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의 거친 엔진음을 뚫고 성난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리저리 굽이치고 경사진 산길에다가 진동이 고스란히 느껴지니 예민 끝판왕인 고양이 '짜링'의 입장에서는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을 것이다.
조심해서 운전했지만 속도를 늦출 수는 없었다. 이장님 말씀처럼 마을 건너편 산으로 불이 붙은 게 보였기 때문이다. 연기의 방향이 우리 마을 쪽인 걸 확인하자마자 아빠와 나는 약속한 듯이 탄식을 내뱉었다.
"일단 기름부터 넣자. 이 상황이면 주유소 문 닫았을 수도 있겠다."
불이 난 방향과 반대쪽으로 핸들을 꺾었다. 가장 가까운 주유소는 주유를 하기 위한 차들로 만원이었다. 그중에는 소방차도 있었다. 주유소 사장님과 그 가족들이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게 보였다. 5분 정도 기다려 우리 차례가 되었는데 주유하던 직원이 짜링의 울음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랐다.
"어디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는데? 까미 나온 거 아냐?"
주유소에서도 고양이를 키우는 모양이었다.
"아, 켄넬 안에 저희 고양이가 있어서요. 피난 오느라 데리고 나왔어요."
"어머..."
직원의 얼굴에 안타까운 기색이 역력했다. 정말 이상하게도 그 표정을 보자마자 눈물이 왈칵 날 것 같았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의 동질감 같은 걸까. 직원은 이불에 가려진 켄넬에 고개를 기울이고는 괜찮아를 연발했다.
주유를 끝낸 우리는 마을 회관 대신 강변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이동이 용이하고 탁 트인 공간이기도 했지만, 회관에 고양이와 강아지를 데려갔을 때 할머니들이 한 마디씩 보탤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악의 없이 하는 말이지만 다들 예민한 상황인데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우리는 바람에 들춰진 짜링의 이불을 재정비하고 끈으로 더 단단히 고정했다.
덕천강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불의 진행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천평리 부근에 머물러 있던 불이 한 시간 만에 이렇게 번진 건 강풍의 영향이었다. 순식간에 방향을 바꾸는 바람 소리와 사람들의 웅성거림, 비정기적으로 울리는 긴급재난알람, 헬기소리. 이 모든 게 짜링에게 얼마나 스트레스로 다가올지... 더 큰 이불을 가져와서 덮어 줄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시간이 지나자 강변에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2차선 도로의 양 옆 주차공간이 차들로 꽉 찼다. 강변의 선비문화원이 반천 주민들과 외공, 내공 주민들의 임시 거처로 지정되었기 때문이었다. 그중에는 우리처럼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주민들도 많았다.
어떤 할아버지는 강아지 목에 빨랫줄처럼 생긴 노끈을 감고 나왔다. (나의 편견일 지도 모른다) 산책을 한 번도 시켜본 적 없는 건지, 그 노인과 반려견은 서로 어색해 어쩔 줄 몰라했다. 그래도 같이 살아야 하기에 노끈이라도 묶어 데리고 나온 듯했다. 거대한 재난 앞에서 감정이 고장 나 버린 건가. 그들의 모습을 보며 또다시 코가 매워졌다.
집에서 떠난 지 4시간쯤 되었을 무렵. 해는 뉘엿뉘엿 지는데, 불은 계속해서 커졌다. 그곳에 있는 모두가 알았을 것이다. 결코 오늘 안에 불을 잡을 수 없을 거란 걸. 이대로 길에서 잘 건지, 아니면 집으로 돌아갈 건지 결정해야 했다. 바람이 방향을 바꿔 불의 진행방향이 우리 집과 반대쪽인 상황이었기에 떠올릴 수 있는 선택지였다.
내 마음은 집으로 가는 쪽으로 기울었다. 나이 많은 짜링때문이었다. 묘르신은 강변에 도착 한 뒤 한 번도 쉬지 않고 큰 소리로 울었다. 우리가 다음 행선지를 결정하는 시점에는 목소리가 완전히 가 버렸다. 이러다 고양이 잡는 건 아닌지 덜컥 겁이 났다. 평소 멀미를 심하게 하는 여래도 계속 트럭에 앉아 있느라 많이 지쳐 보였다.
"딸아. 일단 집으로 돌아가서, 짜링 볼 일도 좀 보게 하고, 밥도 좀 먹이고 우리도 준비를 좀 더 제대로 해서 나오자."
아빠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안일하다 판단할 수도 있을 문제였지만, 우리는 짜링이 더 걱정이었다.
다시 트럭에 시동이 걸리고, 진동을 느낀 짜링이 더 큰 소리로 울어대기 시작했다. 대성통곡을 하는 통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이불 덮인 켄넬에 자꾸만 꽂혔다. 여래도 짜링의 울음소리가 들리자 내 허벅지를 강하게 긁기 시작했다.
"짜링. 이제 집에 간다. 조금만 더 참자. 언니가 다 미안하다."
동물을 키운다는 건 사과할 일 투성이다. 창문 밖으로 들리지도 않을 사과를 내뱉으며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