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의 부재

든 자리 몰라도 난 자리 안다

by 젠쏘

기억 속 첫 강아지 아롱이. 희뿌연 기억 속의 갈색 점박이 똥개는 불러도 오지 않고, 살갑지도 않았다. 6살 어린이는 항상 잡히지 않는 아롱이의 뒤꽁무니를 쫓아 동네를 배회했다. 댐이 생긴 이후 아침마다 짙은 안개가 드리워지는 동네에 꽃상여가 뜨던 날. 상여 따라간 아롱이 때문에 우는 줄도 모르고 동네 아낙들은 "저 어린것이 뭘 안다고. 증조할매랑 살 부비고 살았다고 저리 목놓아 우네." 하며 눈물을 훔쳤다. 드러누워 고집을 피우느라 땀에 폭 젖은 어린이에게 삼촌이 밥상을 들고 찾아왔다.


"국물 한 그릇 먹고 뚝 해라, 뚝!"


먼 훗날 내가 먹은 게 뭔지 알게 되었을 때의 감정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토록 좋아했던 아롱이 살해에 나도 가담한 셈이니까. 화를 내기도 슬퍼하기도 너무 늦어버렸다. 당시에 남자 어른들이 오랜만에 모였으니 개 한 마리 잡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대접할 것도 마땅찮은 시골이라 할머니는 그러라 하셨단다.


이후에도 나는 많은 개들을 만났다. 아파트에 살아 키우지는 못했지만 할머니 집을 거쳐간 도사견과 믹스견들의 감촉은 아직도 선명하다.


중학교 2학년. 아파트를 떠나 전원주택으로 이사하고, 처음으로 키우게 된 강아지는 짖음 때문에 6번이나 파양을 당한 잉글리시 코커스패니얼이었다. 은은한 갈색 점이 주근깨처럼 콧잔등에 뿌려져 있고 다리에도 콩알만 한 얼룩이 엷게 드리워진 인생 최초의 서양 개. 시끄럽고 별나긴 했지만 그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이날 이후로 내 삶에는 언제나 개들이 있었다. 잘해주었냐 물으면 글쎄. 지금 떠올려보면 무지했다. 딱 하나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모두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함께 살았다는 점이다.


산골로 이사 온 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개를 키웠다. 우리 집에서 개는 단순히 귀여워서 키우는 존재가 아니었다. 인적 드물고 대문 없는 집에서 개들은 문지기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그날도 풍산개 별이는 마당에 들어선 우체국 택배차를 향해 짖었다. 개 짖는 소리에도 마당에 나가볼 새 없이 손을 움직여야 했다. 설 대목을 앞두고 주문이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잘 마른 곶감을 줄에서 내리고 포장해서 명절 전에 모두 발송해야 했다. 부모님과 내 앞에는 포장을 기다리는 감 3만 개가 있었다. 감 작업장에서 모양을 잡아 포장하는데 아빠의 다급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빨리 나와봐라!!!"


헐레벌떡 달려가보니 아빠 앞에 별이가 쓰러져 있었다. 바닥에 엎드려 말려들어가는 개 혀를 빼내고 심장을 누르기 시작했다. 20분이 넘는 심폐소생술에도 호흡이 돌아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키워왔던 우리 개들은 모두 눈을 뜨고 죽었다. 별이도 마찬가지였다. 억지로 눈을 감기는데 이미 말라버린 각막에 내 지문이 찍혔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아침에 짖던 그 목소리가 선명한데. 어쩌다 갑자기 심장이 멎어버린 걸까.


KakaoTalk_20201230_232232772_03.jpg 우리에게 많은 웃음을 주었던 별이. 박장대소를 많이 했던 웃기는 강아지.


4마리를 동시에 키운 적이 있다. 저마다 사연을 갖고 우리에게 왔다.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어서, 개가 크니까 힘들어서, 똥 치우기 귀찮아서. 아기를 낳아서. 개들이 모두 무지개다리를 건넌 후 우리는 딱 한 마리에게만 잘해주자는 마음으로 수를 늘리지 않았다. 그런데 별이가 가버리고 아주 오랜만에 공백이 생겼다.


"앞으로 절대 안 키울 거다."


치기 어린 다짐을 했지만 마당 한편 비어버린 집을 볼 때마다 몸에 구멍이 난 거 같았다. 서운함을 감추려 내뱉은 한숨 끝에 물기가 어렸다. 눈물 줄줄 흘리면서 곶감을 포장했다. 올해 곶감을 받은 손님들은 진한 단맛 속에서 소금기를 느꼈을지 모른다. 내 마음과 별개로 부모님은 강경했다. 이 깊은 산중에 개 한 마리 없이 겁나서 어떻게 살겠냐고. 한 마리는 꼭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코카스패니얼을 제외하고 항상 진도 믹스들과 연이 닿았다. 털이 좀 많이 빠지긴 했지만 충직하고 깔끔했고, 힘이 좋았다. 주 보호자는 나였다. 지금 입양해 수명이 다 할 때쯤엔 나도 나이 지긋한 중년이 되어 있을 거다. 산책 매너가 좋았던 우리 개들도 눈앞의 사냥감을 쫓을 땐 순간적인 본능에 충실했다. 고라니를 보고 달려갈 땐 힘에 못 이겨 흙길에 고꾸라지기도 했다. 대형견을 입양하고 싶었지만 현실적인 문제도 고려해야 했다. 보호소에서 입양할 것, 믹스견일 것. 이 두 가지는 반드시 지키겠노라 다짐하며 포인핸드 어플을 열었다.


포인핸.jpg 입양 당시에는 모바일앱만 지원됐지만 현재는 웹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포인핸드는 강아지 키우는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어플이다. 전국 유기견 보호소 강아지들의 사진과 공고 중, 보호 중, 귀가, 입양, 자연사, 안락사 모두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강아지를 입양하기로 결정하고 곶감 포장을 하는 틈틈이 포인핸드를 뒤적였다. 아직도 감 작업이 많이 남았던지라 곧바로 데려 올 수 없었다. 그 사이 입양하고 싶었던 강아지가 안락사당하기도 하고, 아파서 죽기도 했고, 주인을 찾아가기도 했다. 버려진 개들 중에도 품종견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어리고 예쁜 강아지는 200개의 하트가 찍혀 있기도 했다. 인형처럼 예쁜 그 강아지는 댓글도 많았다. 서로 입양하려고 하는 바람에 입양 대기까지 걸어뒀다고 했다. 아래로 스크롤을 내리면 고작 두세 개의 하트에 댓글도 하나 없는 유기견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끌려 올라왔다.


누가 내 가족이 될까. 가족이 될 아이는 운명처럼 느낌이 온다. 버려졌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예쁜 개들이 많았지만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다. 스크롤을 내리던 손이 멈칫. 한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삐쩍 말랐는데 눈빛이 좋았다.


찾았다.


액정 너머의 나를 보고 있는 듯한 눈동자. 해석할 수 없지만 수많은 이야기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극적인 연출을 위한 꾸며냄이 아니라 진짜로! 부모님께 보여드리니 탐탁지 않은 반응이 흘러나온다. 아무래도 나만 운명을 느낀 것 같았다.


유기견을 입양했다.jpg 목젖의 형태가 보일 정도로 깡마른 상태였다


"산에서 키우려면 대형견이 낫지 않나?"

"이제 나도 나이 들 텐데 대형견은 힘들다. 돌발상황에서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큰 개를 키우고 싶으면 산책은 앞으로 아빠가 해달라 하니 일언지하에 거절이다. 개랑 같이 걸으면 운동이 될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정말 모르는 소리다. 삼보일킁. 세 번 걸을 때마다 한 번 킁킁 냄새를 맡아야 하니 걷다 서다를 반복하게 된다. 아빠의 개 산책은 오직 직진뿐이다. 개도 힘들고 아빠도 운동을 못하니 서로 불만족이다. 나는 그걸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이곳은 사냥개 오프리쉬를 즐겨하는 이웃(이라고 말하기도 싫은 인간)이 살고 있다. 큰 개가 흥분했을 때는 성인 남성도 말리기 힘들다.


"새끼 때부터 키워야 정이 붙는 거 아이가? 이 애는 두 살인데?"

"우리 첫 강아지 기억 안 나나? 다 커서 델꼬 왔는데 하나도 문제없었다."


좋을 대로 하라는 미적지근한 허락이 떨어졌다. 입소기간을 보니 이미 유예기간 한 달을 넘겼다. 게다가 열몇 개쯤 찍힌 하트가 거슬렸다.나를 제외한 열몇 사람이 이 개의 매력을 알아봤다.


'누가 먼저 입양해 버리면 어떡하지?'


지금은 마음씨 착한 이용자들이 응원처럼 누르고 가는 하트라는 걸 알고 있다. 나도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당시의 마음은 당장이라도 개를 빼앗길 것 같았다. (이미 마음속으로는 내 강아지가 되어버린 상황.) 댓글 하나 달리지 않은 인기없는 강아지였지만 조급증이 일었다. 보호소 통화 가능 시간이 되자마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개를 입양하고 싶어서요. 네. 번호가... 이공이사공공육일팔이요. 암컷 맞아요. 죄송한데 저희가 곶감 농가라 명절 전까지 개를 데리러 갈 수가 없어서요. 조금만 기다려주십사 하고요. 안락사 기간을 넘겼길래 전화드려요. 최대한 빨리 갈 거긴 한데 혹시 몰라서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보호소 직원은 친절했다. 흔쾌히 그러겠노라 대답해 줘서 마음이 한결 놓였다.


"... 근데예. 아무래도 평생 같이 할 가족을 맞이하는 건데 사진으로만 보고 결정하는 건 좀 그렇다 아입니까. 실제로 한번 만나보시고 결정을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매주 수요일에 입양 결정 난 친구들을 수의사 선생님이 검진을 해주시거든요. 그전에 한번 오셔서 보시고 가족들끼리 의논을 함 해보시는 건 어떠세요?"


일리 있는 말이었다. 우리는 모든 택배 발송이 끝난 다음 날, 가족이 될 강아지를 만나기 위해 진주시 집현면에 있는 보호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