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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Feb 23. 2017

길은 글이다.

길은 내 가슴에 부풀었던 설렘을 회복시킨다. 길은 글쓰기의 비타민이다.

나는 길을 사랑한다. 가쁜 호흡을 고를 수 있는 느린 길을 특히 사랑한다. 탄탄대로나 쭉 뻗은 길은 싫어한다. 길에서 좋아하는 것을 상상하거나 방황하다 을 잃게 되는 어리석음 조차 사랑한다. 길은 내 발걸음을 멈추게도, 징검다리처럼 이곳저곳을 여행할 수 있게도 해줬다. 나는 길에서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를 누렸다. 자유의 지위를 만끽하며 시간의 지배에서 벗어나 혼자만이 꿈꿀 수 있는 '상념의 골짜기' 속으로 빠졌다.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은 어디?"

"지금, 내가 가는 길이 과연 맞을까? 어느 곳으로 가야 할까?"


생각은 필연적으로 삶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졌다. 내가 걸었던 모든 길은 순탄치 않았다. 순리대로 살려고 노력했지만, 뜻하지 않은 장벽에 부딪히기도 했고 멀리 돌아가야 했기에 좌절하기도 했다. 길은 시련을 안겼지만, 견딜 만큼의 내성을 기르게 했다. 하지만 걷고 있을 때는 과정의 중요성을 몰랐다. 과거를 잊기 위해 내가 이루어놓은 것을 버렸고 스스로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으며 미래만을 좇았다. 편안한 길은 원래 없는 것이었다. 만약 내가 평탄한 길을 고집했다면, 지금처럼 삶의 분명한 태도를 갖추지는 못 했을 것이다. 나는 한순간에 허물어졌을 것이다.


길은 때로 여러 갈래로 갈라졌다. 길은 나에게 단호한 선택을 강요했다. 선택을 위해서 마음을 투명하게 비워야 했다. 결과는 성공과 실패 두 가지로 주어졌다. 선택의 과정은 무한히 이어지고 반복되었다. 선택의 결과는 방황, 충돌, 위기, 상처, 극복, 치유, 환희를 낳았다. 


길에 서있는 존재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그들과 마음의 언어를 주고받았다. 나의 처지를 이해해달라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꽃길만 걸을 수 있다면 과연 그것이 나에게 유익할까? 길에는 가시밭도 있고 늪도 있고 오르내림도 있고 낭떠러지도 있는 것이다. 위험과 좌절을 겪지 못하면 기쁨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내가 걸어갔던 어두운 길도 밝은 미래를 위한 예비하기 위한 과정이었던 것이다.



별 볼일 없는 시골의 흙길, 길가에 피어난 코스모스를 바라보며 걷던 시간이 있었다. 구수한 흙냄새를 맡으면 어지러운 삶을 잠시 잊을 수 있었고, 고단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좋았다. 아무렇게나 생겨먹은 돌멩이가 서두름을 방해했다. 느린 삶의 의미를 차분하게 설명했다. 그 길에서는 속도보다는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길은 새로운 경험과 기회를 나에게 주었다. 길은 갖가지 생각을 생산했다. 길에서 나는 무한한 상상의 날개를 펼쳤다. 상상은 영감으로 이어졌고 쏟아지는 영감은 글로 탄생되었다. 길은 비옥한 글밭이었다.


나는 언제든 멈출 수 있다. 나는 목적지를 모른 채 폭주하는 기관차가 아니다. 두 발을 동력 삼아 많은 길을 걸었고 그 과정에서 얻기도 버리기도 했다. 머릿속에는 방황하던 글자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세상에 나가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묵묵히 걸으며 침묵했던 순간이 빛을 누릴 준비가 되었다. 내 눈에 각인된 경험들은 현재 글쓰기의 바탕이 되었다. 한자리에 정체되거나 새로운 만남을 두려워했다면 나는 글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작은 것에서부터 점차 큰 것으로 확장하며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기에 나는 떨지 않는다. 


길은 글로 모아진다. 길에서 얻는 경험은 글의 바탕이 된다. 그것은 직접 내가 겪은 것이어야 한다. 시간의 구속에서 벗어나 길과 내가 하나가 되는 순간만이 의미가 있다. 급하게 먹는 것은 체하게 마련이다. 음식은 천천히 소화해야 무리가 없다. 글쓰기도 느리게 체득되는 것이다. 느리게 얻은 것은 오래도록 기억된다. 길에서 나는 독립적인 존재이지만, 길에서 얻는 생각이 다시 글로 탄생될 때 '나'는 '우리'가 된다.



길은 다음 교두보를 위한 과정이다. 글쓰기에도 순서와 체계가 있다. 작은 계단부터 밟고 올라가야 한다. 길 따라서 여행하다 보면 다음 목적지가 나타나듯, 글쓰기도 거쳐야 할 관문이 있다. 작은 글 조각들이 모여 문장을 이루듯, 글쓰기에도 차근차근 반드시 쌓아야 할 기초가 있는 것이다. 길을 걸을 때마다 나는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간다. 겸손한 마음으로 글쓰기에 대한 진지한 자세를 다시 고친다. 탐욕, 시기. 원망의 감정을 버린다.


걸어가다 보면 나만의 길을 찾을 수 있겠지. 나는 오늘도 길을 걷는다.


길은 내 가슴에 부풀었던 설렘을 다시 회복시킨다. 길은 글쓰기의 원천이자 비타민이다. 글은 책상에서 쓰는 것이 아니다. 길에서 빌려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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