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반려동물과 피난 가기(3)

반려동물 동반 대피소 언제 생기나요

by 젠쏘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온 고양이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화장실이었다. 시원하게 볼일을 보는 짜링의 표정이 스르륵 풀어졌다. 간식을 거부하던 여래도 집에 와서야 사료그릇에 코를 박았다. 동물들을 챙긴 후 우리도 국물에 식은 밥을 말아 한 끼를 때웠다.


뉴스화면이 바뀔 때마다 익숙한 지명과 낯익은 동네가 연기 혹은 화염에 휩싸인 모습으로 등장했다. 평소 재난상황 발생 시 대피소로 이용되었던 덕산중고등학교에 화재대응본부가 꾸려졌고, 처음 주민들이 대피했던 선비문화원 건너편도 화염이 번지는 바람에 그곳에 입소했던 피난민들이 신안면과 단성면으로 다시 떠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반려동물 동반 대피소를 검색해 봤지만 역시나 그런 곳은 없었다.


우리는 각자가 필요한 걸 챙겼다. 아빠는 하우스에서 고추밭에 물 줄 때 쓰건 긴 호스를 꺼내와 집 전체에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대기가 어찌나 건조한 지 집을 한 바뀌 빙 둘러서 물을 뿌리는 동안 처음 뿌렸던 곳의 물이 말랐다. 나는 창고에 있던 원터치 텐트와 침낭을 짐칸에 던져 넣고 라면과 냄비, 쌀 한 봉지와 버너를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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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 중에도 일은 해야 하니 노트북과 아이패드도 차에 넣어뒀다. 이제 뭘 해야 하는 걸까. 아무것도 손에 잡히질 않는다는 말이 바로 이런 거였다. 출발 신호가 울리길 기다리는 단거리 선수처럼 우리는 준비를 끝내놓고 멍하니 앉아 tv만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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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우리는 일주일 동안 외출복을 입은 상태로 잠을 청했다. 그러다가 이장님의 신호가 오면 피난을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길 반복했다. 실시간으로 피폐해지는 걸 느꼈다. 내가 더 예민해졌던 이유는 반려동물과 함께 피난을 가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모든 짐을 챙겨놓고 몸만 움직이면 되는 사람과 달리 리드줄도 채워야 하고 켄넬 안에 넣는 시간도 필요했다. 산불 기간 동안 몇 번이나 켄넬에 감금되었던 짜링은 내 움직임이 평소와 조금만 달라져도 줄행랑을 치기에 이르렀다. 당장 나가야 하는데 침대 밑에 기어들어가기라도 한다면... 생각만으로도 아찔했다.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산청 산불은 역대 최장기간이라는 2022년 울진, 삼척산불(213시간 43분)과는 불과 9분 차이(213시간 34분)로 주불이 진화되었다.


2016년 발생한 경주, 포항지진 이후 반려동물 동반 대피소에 대한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대피소에 들어가지 못해 실랑이를 하거나, 주차장에서 밤을 지새운 주민들이 문제를 제기했고 뉴스 보도가 이루어진 걸 기억한다. 그로부터 1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음에도 해당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2023년 한성애 의원이 반려동물 동반 대피소에 관한 법률안을 3건 대표발의했으나 법안은 통과되지 못하고 임기만료로 폐기되고 말았다. 국회의 무관심에 밀려나있는 기간 동안 반려동물과 함께 재난상황에 마주한 사람들은 선택을 해야만 했다. 스스로의 안전을 포기하거나, 반려동물을 버리거나.


우리는 전자를 택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집을 지키거나 안전하지 못한 장소에서 노숙을 해야 할 거다. 반려동물용 카트 판매량이 유아차 판매량을 앞지르는 시대가 왔는데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은 재난 상황에서 여전히 갈 곳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