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고백
산골집에는 대문이 없다. 임도길에서 곁가지로 난 길을 따라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집 마당에 도착하게 되는 구조이다. 대문을 설치하기도 애매하고, 부지가 넓은 편이라 울타리를 치는 것도 어렵다(울타리를 치려고 알아봤더니 1년 치 생활비를 훌쩍 넘는 금액을 부르길래 깨갱했다).
담을 치지 않은 덕분에 마당에는 어느 날부터인가 길고양이가 하나 둘 모여들었다. 하루 이틀 머물다 훌쩍 떠나는 녀석도 있었지만 어떤 녀석은 넉살 좋게 산골 집에 머무르며 우리 집을 급식소 겸 요양원 삼아 지냈다. 눈곱이 하도 많이 껴서 꼬비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몇 해 살아보더니 꽤 괜찮은 집 같았는지 여자친구를 데려왔다. 눈치를 힐끔힐끔 보길래 끄미라고 이름 붙였는데 둘이 결혼해서 슬하에 자녀를 두었다. 금슬 좋은 부부 덕분에 마당에 상주하는 고양이가 무려 일곱 마리가 되었다.
가족들 모두 입으로는 이제 너희 영역을 찾아 떠나라고 염불을 외면서도 밥이 떨어지면 그릇에 가득 채우고, 아파 보이면 병원에 데려가며 저마다 츤데레 면모를 뽐냈었다. 정말이지 고양이 귀여움에는 당할 재간이 없었다. 특히 고양이라면 질색하던 아빠의 마음을 사로잡은 또띠는(토르티야 색깔이라서 지어준 이름이다)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침대 삼는 풍찬노숙의 대명사 같은 존재였다. 느긋한 아이보리색 고양이는 뭔가 달랐다.
일은 겨울에 터졌다. 여름에 태어난 고양이들이 어느새 끄미만큼 자랐을 때였다. 날이 꾸물해서 졸음이 쏟아지던 날이었다. 엄마의 다급한 비명과 아빠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잠결에 잘못 들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몸은 이미 현관 밖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집 뒤쪽, 풀이 우거져 평소에 잘 드나들지 않은 곳을 향해 아빠가 돌멩이를 던지고 있었다. 엄마는 연신 또띠를 불렀다. 숲 너머 길 위로 검은 개 세 마리가 빙글빙글 돌며 우리 집을 향해 짖어댔다. 그중 한 마리의 입에 우리 또띠가 있었다. 마당 한편에서 놀고 있던 또띠를 사냥개들이 물어갔다고 했다. 슬리퍼인 것도 잊고 숲으로 달려가 주변에 잡히는 것을 미친 듯이 던졌다. 축 늘어져 덜렁거리는 고양이를 서로 차지하려 호시탐탐 노리는 개들. 옆집 개들이었다. 또 그 사람이 개를 풀었다. 발작하듯 소리를 질렀다. 엄마가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걸었을 때 태평하게 전화를 받은 그 사람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벌써 세 번째였다.
닭들을 모조리 물어 죽인 게 두 번, 속이 쓰렸지만 한 동네 사는 사람들끼리 얼굴 붉히는 일이 어디 쉬운가. 개 좀 풀지 말아 달라고 애원을 했다. 두 번째로 닭장을 습격했던 날. 닭장에는 갓 부화한 청계 병아리들이 있었다.
아빠가 던진 돌을 맞은 개가 또띠를 놓쳤다. 나는 언덕길을 기어 올라가 얼른 또띠를 품에 안았다. 소설책 속에서만 읽었던 동공이 풀어졌다는 말을 이렇게 알게 될 줄이야. 장난기로 반짝이던 눈이 검은자위로 가득 차 있었다. 눈을 뜨고 있지만 무엇도 보고 있지 않은 눈. 엉덩이에서 변이 새고 있었다. 미친 듯이 악을 썼다. 개좀 묶어달라고.
옆집 남자가 등장한 건 뜻밖의 장소였다. 옆집이 아니라 우리 집 아래 계곡에서 느적느적 걸어오는 그 사람. 등에는 총 한 자루를 덜렁 매고서였다. 이쪽은 공기가 급류가 되어 빙글빙글 도는데 저 사람 주변은 실드를 친 것처럼 고요하고 차분하기만 하다. 내 소리가 닿기는 하는 걸까. 남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개들과 함께 떠났다.
옆집 남자는 60대 초반. 개를 풀어 멧돼지 사냥을 하는 사람이다. 생계는 아니고, 취미다. 살생을 취미로 가진 자. 자정 전후로 개 운동을 시킨다며 개를 풀고 자기는 운전해 도로를 달린다. 헤드라이트 불빛 앞에서 호위하듯 개들이 질주한다. 개들은 경로를 이탈해 우리 마당을 서성거리기도 한다. 야심한 밤. 남자의 고함소리에 개들은 다시 부리나케 차에 합류한다. 잠에서 깬 나는 숨을 죽이고 남자의 행동을 살피곤 했다. 밤이 되면 항상 불안했다.
결국 경찰이 출동했다. 분노로 떨리는 우리 가족들 앞에서 그 남자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죄송하다했다. 그게 미안해하는 표정이라면 오해 받는 일이 상당히 많을 것 같았다. 잔뜩 흥분한 나를 분리한 경찰이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아시다시피 맹견이 아닙니다. 지금 현재로서는 법적인 제재를 할 수가 없습니다."
"오프리쉬는요? 목줄 안 매고 다니면 벌금 아니에요?"
"반려견은 2m 목줄해야 되는 게 맞는데 반려견이 아니고 저 개들이 엽견입니다."
오프리쉬는 off(떨어진)+leash(줄)의 합성어로, 목줄을 풀고 자유롭게 활동하는 상태를 말한다.
맹견은 로트와일러나 핏불테리어 등 몇 종의 개, 혹은 그 개의 믹스견을 의미한다. 여기에 더해 요즘은 사람이나 동물에게 위해를 가한 개는 전문가의 기질평가를 통해 맹견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하지만 일 년 전만에도 기질평가가 막 도입되던 시점이었다. 동물보호법을 찾아보아도 저 사람을 벌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반려견이 아니니 동물보호법의 등록대상동물의 범위와 그 주인의 의무를 교묘하게 피해 가고 있었다. 그 간 죽은 50마리의 닭들과 또띠를 생각하니 속에서 천불이 나서 몸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그 남자는 전혀 죄송하지 않은 얼굴로 죄송하다 하고 아무런 벌을 받지 않았다.
그 사건이 벌어진 지 두 달 후.
우리는 여래를 입양했다.
경찰이 와서 계도하고 간 후에도 남자는 우리의 눈을 피해 교묘하게 개를 풀었다. 나는 증거를 잡기 위해 액션캠까지 목에 차고 다녔지만 현장을 잡기는 쉽지 않았다. 하루에 산책 네 번. 많이 나갈수록 그 집 개와 마주칠 확률이 높았다. 집 앞을 나가는 데도 이렇게 신경을 써야 할 일인가. 부아가 치밀었다.
그 사이 남자는 사냥개 두 마리를 더 입양했다. 새끼라는데 키가 167cm인 내 허리춤까지 오는 대형견이었다.
무시하자.
개를 입양하든 말든 그 사람 자유다.
나를 건들지만 않으면 개를 백 마리를 키우든 천 마리를 키우든 상관할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남자의 개들은 자꾸만 문제를 일으켰다. 마당에 들어오는 것도 기함할 일인데 데크 위로 올라와 고양이를 위협하고 음식을 훔쳐먹었다. 쌓아둔 장작을 집어던지고 개를 쫒았다. 개는 내 기세에 혼비백산 달아났다. 이젠 전화하고 싶지도 않아서 집에서 정신병자처럼 악을 질렀다.
엑소시스트에 구마되던 그 악마도 이 순간의 나를 보면 혀를 내둘렀을 것이다. 사람을 이렇게까지 바닥을 보이게 만들다니. 이렇게 발악을 하고 나면 스스로가 너무 싫어졌다.
2m가 넘는 대나무를 깎아 죽창을 만들었다. 경찰이 와도 해결이 안 되고, 물려 죽어도 죄송하다 한 마디 하면 그뿐이다. 자구책이 필요했다. 여래 산책을 가며 대나무 죽창을 들고 다녔다. 혹시나 무방비상태로 마주쳤을 때를 대비해 애견훈련사들이 공격하는 개를 떼내는 영상을 돌려봤다. 산책 코스도 대폭 줄였다. 집 앞을 몇 번 왔다 갔다 하는 것으로 타협했다. 강아지는 불만이 가득했지만 별 수 있나.
집 어귀를 서성이고 있을 때 그 남자의 차가 지나갔다. 남자는 속도 없는지 그 일이 있고 나서도 부모님을 향해서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나에게만큼은 예외였다. 젊은 여자한테 욕 좀 들은 게 자존심이 퍽이나 상한 듯했다. 옆을 지날 때 부러 속도를 내는 얄미운 짓을 하길래 뒤꽁무니를 한껏 노려보는데 바로 옆에서 타닥타닥 속도를 줄이는 발소리가 들렸다.
사냥개였다.
황급히 여래를 안아 들었다. 이 순간 죽창이니 암바니 준비했던 건 모두 무용지물이었다. 몸을 슬그머니 틀어 여래를 최대한 품 속으로 숨겼다. 사냥개의 5분의 1쯤 되는 내 용맹한 강아지는 눈치도 없이 으르렁거리며 짖기 시작했다.
"제발 가만히 있어."
다행히 지난번 나의 난리통에 겁을 먹은 개였다. 주춤거리던 개는 몸을 돌려 달아났다. 지겨웠다. 악 쓰는 것도 한두 번이다. 군청 농축산과에 민원을 넣었다. 번호까지 매겨가며 사건을 나열하고, 이전에 있었던 피해사실을 사진파일로 첨부했다. 혹시 증거가 부족하다면 또띠가 죽던 날의 영상도 제출할 수 있다고 했다.(경찰이 오면 증거자료로 제출하기 위해 당시 상황을 찍어두었음)
며칠 후 군청에서 현장 방문을 나왔다. 옆집에 가기 전에 우리 집에 들러 피해 상황을 다시 한번 더 확인했다. 한 동네 사는 사이에다가 상대는 수렵면허가 있어 총기 소지가 가능하다는 걸 듣고는 사고발생 우려를 표했다.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니 이번에는 계도로 마무리하고 다시 한번 더 재발할 경우 예고 없이 과태료 처분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공무원들은 그 남자의 집으로 향했다.
속 시원한 대답은 아니었지만, 어차피 내가 바라는 건 행정처분 같은 게 아니었다. 그 남자가 법을 어기지 않고 자신의 통제 하에 개를 두는 것이었다. 개만 안 풀면 벌 안 줘도 되니까 개만 풀지 않게 잘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며칠 후 군청에서 답변이 도착했다.
경찰에서 받은 답변과 달리 다행히 동물보호법상 반려견으로 인정되는 것 같았다. 공무원들이 다녀간 이후 놀랍게도 남자는 개를 풀지 않았다. 밤에 개들과 동행하는 드라이브도 멈췄다. 강력한 경고 및 행정지도를 받을 때 과태료가 얼마인지 들었던 모양이다(법제처에서 확인하니 목줄 풀면 1회 20만 원 2회 30만 원 3회 이후 50만 원이다). 답은 결국 돈이었다.
이 글을 써 내려가며 너무나 밑바닥을 드러내는 것 같아 발행하기 망설여졌다. 하지만 오프리쉬는 명백한 불법이며 법의 처벌을 받는 행위라는 걸 글로 남기고 싶었다. 남자는 지금도 속 좋은 얼굴로 부모님과 인사를 나눈다. 부모님도 한 동네 살고 저렇게 친근하게 하는데 자꾸 뻣뻣하게 구는 것도 못할 짓이라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낸다. 나도 예전처럼 선명한 적의를 드러내지 않는다. 앞으로도 그 남자가 개를 풀지 않는다면 지금과 같은 스탠스로 지낼 것이다. 다만 오프리쉬로 죽은 생명들이 불쌍해 가슴이 답답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