툴루즈 로트레크, 숙취
나는 술을 못 마시게 생겼고, 실제로도 술을 못 마신다.
내가 말술을 마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꽤 다른 삶을 살 수 있었을 터였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자면, 지금은 술 냄새만 맡아도 얼굴이 빨개지는 비루한 몸뚱이를 갖고 있다. 소주든, 맥주든 한 잔만 들이켜는 순간 얼굴은 물론 손발까지 확 달아오른다. "일은 어떻게 해? 아니, 애초에 알면서 왜 그런 일을 하는 거야?" 내가 어디서 일하는지 아는 사람들은 깜짝 놀라 묻곤 한다. 내게 술을 강권하는 이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아무리 술을 곁들여야 하는 직업이라 해도, 그런 술이 들어가면 눈까지 새빨개지는 애에게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선 "한 잔 짠!"을 권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도 인연이 닿는 술은 있다.
특히 흑맥주인 올드 라스푸틴(Old Rasputin)은 아내에게 말 걸 기회를 준 고마운 친구였다. 나와 아내는 10~15명 정도가 함께 하는 한 독서 모임에서 처음 마주했다.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나 딱 그 정도였다. 한 달에 한 번 이뤄지는 이 모임은 으레 술을 곁들여 뒤풀이를 했다. 따라나선 우리는 어쩌다 보니 같은 타이밍에 술을 주문해야 했다. "올드 라스푸틴도 괜찮아요." 나는 그때 아내에게 속삭였다. 아내는 내 말에 의심 없이 그 술을 주문했다. 우리 둘은 그렇게 같은 술을 홀짝였고, 이를 통해 자연스레 유대감을 쌓을 수 있었다. 내 작전(?)대로였다. 돌아보면, 맥주를 추천해놓고는 정작 자신은 반도 마시지 않는 것을 보고 아내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난 네가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하길래, 술에 조예가 있는 애인 줄 알았어." 아내는 지금도 종종 소위 '그때 낚였다'는 투로 말을 한다.
그때마다 머리를 긁적인다.
아직 아내에게 그 술을 권한 이유를 솔직히 말한 적은 없다. 무엇보다, 어떤 계기로든 너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고. 무언가를 통해 주파수를 맞추고 싶어 초조한 마음이었다고. 또, 사실 올드 라스푸틴을 좋아하는 이유는 맥주병에 붙은 구스타브 도레 풍의 스티커가 예뻐서였다고. 아내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웃을 것 같다.
우리 사이에는 더 타파스 와인 컬렉션(The Tapas Wine Collection·타파스)도 각별하다.
나와 그녀는 올드 라스푸틴의 투혼(?) 덕에 따로 만나 밥을 먹고, 어릴 적 이야기도 할 수 있는 관계로 발전했다. 쌀쌀한 초봄의 어느 날, 북촌에서 데이트를 한 우리는 헤어지기가 아쉬워한 와인바를 방문했다. 주인장은 설레하는 우리에게 와인 타파스와 치즈를 권해줬다. 나와 그녀는 와인 한 병을 비웠다. 그리고는 똑같은 와인을 또 한 병 비웠다. 분위기는 차츰 무르익었다. 언젠가 더 친해지게 되면, 함께 비행기를 타고 설국(雪國)에 가기로 약속도 한 날이었다. 이상하게 그날만큼은 내 얼굴도, 손과 발도 빨갛게 타오르지 않고 잠잠했다. 술을 그리 잘 마시는 편이 아닌 아내조차 천천히, 즐겁게 음미 중이었다.
타파스가 안겨주는 기적이었을까. 우리는 이 일을 계기로 좀 더 친해질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어릴 적부터 그런 '타파스의 기적'이 없는 한 나와 술은 상극(相克)이 될 것을 알고 있었다. 부모님은 지금도 약주(藥酒)를 걸칠 때면 경쟁하듯 얼굴이 빨개진다. 그러고는 두 분 다 꾸벅꾸벅 졸음을 데려오시고는, 얌전히 이불을 펴고 푹 주무신다. 어릴 때부터 그런 모습을 본 나는, 틀림없는 미래의 내 모습이란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일명 '알쓰(알코올 쓰레기)'의 길을 눈물로 걸어야 할 생이었다. 어찌 보면 슬픈 운명(?)이었다.
그렇게 주어진 길을 최선을 다해 거역하고자 한 적은 있다. 혈기왕성했던 나이, 술 경쟁에 뛰어든 것이다.
정확한 배경은 기억나지 않지만, 같은 또래의 친구가 내 알량한 자존심을 건드렸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나도 자존심을 필사적으로 지키려고 한때가 있었다. 나와 그 친구는 한 술자리에서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대작(對酌)했다. 우리 둘은 온몸이 알코올로 터질 듯 젖어 드는 와중에도 꾸역꾸역 들이켰다. 병이 꽤 쌓였을 때, 내가 참다못해 화장실로 달려가면서 승부가 마무리되는 듯했다. 다른 친구의 증언에 따르면, 그 친구는 그 모습을 본 후 무릎을 툭툭 털고는 으쓱한 표정으로 자리를 비웠다고 한다. 그리고는 한 시간쯤 지나 친구들과 자주 가던 어느 분식집 앞에서 대(大)자로 뻗은 채 발견됐다. 나는 적어도 필름이 끊기지는 않은 상태였다. 그날 술자리에서 또 다른 친구가 감동한 목소리로 "너, 술에 입도 거의 안 대잖아. 내가 곧 군대에 간다고 하니 속상해서 마신 거야? 야, 감동이다. 인마."라고 등을 토닥였던 일도 기억했다. 뭔가 단단히 착각한 것 같았지만, 굳이 정정할 필요성을 못 느껴 웃기만 했던 일도 기억했다. 친구들은 치열한 토론 끝 둘 다 비참하게 패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어쨌거나 살면서 술을 가장 많이 마신 순간이었다.
역시 사람은 수모를 겪어봐야 깨닫는지, 지금은 절대 그런 일은 하지 않고 있다. 역시나 운명은 가혹한 법이다. 지금은 술자리에 가면 어허허 하고 "이모, 사이다도 한 병 주세요"라고 당당히 외친다.
술을 즐긴다는 건 어떤 마음일까.
많은 사람은 술을 마시면 이유 없이 들뜬다고 한다. 나는 그런 기분을 느낀 적이 거의 없다. 또, 많은 사람은 맥주와 와인, 심지어는 전통주까지도 공부하고 있다. 내 입장에선 금단의 영역이다. 그래서인지, 아예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호기심이 따라온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똑똑한 의료인과 과학자님들께서 '알쓰'도 어느 정도 술을 즐길 수 있도록 힘 써주셨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어젯밤, 그녀는 얼마나 마셨으면 이런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일까요. 눈에는 초점이 없습니다. 속이 뜨거운 듯, 표정도 영 좋지 않습니다. 옷을 갈아입을 기운조차 없는지, 잠들었던 복장 그대로 겨우 침대에서 빠져나온 것 같습니다. '해장술'을 하려다가, 이마저도 몸이 허락하지를 않는지 가만히 멍 때리기를 택한 모습입니다.
툴루즈 로트레크가 그린 그림 속 수잔 발라동은 당시 '파리의 연인'으로 불릴 만큼 인기 있는 여성이었습니다. 19세기 프랑스 파리의 '초신성'들과 소통하는 그녀는 어쩌면, 내키지 않을 때도 술을 곁에 둬야 할 때가 많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라디오 진행자가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주량이요. 함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분위기가 어떤지에 따라 매번 달라질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