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가 부릅니다…땡큐, 해리포터

윌리앙 부게로, A difficult Lesson

by 이원율


영국 런던이 그립다. 한 번 가본 적도 없는데 그렇다.


런던 북부에 있는 킹스크로스역 9와 4분의 3 승강장을 가고 싶다. 그리고, 곧장 기차에 올라타 해리 포터 스튜디오에 가고 싶다. 와인색 천에 노란색 줄이 있는 머플러를 매고 내게 꼭 맞는 지팡이를 찾아 휙 한 번 휘두르고 싶다. 기대보다 맛은 없다지만 버터 맥주도 한 잔 시켜 꼴깍꼴깍 들이켜고 싶다. 그렇다. 나는 해리 포터 마니아다. 본 고장에 간 적 없는, 당분간은 기약 없이 갈 수도 없는 처지가 된 실덕(실패한 덕후)이다. 억울하다. 코로나19는 "올 휴가는 영국 런던이다!"라고 뜻을 굳힌 순간 창궐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고 해리포터 시리즈를 놓고 분노의 정주행을 했다.




어릴 적 내 단짝 친구는 해리 포터였다.


초등학교 6학년생 시절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 처음 손을 댔다. 형이 누군가에게 빌려와놓고는 책장에 고이 모셔둔(?) 그런 상태였다. 고백하자면 그때 나는 어디서든 책을 끼고 다닌 책벌레였다. 집 서재와 학교 도서관에 있는 책을 닥치는대로 붙들었다. 눈을 감고 손가락에 잡히는 책을 읽는 게 놀이였다. 집 한 켠에 있는 30권 짜리 위인전집과 또 오십 몇 권이 있던 만화로 된 세계사 책에 손때를 잔뜩 묻히고는, 이제 새로운 책을 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찰나 그 시리즈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돌아보면 당시 감정은 동경에 가까웠다.


내 생일 날 우산을 든 해그리드가 낡아빠진 집 대문을 턱턱 두드리며 호그와트 마법학교 입학증을 건네주길 바랐다. 론 위즐리, 헤르미온느 그레인저 등 개성 있는 아이들과 투명 망토를 뒤집어쓰고 금지된 공간을 누비는 꿈을 꿨다. 시리우스 블랙 같은 그런 사연 있는 대부(代父)가 있었으면 했다. 단숨에 《마법사의 돌》을 읽고, 곧 이어 《비밀의 방》, 《아즈카반의 죄수》, 《불의 잔》을 공략했다.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늘 그랬듯 엄마는 책을 사는 일에는 돈을 아끼지 않으셨다. 뒤이어 나온 모든 시리즈도 책이 나온 그 날 모조리 격파했다. 읽다 지쳐 책을 베고 잠에 들면 반드시 꿈을 꿨다. 꿈 속에서 나는 그리핀도르와 후플푸프 기숙사 사이에서 고민하는 마법의 모자를 설득해 그리핀도르로 배정을 받는 데 성공했다. 허니듀크에서 '온갖 맛이 나는 젤리'와 개구리 초콜릿을 사고, 기숙사로 돌아가기 전 로즈메르타 부인이 내려준 버터맥주를 마셨다. 빗자루를 타고 퀴디치 경기장을 빙글빙글 돌고, 주말에 되면 '필요의 방'에서 '덤블도어의 군대' 일원들과 어둠의 마법 방어술을 연마했다. 책 속에는 호그와트에서 보낸 가정 통신문이 있다. 마치 내 것인양 달달 외울 수 있을 때까지 읽었다. 해리가 눈물겹게 부러웠다.


그때 내가 얼마나 진심이었느냐면, 한 청소년 백일장 대회에서 '해리야, 나도 좀 데려가'란 주제로 쓴 편지로 상을 받을 정도였다.




그때의 내 생활은 너무나도 지루했으니까. 그렇기에 푹 빠질 수 있었다.


사춘기에 젖어든 나는 달동네 한가운데 있는 우리 집에서 굳이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집도 싫었지만 밖은 더 싫었다. 술에 취해 런닝 바람으로 휘적대는 어른들은 끔찍했다. 골목 곳곳에서 개 짖는 소리, 부부 싸움 소리를 듣는 일도 지긋지긋했다. 가로등마저 잊을만 하면 깜빡깜빡 거리다가 픽 나가버리는 게 영 시원찮은 분위기였다. 밤이 되면 '빨간 마스크'가 창을 두드릴 것 같았다. 잠을 잘 땐 눈을 질끈 감았었다. 그 시절의 나는 단지 내가 모르고 있을 뿐 지금의 달 동네와는 전혀 다른 세계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눈처럼 흰 부엉이가 날아다니는 곳, 움직이는 인물 사진들이 가득 박힌 '예언자 일보'를 읽을 수 있는 그런 곳이 어딘가 벽돌만 정해진 순서대로 톡톡 두드리면 나올 것 같았다.




내가 패트로누스(수호신)를 부를 수 있다면, 어떤 형상을 갖고 튀어나올까. 아마 뒤뚱뒤뚱 걸어가다가 빙판 위에서 휙 슬라이딩을 하는 펭귄 정도가 아닐까하고 막연히 생각한 적이 있다. 해리의 패트로누스는 사슴이었다. 론은 개, 헤르미온느는 수달이었다.


몇년 전 서울의 한 영화관에서 혼자 《해리 포터》 시리즈를 보고 가슴이 아려왔다. 슬픈 장면이 없는데도 무딘 갈고리가 마음 속 밑바닥을 살살 긁어내리는 듯했다.


《해리 포터》를 읽으며 '구조 버스'를 기다리던, 어릴 적의 내가 너무 가여웠다. 또, 그런 상상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 해리 포터가 새삼스레 고마웠다. 그러고 보면 내 유년시절의 패트로누스는 해리포터 그 자체가 아니었나 한다. 실제로, 그때의 나는 그 덕분에 엇나가지 않을 수 있었다.




살면서 독해 능력을 필요로 하는 여러 시험에선 그렇게 어려움을 느낀 적이 없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 비결도 해리포터가 아니었나 한다.


《해리 포터》 시리즈를 한 권 당 과장 없이 20번씩은 읽었다. 시리즈 1편부터 4편까지 각 권을 20번씩 읽었다고 하면 200번이다. 물론 5~7편도 각각 그만큼 탐했다.


《해리 포터》 덕에 똑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는 일이 즐겁다는 것도 알게 됐다. 처음 읽었을 때 인지하지 못한 문장들이 4~5번 읽을 때가 돼서야 손을 흔든다. 책도 그림과 같다. 의미를 전달하지 않는 상징물이 없듯 의미를 전달하지 않는 문장도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처음 읽을 때가 해리포터와 대화하는 기분이면, 읽으면 읽을수록 작가 조앤 K. 롤링과 대화하는 느낌이다. 이 작가는 이런 삶을 살아왔기에 이 같은 장면을 떠올렸고 이런 캐릭터를 묘사할 수 있었다고 짐작하게 된다. 너를 안 만났으면 어쩔 뻔 했느냐…. 이 말 만큼 이 경험을 안 했으면 어쩔 뻔 했을까란 생각이 든다. 황홀한 순간이다.


속독은 물론 저자의 의도 파악과 문장 속 스며있는 숨은 뜻 해석까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두 해리포터 덕분이다.




초챙과의 첫 키스에 설레하던 그 해리포터가 이젠 나보다 더 나이 많은 설정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 시절 같은 쭈구리로 시작한 이 친구가 다 큰 어른이 돼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괜히 등을 토닥여주고 싶어줄 만큼 흐뭇하다. 아직도 고향집의 내 방에는 해리포터 시리즈 1~7편이 나란히 꽂혀있다. 한 때는 내 단짝친구, 이제는 마법부 장관이 된 그에게 전한다. “땡큐, 해리포터.”



18d02350abe92ee9200ec17c1bf6059f.jpg William Bouguereau, A difficult Lesson

부릅 뜬 눈, 꾹 다문 입술, 꼿꼿하게 모은 두 발에서 고집이 느껴지지요. 아, 한참 빠져 있었는데 왜….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근엄한 눈을 통해 날카로운 말을 쏟아내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책만 볼 수 있으면 됩니다. 주변 환경이 어찌됐든, 내 자세가 어떻든, 이런 조건들은 하나도 중요치 않습니다.


저도 그랬지요. 앞으로 무언가에 이렇게 푹 빠질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깊이 빠져들었지요. 나이가 들수록 무언가에 오롯이 젖어드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배워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특별해요.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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