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친구들의 행방

함께 유기된 친구들 + 전부 안락사예정

by 젠쏘


문득 달력을 보고 깜짝 놀랐다. 벌써 한 해가 다 가버렸다. 작년 이맘때 별이가 떠나고, 습관적으로 포인핸드에 들어가서 유기견들을 살펴보던 게 어제 같건만. 그때 포인핸드에 들락거리지 않았다면 이렇게 여래와 함께하는 날도 없을 것이다. 새삼 인연이란 무엇인가 생각해 보게 된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스크롤을 내려 여래의 얼굴을 확인하면서 자연스럽게 위아래에 놓인 강아지들이 눈에 익었다. 여래를 포함해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포획되어 입소한 4마리의 강아지들. 지도상으로 확인해 보니 그곳은 고속도로 졸음 쉼터 인근으로 민가가 드문 지역이었다. 누군가 일부러 내버리고 갔을 거라 짐작되는 상황.


"버린 놈 이거 정말 나쁜 자식이네. 버리려면 밥 얻어먹기 좋은 곳에다가 버리지. 굶어 죽으란 거야 뭐야."


순진한 얼굴을 가진 4마리의 개들을 차례로 살폈다. 혹여나 내가 고민하는 사이 안락사 되는 것은 아닐까. 일반적인 시 보호소는 입소한 지 한 달이 지나면 안락사 대상이 된다고 하는데, 그 기준이 명확해 보이지 않았다.


아주 오래전에 들어온 강아지는 보호 중인데, 최근에 들어온 강아지 사진 위에 안락사가 버젓이 떠있기도 하고, 건강해 보이는 개체 사진 위에 자연사 도장이 쾅 박히기도 했다. 안락사보다 자연사 비율이 훨씬 높은 보호소였다. (나중에 입양 가서 보니 보호소에 파보바이러스가 돌고 있었다. 직원분들이 매일 청소하고 소독해도 면역력이 약한 새끼나 낯선 환경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강아지들에게는 치명적이었다.)


한 달 정도 고민하다가 여래를 입양했다. 입양 후 나는 종종 입양되지 못한 여래의 친구들을 살피며 제발 입양 가라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특히 쿼카를 닮은 갈색 수컷 강아지는 직원의 착오로 얼굴을 한번 봤던 친구라 시간이 지날수록 안타까움이 커지고 있었다.


공공 육일칠.jpg 공공육일칠 강아지


그러던 어느 날.

쿼카 친구의 사진 위 상태메시지가 완료(입양)로 바뀌었다. 나도 모르게 환호가 튀어나왔다. 폰을 들고 달려가 엄마 앞에서 액정을 붕붕 흔들었다.


"엄마! 여래 친구 입양 됐나 봐!"


그렇게 입양되고 나면 해피엔딩인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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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며칠 뒤 뜻밖의 장소에서 쿼카친구를 다시 만났다. 익명의 인터넷 커뮤니티였다. 파양 되어서 다시 입양자를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전말은 이러했다.


마음씨 좋은 봉사자가 쿼카친구를 임시보호 하고 입양홍보글을 올렸는데, 마침 그 글을 보고 어떤 사람이 입양을 하겠다고 나섰다. 봉사자와 함께 보호소에 가서 입양 서류도 모두 작성하고 용품까지 마련해서 보냈는데 불과 며칠 만에 파양의사를 밝혔다고 했다.


고양이 키우는 수준일 줄 알았는데 산책도 시켜야 하고 실외배변 하는 것도 너무 번거롭다는 게 파양의 이유였다. 게시글에서 미루어 보건대 자주 나가줘야 하는 귀찮음 때문으로 추측된다. 임보자도 직장 문제로 입양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도움을 요청하는 글을 올렸다.


보면 볼수록 여래와 닮은 얼굴. 털의 질감. 실제로 보면 더 비슷하게 생겼다. 입모양이 다른 이유는 쿼카친구의 치아가 아래쪽에 하나밖에 안 남아서 그럴 거다(사고나 학대로 보임). 혈연관계인 거 같은데... 데려오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문제는 내가 그 커뮤니티에 댓글을 달 수 없었다(자격 요건이 안 되었음). 안타까운 마음에 그 글을 계속 들락거렸고 많은 사람들이 댓글을 달았지만 입양 의사를 밝힌 사람은 없었다. 게다가 나는 여래를 입양하며 앞으로 개는 딱 한 마리만 키우겠다고 부모님과 약속한 상태였다.


입양 글은 두 번 정도 더 올라오고는 아래로 묻혔다. 더 이상 댓글도 달리지 않아서 후일담은 알 수 없다. 좋은 임보자의 도움을 얻었으니 딱 한 번만 더 행운이 있어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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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직도(현재 2025/12/6) 입양을 가지 못하고 철장에 갇혀 있는 친구들이 있다. 포획된 지 1년이 다 되어 가는 개들. 제 몸 만한 케이지 안에서 새 가족을 만나기 위해 버티는 중이다. 감사하게도 보호소에서는 착하고 순한 성품 때문인지 아직 이 둘을 보호하고 있다. 입양의 가능성을 봤을지도 모르겠다.


똑같은 특이사항을 가진 개들이니 아마 여래와 비슷할 거다. 여래는 헛짖음 없고 얌전하다. 낯선 사람이 와도 짖지 않는다. 여러 사람이 사는 공동주택에 최적화되어 있다. 솔직히 털은 좀 빠진다. 돌돌이 없이 외출하기 힘들다. 산책을 자주 나가야 하고 실외배변을 한다. 피부가 건조한 편이라 냄새가 안 난다. 또 뭐가 있을까? 성견이지만 찰떡같이 적응해서 가족들과 교감한다. 개를 무슨 실내에서 키우냐며 인상을 찌푸리던 아빠도 요상한 포즈로 잠든 여래를 보며 광대를 하늘까지 밀어 올린다. 이미 성격형성이 완료되어 있으니 맞춰가기만 하면 된다.


같이 버려진 개들이니까 여래와 비슷하지 않을까. 나도 억지라는 걸 알고 있다. 같은 어미 밑에 태어나도 성격이 다 다르다는 걸. 이렇게 주절거리며 말을 늘여붙이는 이유는 혹시나 이 글을 본 누군가가 한 번쯤은 고려해 보지 않을까 하는 희망 때문이다.




*포인핸드> 보호소 검색> 경남> 진주> 공고번호 검색>2024-00619, 2024-00620을 검색하면 여래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혹시 다른 강아지를 찾는다면 부산 (강서구, 사하구, 사상구) 하얀 비둘기를 봐주세요! 2025년 12월 -2026년 1월 사이에 110마리 모든 동물들을 안락사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유기견 입양, 임보에 관심 있으시다면 한 번만 고려해 주세요.

(심각한 재정난과 정신적 고통으로 인해 더 이상 보호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함)


***부산이 너무 멀다면 인천시도 있습니다.

12월 20일 인천 서구 우리 동물병원 유기동물 전부 안락사 예정

12월 27일 인천수의사회 보호소 유기동물 전부 안락사 예정


안락사가 예정되어 있는 보호소에 지금도 새로운 유기견이 자꾸 들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유기견 활동가도 아니고, 모든 동물을 도울 여력도 없지만 혹시나 이 글을 읽는 분 중 강아지 입양을 생각 중인 분이 있다면 포인핸드에 들어가셔서 사진만이라도 한번 봐주세요.


처음엔 꼬질꼬질하고 못생기다 했던 우리 여래도 가족과 함께하고는 표정부터 달라졌어요. 왼쪽이 과거 얼굴이고 오른쪽이 6개월 후 모습이에요. 솔직히 제가 되게 잘해주는 견주는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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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극진히 키우는 사람들이 말합니다. 개 있으면 여행도 가면 안 되고 미용도 시켜야 하고 고급사료에 수제 간식 먹여야 한다 합니다.


저희 여래는 사료도 고급 사료 못 먹이고, 테무에서 산 가위랑 미니바리깡(3천원 짜리)으로 집에서 미용시킵니다. 저 걷는 김에 같이 데리고 나가는 게 전부인데도 애가 저렇게 바뀌었어요. 형편껏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주면 됩니다. 성견이라고 절대 어렵지 않습니다. 끝까지 책임질 마음만 있으면 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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