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밤과 겨울, 비 오는 날. 중국에선 이를 삼여(三餘)라고 한다. 수양하기 좋은 세 가지 조건이다. 12월의 마지막 주, 나는 제주 동쪽 해안마을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홀로 삼여를 맞이했다. 때 마침 여행의 마지막 날이기도 했다.
연말에 삼여를 마주하고 나니, 그간 씨름했던 올 한 해가 남기고 간 감상들이 밀려들어온다. 나는 올해 무엇을 익혔을까. 겨울 바람이 스며오는 창문 앞,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며 자문한다.
글에 대한 강박을 잠재우는 법.
딱 한 줄의 생각이 떠오른다. 글을 쓰는 데 있어 더 참는 법을 배웠다. 더 차분해지는 데도 익숙해졌다. 넌 이미 충분한데 무엇 때문에 더 참고, 더 차분해지려고 하느냐…. 손사래를 치는 이는, 내 마음 속 요동치는 소용돌이를 보지 못한 사람이다.
딱히 내색은 하지 않지만, 글을 쓰는 나는 늘 불안했다. 보다 정확히는 항상 불안해야 할 것 같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가끔 불안하지 않을 때는 앞으로 무엇을 붙잡고 불안해 해야 할지를 진심으로 고민하곤 했다. 밥벌이를 위한 원고 작성, 스스로를 위한 글쓰기 등 활자 작업에 임할 때는 일단 시작하면 앉은 자리에서 어떻게든 끝을 봤다. 마음 먹었을 때 끝내지 않으면 곧 감당 못할 눈덩이가 돼 덮칠 것이라는 불안감이 컸다. 남들은 이를 '성실'이라고 불렀지만 실상은 그 가면을 쓴 강박 덩어리에 불과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내몰려 고통은 고통대로 받고 결과물의 완성도는 떨어졌다. 강박은 나를 걸신마냥 갉아먹곤 했다.
몇해 전, 내가 보다 차분해진 계기는 소소했다.
그때 나는 대만 타이베이를 다녀왔다. 4박 5일 일정이었다. 이 또한 혼자 간 여행이었지만, 게스트하우스에서 여러 인연들을 만난 덕에 돌아올 땐 5명이었다. 윈스턴 처칠은 먼 곳에 다녀오면 감상문을 남기라고 했다. 어떤 책에서 이 문구를 봤다. 엄밀히 보면 나와 전혀 상관 없는 먼 나라 사람의 말이었지만, 괜히 어딘가에 다녀오면 그 당부가 떠올라 마음이 찔리곤 했다. 그렇게 다녀온 후 쓰는 일은 습관이 됐다.
그런데, 이번에 대만을 다녀온 후 여행기를 쓸 땐 마음 먹고 내게 한 달의 시간을 줬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할 때, 그렇게도 해보자는 생각이 퍼뜩 났다. 여담이지만 나는 물을 맞을 때 모락모락 피어나는 생각은 반드시 이행하는 편이다. 우스갯소리를 더하자면 그때 떠오르는 직감들은 ‘계시’와 가깝게 여긴다.
그간에는 어딜 다녀와도 하루, 이틀만에 글쓰기를 끝을 냈다. 성질이 급했다. 또, 빨리 이 일을 끝내야 다른 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매번 그럴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용기를 냈다. 강박감을 억누르고 긴 시간을 억지로 쥐여줬다. 퇴근해서 잠깐 쓰고, 주말 아침에 일어나 몇 문단을 더 붙이고, 자기 전에 더 다듬고…. 처음 며칠간은 불안의 탈을 쓴 강박감이 거듭 등을 떠밀었다. 하지만 그 기세는 시간이 지날수록 눈에 띄게 약해졌다. 그 덕분에, 3~4편의 날림성 글이 아닌 21편의 정성 담긴 글을 쓸 수 있었다. 강박을 벗어던진 채, 긴 시간을 두고 차곡차곡 쌓아가는 글쓰기를 처음 끝마쳤다. 훨씬 완성도가 높았다. 그만큼 더 만족스러웠다. 성취감을 느끼고 나니, 그 다음부터는 더 쉬웠다.
된장찌개를 끓일 줄 알게 되면, 김치찌개도 바로 요리할 수 있는 것 같은 이치랄까. 쓰기에 차분함을 더하다보니, 읽기에 대한 차분함도 따라왔다.
오직 나를 위해 하는 필생의 일이 있다. 읽은 책의 인상적인 구절들을 다른 공책에 옮겨 기록하는 작업이다. 대학생 때부터 지금껏 10년 넘게 이어가고 있다. 그간 수집한 문장들을 한 데 A4용지 분량으로 한 데 모은다면 페이지는 족히 1500장은 될 것이다. 한동안은 정기적으로 책 형태의 제본을 했다. 어떤 계기가 있어 종합본을 경매에 올렸더니, 생각지도 못한 고가로 사겠다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다. 그간 나는 굶주린 하이에나마냥 문장을 수집하는 데만 집중했다. 장르, 작가 구분 없이 책을 말그대로 와작와작 씹어댔다. 문장을 탈탈 털었다. 그런데, 수집만 해놓고는 차분히 읽을 시간을 내지 않으니 그저 속 빈 강정에 불과했다.
그 해 연말, 다른 손님 한 명 없는 조용한 제주도의 게스트하우스에 있으면서 나는 그간 쌓아놓은 필사본을 몽땅 읽었다. "지금 읽는 시간에 수집을 하면 굉장한 문장들을 담아낼 수 있을 걸?" 강박감이 또 고개를 들었지만 억지로 주저 앉혔다. 아직 되새기지 못한 문장들을 집어넣었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를 들춰봤다. 몇 번씩 손을 댔으나 커다란 세계관에 되레 압도돼 완독에 실패했던 그 책이다. 마음 속 묵직한 무언가를 내려놨기 때문일까. 왠지 모르게 이날 이 순간만큼은 영화를 보는 양 모든 장면들이 생생하게 눈에 들어왔다.
이 날 밤, 이불 두 겹을 덮고 잠들면서 새삼스레 ‘품격’에 대해 생각했다.
가만히 있어도 품격이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반면, 보고만 있어도 품격이 떨어지는 사람이 있다. 차이점을 고민했다. 저마다 품고 있을 강박을 얼마나 잘 통제할 수 있는지, 얼마나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지. 그런 점이 사람의 품격을 만드는 것 아닐까. 대학교에서 연을 맺은 한 노교수의 말이 떠오른다. “끊임 없이 모험을 하고, 새로운 경험을 해보세요. 그런 데서 힘을 얻어, 불안감과 강박감을 쥐고 흔들어보세요. 그러면 나도 모르는 새 아름다운 사람이 돼 있을거예요.”
여문 물 안개가 성난 바다 위에 내려 앉습니다. 소금가루 같은 흙 따위가 신발에 채여 절벽으로 떨어집니다. 한가한 거인이 곁눈질을 하며 슬쩍 짓이겨놓은 듯한 곳입니다.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는 아직 손톱이나 깨물고 있을 7살 때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두 명의 누이, 남동생도 차례로 떠나보냈습니다. 그는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로 인해 수차례 자살 기도를 했습니다. 그만큼 불안에 휩싸여 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이 그림에서 그런 불안을 떨쳐내고자 하는 의지가 보입니다. 이 남성, 그러니까 프리디리히는 지금 요동치고 있는 자신의 마음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욱한 안개와 요동치는 파도, 반드시 몰아내고 말겠다….' 진격을 준비하는 듯한 남자의 자세에서 이런 뜻이 읽히는 듯합니다. 저의 답은 '여유'였는데, 프리드리히의 답은 무엇이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