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대생의 심야서재 Feb 23. 2024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죄는 사전적 의미로 잘못이나 허물 때문에 벌을 받을 만한 일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는 것이 우리의 오래된 인식이다. 죄는 종교적인 뜻도 품고 있는데, 그것은 신의 규율을 어기게 되면 벌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두 번째로 읽었다. 첫 번째는 순수함 호기심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독서 모임 때문이었다. 책을 완독하고 나서 몇 가지 궁금한 것이 생겼는데...


도스토옙스키는 왜 이런 소설을 쓰게 됐을까?

도스토옙스키는 이 소설에서 어떤 말을 전달하고 싶었을까?

도스토옙스키에게 죄는 어떤 의미였을까?

인간은 과연 죄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해방될 수 있을까?)


이 책은 인간의 깊은 심리를 다룬다.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는 선한 면과 악한 면, 두 가지가 공존한다고 믿는 편인데, 필요에 따라서 인간은 선한 면과 악한 면을 사용한다고 믿는다. 흑과 백의 논리처럼 한 인간이 가진 면이 일방적이다,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소설에는 다양한 인간이 등장한다. <죄와 벌>을 비롯한 모든 소설이 갖고 있는 것은 다양성이다.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고 다양한 성격, 다양한 심리 그리고 다양한 행동이 소설에서 펼쳐진다. 인생에서 우리가 겪지 못했던 인물과의 관계를 소설에서 맺게 된다.


그런데, 소설 속에는 내가 호감을 느끼는 인물이 반드시 등장한다. 혹은 내가 극도로 혐오하는 인물도 만나게 된다. 동정, 연민, 공감, 혐오, 애정과 같은 다양한 감정을 소설에서 체험하게 되는데, 어쩌면 평상시 느끼지 못하는 감정을 체험하기 위해서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죄와 벌>에서는 살인자의 심리적 혼란, 범행의 무가치한 동기, 선과 악의 대립, 범죄자의 그릇된 신념, 악행을 저질렀지만 선한 본성 때문에 느끼는 내적갈등과 죄책감, 그리고 인물의 변화를 그린다. 최대한 스포일러를 발설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그럼에도 스포일러를 언급할 수도 있으니 아직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면 조심해서 읽는 게 좋겠다.


내가 살인자인 주인공 라스콜니코프에게 연민을 느꼈다면, 나 역시 그와 다를 바 없을까? 그가 가진 다채로운 심리 변화와 그의 도덕적 갈등이 나에게 감흥을 일으켰다면 나 역시 범죄자의 심리를 따르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소설은 순수한 대리체험이다. 우리가 사회에서 경험할 수 없는 부조리한 현실을 소설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대신 체험하게 유도하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는 주인공의 악한 면으로부터 안전하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이 위대한 것은 어쩌면 자신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를 추악한 면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며 스스로 교화하는 과정을 통해 소설 속의 인물처럼 마음의 정화 과정을 겪는다는데 있다. 그것이 카타르시스가 아닐까? 라스콜니코프가 살인을 저질렀기 때문에 나는 살인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묻는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살인의 목적이 정당하다면 그것은 도덕적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라는 얘기다. 주인공 라스콜니코프는 계획적인 살인을 저지른다. 그는 자신이 비범한 인간, 즉 나폴레옹과 같은 영웅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그는 전당포나 운영하면서 힘이 없는 시민의 피를 빨아먹는 이와 같은 노파를 살해한 것에 정당한 논리를 들이댄다. 살해를 저질렀지만 자신은 특별한 인물이니 범죄를 저질러도 무방하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나름의 논리와 목적을 지닌 라스콜니코프였지만 그도 인간이었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 죄책감은 자신의 정당성을 무너뜨리고 논리를 어지럽힌다.


소설에는 살인을 저지른 라스콜니코프와 그를 둘러싼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살인을 저질렀지만 과연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등장인물은 그에게 구원에 이를 해답을 간접적으로 제시한다. 구원은 스스로의 내면으로부터 시작될까? 아니면 타인의 도움으로부터 시작될까? 인간은 자신의 의지만으로 내재된 선한 면을 깨울 수 있을까? 도스토옙스키는 그에 관한 철학적 탐구를 소설에서 진행한다. 인간이 보여주는 행동만으로는 선하거나 악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 인간의 심리는 좋고 나쁨이 혼재된 복잡한 존재이며, 인간의 내면은 인간이 만든 도덕성과 윤리를 떠나 또한 종교적인 면을 떠나, 존재 자체로서의 문제임을 등장인물을 통해 드러낸다.


어쩌면 소설 <죄와 벌>을 읽는 이유는 존재론과 자유 의지와 같은 철학적 성찰을 경험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그의 소설을 읽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죄에서는 멀어지고 사람과는 더 가까워지는 경험을 하게 되지는 않을까? 그가 이 소설을 읽고 나서 그가 전달한 가치는 한 단어로 말할 수 있다. 그 단어는 독서 토론을 통해서 함께 나누고 싶다. 궁금한 사람은 3월 1일부터 시작하는 독서 모임에 참여하자!


 

신청은 아래에서

https://forms.gle/qcMwLmMRWa99F3WS7

https://brunch.co.kr/@futurewave/1601




매거진의 이전글 인간의 심리를 여행하는 1년, 도스또예프스키와 함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