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끄고 누우면
나는
공중부양하는 꿈을 잃어버린
외로운 서커스 단원이 된다
공중엔 색채가 있고
고운 누이의 얼굴이 있고
반가운 둔갑술이 둥둥 떠다닌다
교묘한 자세로 맞선 대각선
그곳엔 악한 정수가 널뛰듯 흐를 테지만
모퉁이 끝엔 원한이 멈춰서 가만히 즙을 짠다
손을 부옇게 그려본다
한 번 휘두르고
두 번 아니 세 번, 동작은 왜곡
기억은
책갈피 사이에 접혀있고
존재는
책장을 뒤엎어봐도 회복되지 않는다
책등에 인쇄된 오래된 이름을 찾아서
그 이름들이 각인에서 서서히 풀려날 때까지
저주하듯 이름을 불러본다
점과 점 사이를
가르며 누빈다고
선으로 다시 태어날 수는 없겠지
면의 어둠이 젖히고
실체가 드러난다
그러나 공허한 먼지 알갱이
불순물만이 자유롭게 부상한다
검은 들녘을 상처만 남은 언덕을
어쩌면 빅뱅이 다시 시작될지도
주인공은 내가 아닐 테지만
어둠은 참으로 진하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