천면에 있는데 왜 반대편에서 차가 들어오니?"
"출동했다가 돌아가는 거겠지."
"아이다. 사이렌이 번쩍번쩍하는구먼."
"그런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정비소에 도착하니 주말을 앞두고 수리를 기다리는 차들로 만원이었다. 언제쯤 우리 차례가 오냐 물어도 알 수 없다는 대답뿐. 지루하고 텁텁한 공기가 가득한 대기실에 앉아 하염없이 시간을 보낼 때였다.
빼액!
동시에 울린 긴급재난문자가 정적을 갈랐다. 멈춰있던 대기실이 부산스럽게 깨어났다. 곧이어 느껴지는 진동벨 소리. 액정에는 '아비부'가 떠 있었다.
"여기 불이 크게 나서 모임이 취소됐다! 친구 차 얻어 타고 가고 있었는데 빠꾸다. 데리러 온나."
수리가 끝나자마자 부랴부랴 나선 길. 30분 거리에 떨어진 이곳까지 연기가 자욱했다. 집에 혼자 남겨져 있을 여래와 짜링(2016년에 길에서 구조한 터줏대감 고양이) 걱정에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우리 집과는 꽤 거리가 떨어진 곳이었다. 실외배변을 하는 여래를 위해 얼른 리드줄을 채우고 산책을 나갔다. 공기 중에 매캐한 냄새가 화목보일러 냄새인지 산불의 여파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집에 돌아와 텔레비전을 켜니 우리만 난리가 난 건지 뉴스는 다른 세상이야기로 가득했다. 이거 뭐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우리는 (걱정을 숨긴 채 )우스갯소리로 피난 준비 해야 하는 거 아니냔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 날 아침. 간밤에 불이 좀 잡혀서 진화율이 90%를 넘겼다는 소식이었다. 전해진 소식과 달리 골짜기 전체에 자욱한 연기가 드리워졌다. 여래와 함께 아침 산책을 하는데 숨을 쉬어도 숨이 안 쉬어지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강아지는 마스크를 채울 수도 없고, 연기가 신경 쓰여 평소보다 산책을 일찍 끝냈다. 오후부터 강풍 예보가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점심 산책을 하는데 바람이 강하게 불어오기 시작했다. 시시각각 방향을 바꾸는 순간적인 돌풍에 키 작은 여래도 몇 번이나 걸음을 멈춰야 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주섬주섬 피난 가방을 챙겼다. 피난 가방은 처음 싸보는 거라 뭘 싸야 할지 막막했다. 게다가 반려동물까지 함께다. 강아지 한 마리와 고양이 한 마리. 우선 켄넬부터 꺼냈다. 짜링의 피난 쉘터로 쓸 작정이었다. 켄넬 속에는 짜링이 좋아하는 이불을 두툼하게 깔았다.
여행용 트렁크를 바닥에 펴고 강아지 사료 고양이 사료 츄르 배변패드 수건 방석 밥그릇 물그릇을 챙겼다.경주지진 때 대피소 근처를 서성이던 반려동물과 그 가족들이 떠올랐다. 주민 대피소에 강아지와 고양이는 들어갈 수 없을 거다. 나라에서 반려동물 동반 대피소를 마련한다는 기사를 보긴 했지만 이번 재난현장에서 바로 적용 될 지는 미지수였다. 이번에도 별반 다르지 않겠지. 차에서 자야할 상황을 고려해 롱패딩과 두루마리 휴지도 잔뜩 넣었다. 또 뭘 챙겨야 하나 고민하는데 아빠가 내 모습을 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우크라이나 전쟁 났다고 피난 가방 싸는 놈아. 여기까지 안 온다니까네!”
대비해야 한다고 큰 소리를 치긴 했지만 내가 생각해도 좀 과한가 싶은 마음이 있었다.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 망설여졌다. 아빠의 호기로운 외침에 기가 죽어 슬그머니 패딩을 끄집어냈다. 여래와 짜링 짐에서는 줄일 수 있는 게 없었다. 뉴스에서는 산청 산불이 다시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이 연이어 속보로 전해지고 있었다. 그때 아빠의 폰이 울렸다. 반갑게 전화를 받던 아빠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졌다.
“지금? 알았다. 준비해서 내려가꾸마.”
이장님의 전화였다. 산불이 우리 마을 건너편까지 도달했다는 이야기였다. 나가는 길이 막히기 전에 얼른 대피하라는 말이 수화기 너머로 들렸다. 우리 집에서 마을로 나가는 길은 딱 하나다. 이 길이 아니면 산속에 난 임도를 넘어가야 하는데 불이 비화되는 상황에 깊은 산으로 들어가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아빠 말 듣지 말걸.’
피난짐 싸놔도 손해 보는 거 없는데 내가 왜 아빠 말을 들었을까. 속으로 후회막심이었다. 허둥거리는 내 모습을 짜링과 여래가 물끄러미 바라봤다. 전화를 끊은 아빠의 표정이 굳어졌다.
“일단 차 마당에 집어넣을 테니까 니는 준비해 놔라.”
창문을 다 잠그고 밖으로 뛰어 나가 마당냥이들을 찾았다. 어디로 숨었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김장용 커다란 대야에 물을 가득 담고, 사료도 가득 부어 놓았다. 짐을 꺼내는 동안 아빠는 LPG 가스밸브를 잠갔다.
농사용으로 쓰는 트럭에 짐을 대충 던져 놓은 후 켄넬에 고양이를 넣었다. 놀란 짜링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짜링과 함께 산 지 햇수로 10년.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날카로운 소리였다.
"미안하다 미안해."
이불로 켄넬을 덮은 후 트럭에 단단히 고정했다. 그런 다음 어리둥절한 여래를 부둥켜안고 트럭에 올라탔다. 맞은편 하늘을 뒤덮은 거대한 연기가 보였다. 거친 트럭의 엔진음에 놀란 여래가 내 팔을 붙들었다.
'이거 꿈인가?'
현실 같지 않은 상황에 되려 헛웃음이 났다. 우리는 그렇게 집을 뒤로하고 산 아래로 대피했다. 집에는 닭 스무 마리와 어디론가 숨어버린 마당냥이들이 그대로 남겨진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