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달동네선 사람이 수시로 죽었다

에드바르트 뭉크, 죽은 어머니

by 이원율

어릴 적 내가 살던 달동네에서는 수시로 사람이 죽었다.


옆집 할머니가 내 꿈속에 나와 손 흔들고 다리를 건너면 얼마 지나지 않아 틀림없이 눈을 감았다. 평소 슈퍼에서 자주 막걸리를 사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보이지 않으면 당연히 '상을 치렀구나'라고 짐작했다. 날이 추워지면 발이 넓은 아빠는 검은 외투를 걸치고 상갓집을 찾아다니느라 분주했다. 종종 혼자 있기가 싫어 따라가겠다고 생떼를 썼다. 그곳에는 늘 김 씨 할머니와 장 씨 할머니가 나를 안아줬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두 사람도 세상을 떠났다. 그만큼 죽음이 일상화된 동네였다. 받아쓰기도 겨우 50점을 받으면 헤벌쭉 웃는 나였지만, 그때부터 호상(好喪)이나 순상(順喪) 따위가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있었다.


그런 곳에서 자란 탓일까.


나는 발칙한 아이였다. 죽음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서로 친한 달동네의 어른들도, 상을 치른 다음에는 곧장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그 시절 아빠는 어떤 상갓집을 다녀와도, 다음 날 아무렇지 않게 출근했다. 우리는 저녁밥으로 평소처럼 계란말이에 케첩을 짜서 먹었다. 유독 나를 예뻐하던 김 씨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똑같았다. 달동네에서는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그들만 이 세상에서 사라졌을 뿐 세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때쯤, 나 또한 제대로 죽을 뻔한 적도 있었다.


한겨울이었다. 할머니 집에 있는 시골 동네 외곽에서 들개를 따라다니면서 놀던 나는, 나도 모르는 새 선산의 한 가운데에서 길을 잃었다.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들리는 건 야생 동물의 앓는 소리 뿐이었다. 밤이 돼 찬 바람이 불어오자 이가 딱딱 부딪혔다. 어느 바위에 등을 기대고는 몸을 웅크렸다. 내 생일 날 통닭 한 마리를 시켜 먹고 받은 로봇 손목시계는 새벽 1시를 가리켰다. 그쯤이었다. 이상하게 춥지 않았다. 되레 온기가 찾아왔다. 이 정도면 더워죽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온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물밀듯 한 졸음이 함께 찾아왔다. 통증은 없었다. 달콤한 쾌감뿐이었다.


나는 의식을 잃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에서 낯선 천장을 보는 중이었다. 언젠가 책에서 우연히 이상 탈의(paradoxical undressing) 현상이란 말을 봤다. 사람의 뇌는 죽을 듯한 추위에 노출되면 되레 더위를 느끼는 등 환각에 빠진다고 한다. 이는 저체온사(死) 직전에 겪는 일이라는데, 그때 나는 말 그대로 저승 문에 노크하고 온 격이었다. 다음 날부터 일상은 또 펼쳐졌다. 꼬리가 긴 동네 개를 쫓아다녔고, 그러다가 소독차를 마주하면 숨이 넘어갈 듯 방방 뛰었다. 죽는 일 생각보다 별것 아니었다고, 어른들이 왜 그렇게 무덤덤했는지 알겠다고 생각한 때였다.


하지만, 당연히도 죽음은 별것 아닌 게 전혀 아니었다.


한 사람의 죽음은 그에게선 끝이지만, 남겨진 이들에게는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한 명의 죽음 이후, 남겨진 이들에겐 반드시 후유증이 찾아온다. 또, 이들 중 대부분은 이를 손톱을 질끈 깨문 채 견디고 있을 뿐이란 점을 알게 된 건 나이가 좀 더 든 이후였다. 어른들은 티를 내지 않았을 뿐이었다. 장 씨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단지 그랬을 뿐이었다.


몇 년 전, 숙모가 죽었다. 숙모의 숨소리는 바람 한 줄 게 없는 날의 파도처럼 옅어지더니, 이내 잔잔해졌다. 췌장암 말기였다. 투병 기간 중 만난 숙모는 내 기억보다 훨씬 작은 사람이 돼 있었다. 사람은 그렇게나 작아질 수 있는 존재였다. 정신이 든 숙모는 내 눈을 바라봤다. 그렁한 눈동자 밖으로 눈물 한줄기가 내려왔다. 내 손을 꼭 붙잡고는 옅은 미소를 띠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주고받지 못했지만, 서로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아빠는 며칠 후, 한밤중에 전화 한 통을 받고는 다급히 뛰었다. 당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병원에는 숙모가 흰 천을 머리끝까지 덮어쓴 채 누워 있었다. 나는 숙모의 영정 사진을 품고 장례식장 안을 터벅터벅 움직여야 했다.


나는 그날 어린 조카들과 아무렇지 않게 저녁밥을 챙겨 먹었다. 그러고는 잠들기 전 이불 속에서 숨죽여 울었다. 베게 한 면이 모두 젖을 때까지 눈물을 토해냈다. 왠지 그렇게 숨어서 내뱉어야 할 것 같았다. 조카들이 보는 곳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였다간 애들조차 하나둘 무너질 것 같았다. 다른 어른들도 모두 아이들의 눈을 피해 숨어서 울고 있었다. 그 사람의 손을 놓은, 남겨진 이들의 세상은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단지 많은 어른은 이를 아무렇지 않은 양 견디고,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나이가 들어 보다 많은 삶의 현장을 다녔다.


때로는 밀려오는 비탄(悲歎)을 억누르지 못해 무너지는 사람들도 봤다. 배우자상(喪), 그리고 자녀상이 그러했다. 특히 나는 뜻하지 않게 몇 번의 자녀상을 다녀온 후로는 "졸려 죽겠다", "배고파 죽겠다"란 표현조차 차마 쓸 수 없게 됐다.


"나 그때 산기슭에 갇혀 얼어 죽을 뻔했을 때, 그때 별로 안 놀랐어요?"


불과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할머니에게 뭉툭하게 물어본 적이 있다. 할머니는 인자하게 웃고는 내 머리에 주름살이 패인 손을 얹었다. 비밀 이야기를 하듯 속삭였다. 온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고. 이놈의 엉덩이를 힘껏 후려칠까 하다가도, 애가 상처를 받아 예전 모습을 찾을 수 없을까 싶어 그냥 같이 웃고 말았다고. 생닭 한 마리를 삶아 다리 두 개를 입안에 밀어주고는, 그 일의 후유증은 그냥 견디고 버티다가 깔끔히 잊기로 했다고.


"그래도 덕분에, 천진난만한 애로 다시 뛰어놀 수 있지 않았잖니."


나는 때로는, 어떤 어른들을 보면 어찌 그리 어른다운 어른이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놀라고는 한다. 진심으로.


에드바르 뭉크, 죽은 어머니.jpg 에드바르 뭉크, 죽은 어머니


입술을 질끈 깨물고 있는 이 소녀는, 시간이 흐르면 누구보다 강해질 것 같습니다. “어릴 적, 엄마가 돌아가셨던 그때 평생 흘릴 눈물을 다 흘렸어.” 누군가가 왜 그렇게 냉정할 수밖에 없느냐고 물어보면, 이런 자조 섞인 말을 내뱉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요. 이 소녀가 굳이 그렇게 되는 것을 원하지도 않았을 텐데 왜 그렇게 돼야 하는지 의문이 듭니다. 세상이 야속합니다. 최소한의 물정을 깨우칠 때까지는, 그래도 예쁘고 아름다운 것만 볼 수 있길…. 그러는 동안에는 죽음을 몸소 느낄 수 있는 순간도 비켜 지나가길…. 너무 동떨어진 바람이라면, 제 어린 시절처럼 이로부터 방파제 역할을 해줄 현명한 어른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 모든 어린아이에게 이러한 것들이 모두 ‘권리’로 못 박혔으면 합니다. 아버지가 의사였던 탓에, 어릴 때부터 유독 죽음을 잦게 접해야 했던 에드바르 뭉크도 분명 동의할 것입니다.


“왜 고통을 통해서만 지혜에 도달 할 수 있는 거야? 전혀 원하지 않는데도 왜 현명해져야 하는 거야?” 『루이제 린저, 생의 한가운데 중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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