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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지 Jan 27. 2020

아무나 말고 아무, "나"!

뭐가 되어도 “멋진 나” 당첨될 테니까.

요즘 여기저기서 “아무, 아무”거 린다.  
지코는 아무 노래나 틀라 그러고, 효리언니는 '아무나 돼'라고 그런다.  근데 '아무나' 이거, 쉽지 않다.





"아무나 돼"

효리 언니가 그랬다.


길 가다 만난 아이에게 ‘어른이 되면 어떤 사람이 될 거냐’고 물은 강호동의 질문에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라고 답한 이경규에게 타박하듯 던진 말이었다.

사실 티브이를 거의 안보는 나는, 이 얘기가 한창 이슈 되었을 때는 몰랐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한 블로그에서 누군가가 이 멘트를 예찬하는 글을 보고야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어떤 통쾌함이나 감탄도 아니었다.  되려 묘한 기분을 받았다


그거 이효리니까 할 수 있는 이야기 아니야?



아무나 된다는 것

“아무나 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하물며 꿈이 없는 사람에게도, 그냥 흘러가는 대로 '아무나' 되는 것이 어려운데. 꿈이 있던 사람에겐 더욱 쉽지 않다.  그 꿈이 크건 작건, 각자가 그 꿈을 향해 걸어온 시간들을 “아무나 돼”라며 쉽게 마무리짓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하기 위해, 혹은 어떤 삶을 살기 위해 한 개인의 노력은 '내려놓자'라는 말로 쉽게 내려놓아지는 그런 것이 아니다.


게다가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꿈을 내려놓는 사람들'또는 '아무나 된 사람들'에 대해 쉽게 얘기하곤 한다.  예술가를 꿈꾸다 미술 선생님을 하고 있는 이들을 동정의 눈으로 보기도 하고, 창업을 하다 월급쟁이가 된 사람들에게 '실패'라는 딱지를 붙이곤 한다.  별다른 목표 없이 각자의 삶을 행복하게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안주와 권태라는 단어 아래 그 사람을 정의하곤 한다.

'아무나 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타인의 시선, 그리고 스스로의 노력에 대한 내려놓기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결국 '아무나' 된다는 것은 ,  '무언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스스로의 시간과, 타인의 시선을 극복해야만 하는- 결코 쉽지 않은 과제인 것이다.   

참 모순되게도,  한껏 꿈에 부풀어 나에게 이것저것 질문하는 후배들에게는 나도 이효리처럼 멋들어지게 '뭘 그렇게 까지 해, 대충 살아~ (아무나 돼)'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나야말로 매일 아침 '아무나 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  


대표작 하나 없는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끝낼까 봐.
나의 작은 사업들이, 그냥 이 정도로 흘러가다 어느 날 사라질까 봐.
어느 날 내가 글을 쓰는 힘을 소진하여, 글을 더 이상 쓰게 되지 않을까 봐.
결국 프리랜서 생활을 다 접고, 다시 구직생활을 하게 될까 봐.


대표작 없는 디자이너가 되어도, 그냥 이렇게 사업을 접어도,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아도, 다시 구직활동을 하게 되어도 나는 절대 '잘못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닐 텐데 - '아무나'의 족쇄는 되려 나 스스로에게 채워져 있었다.  그래서 효리언니의 멘트가 더더욱 묘하게 느껴졌다.


'아무나 돼'라는 말. 생각보다 쉽지 않으니까. 



뭐라도 되어 있을 거야.

얼마 전에 후배님들에게 세미나를 진행했다.   <7년 후에는 뭐라도 되어있을 거야>라는 타이틀의 세미나 었다.

내가 20살이 된 이례로, 지난 7년간 내가 밟아 왔던 행보들에 대해 쭉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입학했는데 전공이 맞지 않아서, 다른 활동들만 열심히 한 이야기.

어찌어찌 프랑스에 갔다가, 정말 다른 일을 하게 되었던 이야기.

결국 다 접고, 갑자기 한국에 와서 전공을 살린 직업을 택한 이야기.

그러다가 다시 회사를 나와 프리랜서로 하는 이야기.

마지막으로, 정말 어쩌다 숙박업에 뛰어들어 전부터 하고 싶었던 소품샵과 병행하는 이야기.


이야기를 풀다 보니, 나야말로 정말 지난 7년간 참 두서없이 - 아무렇게나 살아왔었다. 

나는 직업도 꿈도 해마다 바뀌었지만 어찌어찌 '뭐라도' 되어 있는 것이었다.  시간이 더 흐르면, 지금의 나도 아무것도 아녔다고 얘기할 수 있지만, 적어도 7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보면 - 나는 분명  뭐라도 되어 있었다.


이야기의 끝은, 후배님들께 보내는 - 혹은 나를 위한 응원의 메시지로 마무리되었다.



비록 7년 전에 나와 지금의 나는 너무나도 다른 꿈을 꾸지만,  
지금의 내가 못나지는 않았다고.
그렇다면 7년이 또 지나면, 다시 '뭐라도' 되어 있을 거라고 말이다.  



7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꿈을 꾸지만 - 지금의 나는 뭐라도 되어 있다. 7년 후의 나는 또 다른 꿈을 꾸겠지만, 뭐라도 되어 있을 것이다. 


아무'나' 된다는 것

맞다. 나 아무렇게 살았다. 하지만 아무나 되진 않고, 뭐라도 되어 있다.  

매일 밤 불안함에 잠을 설치지만, 그렇다고 못 살 정도는 아니다. 느리지만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시시 때때로 꿈이 바뀌고, 계획이 바뀌는 나에 대해 어느 누구도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실 나의 '아무렇게 산 지난날'들을 되돌아보면, 나의 선택의 순간순간에는 저마다 이유가 있었다.


어떤 때는, '적성에 안 맞아서.'
어떤 때는, '너무 박봉인 것 같아서.'
어떤 때는, '그냥 이게 더 재밌어 보여서.'


이유도 다양하고, 생각보다 그리 거창한 내용도 아니지만 - 

선택을 내리는 그 순간순간에는 '나'에게 가장 솔직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나에게 솔직했던 순간들 끝에, 

아무렇게나 보낸 세월이 아닌 - 아무렇게 '나'를 향한 시간 쌓아온 것이다.  




선택을 내리는 무수한 요인들 가운데, '나'를 향한 점들만 이어 지금의 '나'라는 새로운 별자리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만들어가고 있다.



아무나 말고, 아무'나'

나는 효리 언니 말대로 '아무나'  쿨하게 될 위인은 못된다.  내가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의 나이가 되면, 쿨하게 아무나 될 수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하고 싶은 것도 너무 많고,  아직은 달릴 힘이 넘쳐나는 청! 춘! 인 것 같다.


근데 대신에, 나도 내 입으로 내가 그래서 뭐가 될 거라고 말할 수 없으니, 차라리 이렇게 말하겠다.


무언가 되긴 될 텐데, 뭔지는 모르겠고 - 이래도 나, 저래도 나일 테니.
아무'나'가 될 거라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무 옷이나 입고, 아무 카페로 출근했다. 아무 음료나 시켜서 아무 글이나 쓰고 있다.

하지만 나의 이러한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쌓여, 어제보다 조금 나은 '나'가 되어 있겠지.





"어른이 되면 어떤 사람이 될래?"

"아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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