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개의 취향

by 젠쏘

여래는 우리가 개를 키워온 이래 최초로 실내에서 키우는 개다. 또한 아무런 목적 없이 '그냥' 키우는 개다. 그럼 그 전의 친구들은 무슨 목적을 갖고 키웠냐 물으신다면?


우리 가족은 20년 전 전원생활을 시작했다. 마당이 넓고 대문이 없는 집을 지었다. 담을 치기에는 땅 모양이 애매했다. 사방에서 외부인이 침입해도 집 안에 있으면 알 도리가 없었다.


하루는 소파에 누워 낮잠을 자고 있는데 낯선 시선에 눈을 번쩍 떴더니 어떤 부부가 날 구경하고 있었다. 화들짝 놀라 창문을 열었다. 누구냐고 물으니 지나가다가 집이 예뻐서 구경 왔단다. 밖에서 구경하는 거야 뭐라 할 수 있나. 샷시에 바짝 붙어서 손으로 쌍안경을 하고 집안을 들여다보면 제 아무리 강심장이라도 놀랄 일이다. 그때 나는 고작 중학생이었다. 우리는 개가 필요해졌다.


이후 우리 집에 온 개들은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이행해 주었다. 사람뿐만 아니라 고라니나 멧돼지가 작물을 건드릴 때도 컹컹 짖으며 우리에게 신호를 줬다. 그럼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달려 나가는 거다.


필요에 의해 키우는 개.


자식처럼 키우는 분들이 들으면 뜨악할 이야기일지 모른다. 사랑을 주었지만, 충분히 주었냐 하면 할 말이 없다. 개들에게는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다. 같이 있기만 해도 반기고 좋아해 줬으니 개에게 취향이 있는 지도 몰랐다.


여래는 나와 24시간 온종일 붙어있는다. 자매님의 결혼에 관련된 이틀을 제외하면 입양 후 지금까지 나와 떨어져 지낸 적이 없다. 나는 재택업무를 하는 데다가 외출은 거의 하지 않는 지독한 집순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여래에게도 취향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엉덩이 한쪽이라도 이불이나 방석이 있어야 앉는다.

공 보다는 줄 형태의 장난감을 좋아한다.


KakaoTalk_20251227_122917152_02.jpg 줄다리기짱!


펫밀크보다 락토프리 우유를 , 반숙보다는 완숙이다. 대신 식으면 떨떠름하다.

구수한 통밀 깜빠뉴는 껍질은 뱉어 버리고 속살만 먹는다.

마른 간식보다는 촉촉한 간식을 한 입 크기로 잘게 자른 걸 좋아한다.

의외로 고구마는 잘 안 먹는다. 대신 밤은 한 입 얻어먹기 위해 갖은 애교를 부린다.

고양이의 환심을 사려 몸을 낮추고 짖는다.

KakaoTalk_20251227_122917152.jpg 역효과 최고!

산책은 여름보다 겨울이다.

여름엔 쉬만 하고 들어가는데 겨울에는 영하 8도가 넘나드는 추위에도 아쉬운 기색이 역력하다.

KakaoTalk_20251227_122252510.jpg 집에 가기 싫어...

가족 중 언니를 가장 좋아하지만 삐쩍 마르고 키 작은 아저씨만 보면 리드줄을 당기며 달려간다.

파란 계열의 등산복, 픽업트럭과 포터 소리를 따라간다.

긴 원통형 물체를 보면 몸을 움츠리고 싫은 기색을 보인다.


여래의 취향 속에서 사라지지 않은 유기의 흔적을 발견한다. 여래와 같이 버려진 강아지 4마리 중 한 마리는 임보와 입양과 파양을 전전하다 소식을 알 길이 없게 되었고, 나머지 두 마리는 공고 일 년이 되던 날 안락사 되었다.


이제는 안다. 여래와 함께 유기되었던 개들도, 이때까지 키웠던 모든 개들도 각자 저마다의 취향이 있었을 거란걸. 바보처럼 개들은 사람이라면 가리는 거 없이 다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취향을 가질 만큼 충분한 사랑과 기회를 제공받지 못했을 뿐이다.

한반도가 꽁꽁 얼어붙는 혹한에도 옷을 한 겹 더 입히고 산책을 나서본다. 한번도 취향을 가져보지 못한 옛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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