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나의 숫자는 안녕한가
책을 세상에 내놓은 지 어언 두 달. 출간 제안에 가슴 뛰던 순간부터, 밤샘 원고 작업(솔직히 밤샘은 거짓말)과 지난한 교정의 시간까지, 숨 가쁜 시간들을 오롯이 글쓰기에 쏟아부었건만, 나는 여전히 다음 문장을 향해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나는 활자들의 행렬을 매일 관찰하고 있다.
벌써 다섯 번째 책을 세상에 내놓았지만(자존심이 상해서 자비 출판은 셈에서 제외합니다), 삶의 풍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낮에는 직장인의 가면을 쓰고 밥벌이에 충실하며, 해가 지면 골방의 작가로 변신하는, 흡사 지킬 앤 하이드 같은 이중생활을 이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한때는 책을 쓰면 퇴사가 달콤한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고 기대했건만, 이제 그것은 그저 신기루 같은 미몽이라는 사실을 나는 이미 깨달았다. 글쓰기는 이제 삶의 일부를 넘어, 어쩌면 내 존재 자체를 증명하는 숙명이 되었다. 그러니까 무대에서 현재의 배역에 충실한 배우처럼, 그저 즐기며 주제를 바꿔가며 매일 써 내려갈 뿐이다.
책 출간과 함께 어김없이 찾아오는 새 습관이 있으니, 바로 오프라인 서점의 재고 파악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회사의 그룹웨어보다 먼저 교보문고 앱에 접속해 재고 현황을 살피는 것이 일과의 시작이다. 내가 교보문고의 베테랑 MD라도 된 듯, 숫자를 예리하게 훑는 이유는 단 하나, 내 책이 빼곡한 매대의 치열한 삶의 전장에서 당당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다.
광화문점 3권, 강남점 15권, 잠실점 3권… 이런 식으로 말이다. 여기서 숫자가 0이나 1인 것은 크게 일희일비할 것이 못 된다. 서가 어딘가에 고이 모셔져 독자를 기다리고 있을 확률이 높으니.
진검승부는 그 좁디좁은 매대 위, 책들이 서로의 어깨를 부딪히며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는 곳에서 펼쳐진다. 다행히 아직 내 책은 그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밀려나지 않았다. 특히 강남점에서 선전하는 모양새가 나름 위안이 되지만, 이 또한 내일이면 어찌 될지 모르는 살얼음판 같은 운명이다.
예스24 온라인 서점의 판매 추이도 빼놓을 수 없다. 4월 10일 출간 이후 현재 판매지수는 3,414점. 이 숫자가 오늘 치솟은 국장처럼 상한가를 치면 좋으련만, 롤러코스터를 타는 내 감정선처럼 오르락내리락 불안한 곡예만 보여준다.
얄궂게도 그날의 성적표는 꼭두새벽 3시에 리셋되는데, 나는 왜 매번 그 시간에 알람이라도 맞춘 듯 깨어나 점수를 확인하고 나서야 다시 잠을 청하는 걸까. 이 미스터리한 밤의 의식은 언제까지 계속될는지, 나 자신도 풀지 못할 수수께끼다.
온라인 서점의 숫자놀음에만 매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작가라면 모름지기 의미 있는 판촉 활동, 즉 또 다른 형태의 글쓰기로 독자들을 만나러 나서야 한다. 그럼에도 나는 골방에 앉아 글을 쓰고 있지만.
책 한 권 세상에 내놓았다고 끝이 아니라니, 써야 할 글이 마치 파도처럼 밀려온다. 역시 글쓰기란 끝도 없고, 쉼도 없고, 한 치의 자비도 없이 이어져야 하는 고독한 수행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어쩌면 작가란, 영원히 마침표 없는 문장에 얽매어 살아가는 존재일지도.
솔직히 고백하건대, 이런 종류의 글이 독자들에게 어떤 함성으로 가닿을지는 모르겠다. 안갯속에서 길을 잃은 기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절박하게 무언가를 계속 써 내려가는 이유는, 마치 망망대해에서 작은 등대 불빛 하나에 의지하듯, 내 책이 세상의 온갖 잡음 속에서 속절없이 잊히지 않도록 붙잡고 싶은 처절한 몸부림일 것이다. (피를 토하는 심정이라고 문학적 과장을 쓰고 싶지만 이 마음은 독자분들의 너른 아량에 맡겨본다.) 무엇이든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시리고 아픈 일이니까.
무엇이든 잊힌다는 건 참 슬픈 일이 아닌가.
문제의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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