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심야의 개산책

방법을 찾아야 한다

by 젠쏘

고함을 치든 말든 냄새를 맡으며 배출할 장소를 물색 중인 조그만 엉덩이가 보였다. 리드줄로 탁 신호를 주니 고개를 돌려 까만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밤하늘보다 더 새까만 순진한 눈. 혹시 내가 데려온 게 강아지의 탈을 쓴 작은 악마가 아닐까? 잠이 부족하니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꽁꽁 언 몸으로 돌아와 발을 닦이는데 어둠 속에서는 보이지 않던 도깨비풀이 털 곳곳에 묻어 있다.


"거참. 한 방 쓰는 사이에 배려 없네."


털을 뒤적거리든 말든 이불 위에 털썩 엎드리고 잠을 청한다. 얄밉지만 귀엽다. 그리고 안쓰럽다. 쾌변의 기쁨을 모르는 강아지라니. 가시를 하나씩 떼어내며 생각을 고쳐먹었다. 고함을 지른다고 말을 들으면 그것이 개일까. 한 방에 시원하게 배출하면 모든 게 해결될 일 아닌가?


그래.

문제가 있으면 해결하자.


이왕 해결하는 김에 전부 살펴보기로 했다. 건강한 강아지는 아니지만 신경 쓰면 좋아질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선택한 전략은 약식동원(藥食同原). 못 먹어서 생긴 문제니 먹이면 해결되겠지. 애석하게도 여래는 많이 먹는 강아지는 아니었다. 맛있는 건 기가 막히게 아는데 사료에는 큰 흥미가 없었다. 미식가이면서 소식가. 제일 복장 터지는 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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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모소식에 시무룩해진 여래

따순 방에서 신경 써서 먹이는데도 갑자기 콧잔등에 털이 빠지기 시작했다. 저도 밤 외출이 고되었던 걸까? 정말 흥미진진한 전개가 아닐 수 없다.(사실 아님) 병원에 데려갔더니 원장님은 못 먹고살던 후유증이라며 약은 필요 없고 사료에 오일 좀 섞어 먹이라는 쿨한 처방을 내렸다. 조언대로 식단에 사료의 양을 줄이고 줄인 양만큼 계란과 북어를 추가했다. 계란을 익힐 때는 올리브오일과 코코넛오일을 번갈아가며 사용하기로 했다.


매일 아침 특식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계란만 골라먹고 사료는 그릇 밖으로 뱉어버리는 만행을 저질렀지만 뭐라도 먹으니 됐다는 마음이었다. 방 한쪽에 마련된 잠자리도 바꿔버렸다. 여래의 입장을 생각해서 내린 결론이었다.


*여래의 입장
1. 야산에서 친구들과 똘똘 뭉쳐 살다가 갑자기 보호소에 잡혀감
2. 기약없는 감옥살이 시작
3. 왠 덩치 큰 여자가 나타나서 차에 태우고 어디론가 감
(구토를 두 번이나 했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냉혈한이었음)
4. 목에 줄을 채우고 마음대로 못 가게 함


좀 더 편하게 올라올 수 있도록 계단을 마련하고 침대 위에 올렸다. 여래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극세사 이불이 신기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엉거주춤 서 있었다. 코코넛오일로 만든 천연화장품을 손으로 잘 녹여 털에 골고루 문지르며 전신의 털을 마사지했다. 거친 털 위로 경직된 근육이 느껴졌다.


"여래야. 이제 여래는 우리 가족인 거야. 언니랑 여래랑 평생 같이 사는 거야. 그러니까 불안해하면서 밖으로 안 나가도 된다. 자다가 무서우면 언니 옆으로 온나. 알겠제?"


알아듣는 걸까. 힘을 풀고 스르륵 몸을 맡기는 동그란 뒤통수가 이렇게 귀여울 수가!




식사를 바꾸고 밤마다 마사지를 해주면서 밤 산책의 빈도는 점점 줄어들었다.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잔뜩 움츠리고 자던 여래는 어느 순간부터 힘을 쭉 풀고 옆으로 누워 잤다. 감격스러운 변화였다. 가끔 잠꼬대도 했다. 깨어있을 땐 하루에 한 번 짖을까 말까 한데, 꿈꿀 땐 용맹스럽게 짖으며 발을 꼼지락거렸다. 그럴 때 가슴을 토닥거려 주면 잠에 취해 있으면서도 다리 한쪽을 들어 배를 보이는 걸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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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간 지극정성으로 돌본 결과 심야의 개 산책은 완전히 끝났다. 밤에 나가지 않게 되었지만 취침 전 마사지는 우리의 루틴이 되었다. 당연한 듯 나를 등지고 엉덩이를 붙여 앉는 모습을 보면 가끔 기가 막혀 웃음이 난다. 켄넬을 마다하고 고집스레 찬 바닥에 앉던 그 강아지는 천 쪼가리 하나라도 있어야 바닥에 앉는 공주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