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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Mar 04. 2024

주머니 속의 장르 22

지구불시착 신제품 떡메모지를 추천합니다.

오늘 떡메모지가 도착했다. 상자를 열고 제품의 완성도를 따지는 모습은 없었다. 예상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다고 하기보단 아무런 기대도 없이 정사각형 메모지 7종이 도착했다. 무덤덤했다. 이게 다 팔리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걸리겠다, 재고는 어디에 품어야 하느냐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아무 쓸모 없는 굿즈를 또 만들었다는 자책감도 조금은 있었다. 덕분에 정리는 빠르게 끝났다. 이 게 다인가? 그렇지 않다. 그럼 나는 왜 메모지를 만들었나부터 되돌아봐야 했다. 우선 굿즈의 빈자리를 생산 대비 저렴한 비용으로 채워야 했다. 늘 그것이 문제였다. 문제 해결이 아니고 반복,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가장 중요한 것이 나에게는 없었다. 너무 잘 알면서도 엽서나 메모지가 제일 쉽다. 쓸데없이 쉬워서 나는 또 메모지를 만들기로 했다. 사이즈는 90*90 10 스타일을 디자인하고 3 스타일을 버렸다. 그림은 있던 그림 중에 골랐다. 딱히 메모지에 필요한 그림은 없었다. 아무 그림이라도 상관없었다. 메모지에는 용도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디자인 영역이다. 그림 사이에 여백 두고 이용자가 문구를 쓰도록 유도하는 장치가 마땅히 필요하다. 구매자에게는 그 장치가 구매욕에 합당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메모지는 그러한 장치가 없다. 여백 없이 그림으로 꽉 차있어 이용자가 메시지를 쓸 공간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이른바 <쓸데없는메모지>이다. 두부를 만들고 부서진 모양을 모아 <못난이 두부>라는 이름으로 히트를 친 전례는 있지만 <쓸데없는메모지>로 전설이 생기는 일은 생길 것 같지 않다. 그냥 그렇고 그런 선택을 받지 못하는 메모지로써의 생을 예견해 본다. 가엽지 않은가? 용도가 말짱한 메모지의 일생은 결국 쓰임으로 끝나는 것이다. 한 장씩 떼어 저 일가와의 생이별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이 <쓸데없는메모지>를 보자. 쉽게 쓰임을 선택받을 일이 없다. 한 장씩 떼어져 버려지는 생이별의 아픔으로 점점 말라가는 모습을 볼 이유도 없다. 언제나 처음 봤을 때의 그 모습으로, 보기 좋게 두툼한 모습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장점이 여기에 있다. 


3,500원이세상에서가장중요한사람처럼 굴 필요가 없음을 기억하자



자세히 보면 메모할 공간이 없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 런런런 메모지를 보자. 디자인이 말하는 공간은 창조하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세계 최초로 제한된 글자 수만 적는 메모지를 발명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단 세글자만 메모할 공간을 허락함으로써 보다 직관적이며 비문이 없는 깔끔한 메모를 전할 수 있다. 가끔 우리는 말이 너무 많다. 진정한 정보 다이어트에 최적화된 메모지의 탄생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사실 나는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 대해서 갈증을 느끼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손뼘만 한 재주로 그림을 그리고 엽서와 포스터, 노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메모지도 만든다. 

나는 항상 오늘 해야 할 일을 생각한다. 꼭 해야하 할 일은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 (적으면 적을수록에 밑줄) 다만, 해도 안 해도 아무런 지장이 없는 바쁨으로 만들어진 이 메모지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구불시착 #굿즈 #동네책방 #메모지





 
by 김택수

instargram @illruwa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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