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집 개보다 옷 가짓수가 적어졌다

프란츠 빈터할터, 세일러복을 입은 왕자

by 이원율

나는 옷이 많지 않다. 아내는 랄라가 나보다 옷이 더 많노라고 했다. 랄라는 아내 친구가 보살피는 보더콜리였다. 믿을 수 없어 직접 살펴봤다. 진짜였다. 나는 건너편 집 개보다 옷 가짓수가 적은 사람이었다. 지금은 아내 덕에 연명하고 있다. 옷 잘 입고 센스 있는 아내는 가끔 내게 찰떡같이 어울리는 옷을 던져준다. 나는 '어휴, 뭐 이런 걸 다…'라며 말끝을 흐리지만, 바로 그다음 날부터 넙죽넙죽 잘 입는다. 얼마 전 장롱을 살펴봤다. 아내가 준 옷이 내 옷의 팔 할이었다.


믿지 않겠지만, 원래 그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 사실 그 반대였다. 대학생 때 나는 유독 옷과 액세서리에 관심이 많았다. 삶의 낙 중 하나였다. 많이 봤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옷을 보러 번화가를 방문했다. 패션 공부도 열심히 했다. 신문방송학과 주제에 굳이 굳이 의류학과 수업을 청강했다. 옷을 사는 데 돈을 많이 쓰진 않았지만, 꽤 신경 써서 입었다. 지금은 흑역사가 된, 당시 유행할 뻔도 한 조끼 패션 등 갖은 실험에도 앞장섰다. 누군가가 갖고 싶은 옷이 있느냐고 물어보면 스타일과 종류별로 몇 시간은 줄줄 욀 수 있을 정도였다. 너무 손에 넣고 싶을 때는 버스비를 아껴가며 몇 푼 되지 않는 돈을 모으기도 했다. "너 허영심이 있구나?" 어머니가 39만9000원짜리 세이코 시계를 넋 놓고 보고 있는 내게 핀잔을 준 일을 아직 기억한다. 그땐 형편도 되지 않으면서 몇십만 원 짜리 시계와 청바지가 그렇게 갖고 싶었다. 목도리와 장갑 한 짝마저 '브랜드'로 치장하고 싶은 시기였다.


지금은 이 모양 이 꼴인데, 그때는 ‘패션 꿈나무’였던 게 이해가 안 간다고…? 그럴 수 있다. 해명하자면, 그 당시에는 일종의 한(恨)이 맺혀 있었다.


나는 대학생이 되고서야 형의 옷을 물려받는 일에서 졸업할 수 있었다. 나는 중학생 때도, 고등학생 때도 형이 입던 교복과 체육복부터 일상복까지 전해 받았다. 형과 나는 3살 차이였다. 형은 키가 크고 다리도 길쭉했다. 애석히도 나는 그 반대에 가까웠다. 이 때문에 가끔은 차라리 아빠 옷을 입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했다. 체육 시간이 너무 싫었다. 겅중한 체육복을 입고 나면 달리기도, 줄넘기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푹 퍼진 바짓가랑이에 뜀틀 모서리가 걸려 그대로 얼굴부터 곤두박질한 경험도 있다. 가끔 너무 성질이 나면 그냥 체육복을 갖고 오지 않았다고 했다. 엉덩이를 몇 대 더 맞고 점수가 깎이는 게 더 나았다. 그런 흑역사를 가진 내게 딱 맞는, 내 마음에 쏙 드는 옷을 사 입는 일은 신선한 일이었다. 몇몇 친구들은 안다. 너무 신난 나는 개인 홈페이지에 톤온톤(Tone on Tone)과 톤인톤(Ton and Tone)에 대한 연구 글도 썼다. 마음에 쏙 드는 옷이나 신발을 샀을 때는 누가 시키지도 않은 리뷰 글도 올리곤 했다. 패션 잡지도 열심히 구독했다. 그쯤 누군가가 내게 장래 희망을 물어보면 1의 망설임도 없이 '패션 잡지 에디터'라고 했다. 심지어 친구들의 옷을 봐주고, 그 차림새에 조언해주기도 했다. 멀리서 아내의 비웃음 소리가 들려온다. 다시 읽어보니 이같이 찬란했던 내 과거를 믿지 않을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아, 믿어줘요. 진짜였어요.


그렇다면, 그 한 맺힌 아이는 어디 가고 지금의 오금동 꼬질이만 남았는가.


서울에 와 독립생활을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애써 관심을 끊으려고 했다. 솔직히 고백하면, 그리고 가장 정확한 표현을 찾아보자면, 지금은 눈을 감고 있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드릉드릉한 마음을 열심히 부여잡고 있다. 좋게 말하자면 약간은 철이 들었고, 나쁘게 말하자면 보다 꼬장꼬장해졌다.


어느 연구 보고서를 보니 사람은 여유가 없어지면 식비부터 줄인다고 한다. 나는 약간 달랐다. 식비와 의류비를 함께 아끼려고 했다.


돈을 열심히 모아야 했다. 40만 원 월세, 그다음에는 35만~45만 원을 왔다 갔다 하는 전세 이자를 내고, 이 와중에 주택 자금도 마련해야 했다. 매월 몇십만 원이 드는 연금과 보험비도 압박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인터넷 쇼핑몰에서 마음 놓고 마우스를 딸깍할 수 없는 상태가 돼버렸다. 나는 능력 있는 아내처럼 돈을 많이 버는 사람도 아니었다. 누구든 유혹을 이길 수 없다. 그러니 그 상황 자체를 없애버려야 한다. 패션 잡지를 끊고, 아이쇼핑마저 관뒀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네 발 달린 털 뭉치인 랄라보다 옷 가짓수가 적은 사람이 돼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바뀔 수 있느냐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잠깐 샛길로 빠지는 이야기다. 자랑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고등학교 3학년생 때인가. 학교에서 전교생을 대상으로 학습 성향 테스트를 했다. 나는 그때 절제력 분야에서 홀로 100점을 받았었다. 내 짝인 영준이는 32점인가 그랬다. 영준이는 수업 시간에 매번 침을 흘리면서 잠을 잘 잤다. 하여튼, 절제왕 앞에서 이런 결단쯤이야…. 물론 그러기엔 한참 신바람이 났던 시절에 이미 열정을 불사르기는 했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실눈을 살짝 뜰 수 있는 시기가 오지 않을까. 그래도 지금껏 나름대로 눈 감고도 잘 살았다. 얼마 전 직장에서 뜻밖의 포상금이 들어왔는데, 이제는 옷 한 벌 사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 최근 3주일 내내 주말에만 비가 왔다. 남산공원도 가고, 석파정도 가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었다. 나와 아내는 그쯤 비를 피할 수 있는 쇼핑몰을 산책 삼아 종종 방문했다. 자랑 같이 들릴 수 있겠지만, 아내는 '옷걸이'가 썩 좋다. 이런저런 옷을 대보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 찾기를 좋아한다. 나는 그런 때가 되면 슬쩍 남성복 판매점에 간다.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하면 혼잣말을 한다. 때로는 약간의 신파를 섞는다. 난 아직 너를 잊을 수 없어. 내가 어떻게 너를 잊을 수 있겠니…. 마치, 영화 《어느 날》의 주인공 강수가 영영 등을 지려 하는 부인에게 속삭이는 양.


그래도 시간이 꽤 흘렀다고, 예전보다는 눈에 띄게 여유를 찾아가고 있다. 곧 랄라를 따라잡고, 그다음에는 랄라보다 옷이 더 많다는 건너 건너편 집의 소금·후추 형제를 따라잡는 날도 올 것으로 꿈을 꾼다. 얘들은 아내의 또 다른 친구가 키우는 아기 말티푸(Maltipoo)들이다. 볼 때마다 다른 옷을 입고 있는 멋진 녀석들이다. 그래, 너희들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다오.



프란스.jpg 프란츠 빈터할터, 세일러복을 입은 왕자

멋이 폭발합니다. 용암처럼 뚝뚝 흘러내립니다.


동그란 챙 모자가 볼륨감을 살린 머리 위에 내려앉았습니다. 흰 바탕에 파란색 띠를 얹어놓은 윗도리와 광택 나는 워커는 마린 룩을 연상시킵니다. 탄탄한 통바지, 허리춤에 달린 주머니칼은 모험가를 떠올리게 합니다. 어린이인데도 위엄이 뿜어져 나옵니다. 저 자신 있는 눈빛을 보세요. 그래요. 정말 잘 입었습니다.


"나도 어릴 때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말 잘 입으려고 온 힘을 쏟았는데 말이야. 나이 들고, 돈도 쪼들리고 하다 보니 영…."


수염 거뭇거뭇한 학교 선배가 이렇게 말했을 땐 몰랐지요. 휴. 나도 그렇게 될 줄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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