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성'보다 좋은 인생 숙소, 찾았습니다

일스테드, Interior with a Young Girl Writing

by 이원율

누군가가 그곳과 50만원짜리 호텔 1박 2일 중 고르라고 하면, 나는 망설임 없이 전자(前者)를 택하겠다. 그 숙소는 내게 잊을 수 없는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곳이었다.


나와 아내는 오스트리아 오버트라운(Obertraun)에서 궁극의 숙소를 마주했다. 우리는 당시 체코~오스트리아 코스로 동유럽을 여행하는 중이었다. 오버트라운에서 하루를 묵은 후, 푸른 호수 마을로 칭해지는 할슈타트(Hallstatt)를 지나 빈(Wien)에 다다르는 일정이었다. 그나마 숙박 물가가 싼 오버트라운은 경유지 같은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인생 숙소'를 만나게 되리라곤 생각치 못했다.


그곳은 진한 통나무를 덧대 만든 이층집이었다. 반듯하지도, 오래되지도 않은 집이었다. 사람으로 치면 40대 초중반의 인상이었다. 문을 두드리자 웃음 많은 노부부가 반겨줬다. 혀를 쭉 내민 골든 리트리버도 꼬리를 흔들었다. 바깥 바람이 차가울 때였다. 거실에서부터 따뜻한 공기가 확 다가왔다. 오래된 책 냄새, 성긴 담요 냄새, 뭉근히 끓인 호박 스프 냄새 같은 게 코 끝을 간질였다. 빨간 망토를 머리 끝까지 뒤집어 쓰고, 무릎에 담요 한 장을 얹은 채 나무 장작이 타오르는 벽난로 앞에서 따뜻한 우유라도 마셔야 할 것 같았다.


우리가 머물 곳은 2층이었다. 희고 노란 구슬들을 품고 있는 겨우살이 몇 움큼이 계단으로 인도했다. 양쪽 벽에는 이들 부부의 가족 사진이 액자들 속 정갈히 담겨있었다. 2층은 넓진 않았지만 거실과 안방, 부엌과 화장실이 모두 있는 곳이었다. 압권은 거실이었다. 빛으로 매달리는 조명들이 옅은 빛줄기를 뿜어냈다. 창문에는 붉은 실로 문양을 뜬 커튼 두 줄기가 부비적거렸다.


피터 웨버 감독의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는 하녀 그리트에게 하늘을 가리키며 구름이 무슨 색이냐고 물어본다. "흰색이요." 당연하다는 듯 답한 그리트가 이내 다시 대답한다. "노란색, 파란색 회색…. 아, 구름에도 색깔이 있군요." 나는 이 숙소를 통해 조명도 제각각 색깔과 온도가 있고, 어둠도 그저 차갑고 무섭기만 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체감했다.


빛이 그 자체로 시(詩)가 될 수 있고, 창문들에 담긴 어두운 밤은 그 자체로 소설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처음 깨달았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노벨문학상 작가 페터 한트케와 거실 한가운데 있는 4인용 나무 책상에 앉아 이런 황홀한 경험을 놓고 토론이라도 하고픈 마음이었다.


그 숙소에 있는 2박 3일간은 날씨가 좋지 않았다.


특히 둘째 날엔 유리창이 흔들거릴 만큼 비바람이 매섭게 몰아쳤다. 이른 오전 할슈타트의 푸른 호수를 보러 간 우리는 심상찮은 날씨 탓에 허겁지겁 숙소로 돌아왔다. 노부부도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 산책을 멈추고 돌아온 듯했다. 물기를 머금은 네 발 달린 금빛 털뭉치가 몸을 돌돌 털어댔다. 우리는 서로를 보고 웃었다. 아내는 여행지에서 '인싸'지만, 나는 '아싸'에 가깝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숙소의 일부분이었던 이들마저 그런 나에게도 부담되지 않는, 하지만 따뜻하게 다가오는 황금비율(?)의 호의를 지녔었다.


숙소를 찾아온 지 이틀 째 되는 날, 날씨는 험악했다. 이기적인 마음이었지만, 이날 하루는 계속 험악해도 괜찮을 듯했다.


우리는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뜨거운 차를 한 잔 마셨다. 바깥을 보니 나뭇잎과 가지들이 대차게 흔들렸다. 스피커에서 어쿠스틱 음악이 잔잔히 들려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묘한 안정감을 느꼈다. 어릴 적 나는 공포 영화를 본 후에는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어쓴 채 자곤 했다. 이불이 그날만큼은 철갑처럼 나를 지켜줄 것 같았다. 마치 투명망토를 덮어쓴 듯 스스로도 이 이불을 덮으면 귀신도, 요괴도 나를 보지 못할 것이라고 되내었다. 그러면 늘 야릇한 편안함이 다가왔다.


나는 흔들리는 창문을 보고, 후두둑 거칠게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그때의 이불을 떠올렸다. 숙소는 그만큼 포근했고, 그보다도 한결 더 따뜻하고 안전했다. 야릇한 행복감이 슬금슬금 밀려왔다. 우리는 숙소 한 켠에 있는 보드 게임을 챙겨왔다. 뱀 사다리 게임, 다이아몬드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간 여정을 담은 일기를 쓰고, 서로에게 애정 어린 편지도 썼다. 오직 해피 엔딩밖에 없는 동화 속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할슈타트는 푸르렀고, 빈과 잘츠부르크(Salzburg)는 찬란했다. 그럼에도, 가장 행복한 순간은 오버트라운의 그 숙소에서 머리를 탈탈 말린 채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을 때였다.


최소한 몇 년에 한 번씩은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설렜다.




그래, 그때는 그랬지…. 꿈꾸는 일이 항상 이뤄지고 언제나 해피엔딩이면 좋겠지만, 당연히 그러지 않을 때도 있다. 코로나19가 찾아왔다. 외국으로 넘어가는 뱃길과 비행길이 모두 막혔다. 해외의 어느 그림 같은 도시, 동화 같은 숙소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은 꿈에서만 할 수 있는 암흑기가 이어졌다. 나와 아내는 어쩔 수 없이 국내 여행으로 방향을 틀어야 했다. 그래도 마냥 죽으라는 법은 없는 것인지, 새롭게 풍덩 빠져든 콘텐츠가 있다. 지금은 이른바 국경 안 '북 스테이'에 꽂혀있다. 이는 숙박과 책 대여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는 공간이다.

휴가에서 웬 독서인가. 책은 단지 '인증용' 소품이 아니었는가. 원래는 내 마음도 그랬다. 나름 평생 애독가를 자처하는 데도 그랬다.


그 생각은 해외여행 대신 울며 겨자먹기로 떠난 제주에서 고쳐먹었다.


우리는 해외를 포기하고 제주행 표를 끊었다. 지친 우리는 숙소 지박령을 자처했다. 부동산에 어수선한 서울, 백신으로 시끄러운 직장에서 잠시 떠난 그 자체로 황홀했다. 특히 치솟는 집값으로 울고불고 할 때였다. 나와 아내는 숙소 테라스에 앉아 책을 봤다. 휴가지에서 마음 먹고 가진 첫 독서 시간이었다. 마음 속은 이미 오버트라운의 그 숙소였다.


나는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읽었다. 아내는 버넷의 《소공녀》를 다시 탐독했다. 유키 구라모토의 피아노 곡 《Everlasting Gentle Thought》가 들려왔다. 귤피차 특유의 구수한 향이 코를 맴돌았다. 바깥은 짙은 여름이었다. 바람은 적당히 서늘했다. 젖은 옷을 시나브로 말려주는, 딱 감기에 걸리지만 않을 세기였다. 마르케스의 소설 속 묘사는 사진처럼 생생하다. 단지 어떤 이는 죽은 할아버지와 말을 하고, 누군가는 이무기와 끼니를 나눠먹을 뿐이다. 어떤 이는 산 채로 승천하고, 또 누군가가 죽은 날에는 하늘에서 꽃비가 내려왔다. 마르케스를 한 줄 읽고, 낯선 숲 속 숙소에서 풀과 나무를 쳐다보니 정말 하늘이 말을 걸고 흙과 벌레가 내 말을 엿듣는 듯했다. 숲 속에서 갑자기 집시들이 튀어나와 함께 길을 떠나지 않겠느냐고 손 내밀 것 같은 예감이 밀려왔다.


백년의 고독을 덮은 후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을 때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지휘하는 정예 보병 10군단의 진군 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것 같았다. 가슴이 뛰었다. 이는 익숙한 책상에서 읽을 때는 느낄 수 없는, 잊지 못할 마술적 경험이었다. 슬쩍 돌아보니 아내도 책에 푹 빠진 상태였다. 아내는 스스로 소공녀 세라가 된 양 주인공을 괴롭히는 민친 선생에게 분노 중이었다. 세라가 정말로 공주처럼 부유해졌을 때는 딸을 잘 키워낸 사람처럼 뿌듯해 했다.


낯선 곳은 오감을 일깨운다. 이런 상태에서 책에 오롯이 집중한다. 책에 더욱 깊이 빠져들 수 있는 기회였다.


북 스테이 숙소에서 속편히 만화책을 쌓아놓고 읽던 중 스르르 잠든 적이 있다. 때 마침 따뜻한 우유를 마셨다. 침대 아래에선 전기 장판이 지글지글했다. 베개와 이불은 가벼웠다. 다음 날 알람 따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였다. 불안 없이 깊이 잠들었다. 늘상 뒤를 따라오는 조바심도 그날만큼은 쉬었다. 오직 북 스테이 숙소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일탈이었다.


"생각해보면 말이야. 크리스마스 선물 같던 그 숙소에서 북 스테이를 하면 또 얼마나 좋을까. '왕크왕귀(왕 크니까 왕 귀엽다)'는 말이 있잖아. 좋은 것 더하기 좋은 것이니, 당연히 왕 좋을 수밖에 없겠다."


운전대를 잡은 아내가 말했다. 지난 여름, 우리는 제주의 한 숙소에서 북 스테이를 마친 후 공항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워후…. 내 눈과 입이 둘 다 동그래졌다. 이렇게, 살아야 할 이유를 갑자기 또 하나 얻다니.



피터.jpg 피터 일스테드, Interior with a Young Girl Writing

좋은 숙소의 조건 : 따뜻함, 그리고 안락함.


햇빛이 집 안으로 가득 들어왔습니다. 진한 꽃무늬 커튼, 그리고 그 틈으로 여릿히 보이는 푸른 자연 덕일까요. 주황빛이 감도는 빨간 줄무늬의 식탁보, 이슬 품은 들판을 옮겨놓은 듯한 러그 덕일까요. 방은 딱 적당한 온기를 품고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곳이 좋은 집이라는 것. 또, 여행자에게는 분명 좋은 숙소가 될 수 있다는 것. 굳이 통로를 지나 방을 빙 둘러보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요즘 시대의 그림이었다면, 그림 속 여성을 '한 달 살이'의 생활 속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쓰고 있는 모습으로도 상상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연을 그려봅니다. 편지의 내용을 상상해봅니다. 왠지, 딱딱하게 멍울진 마음이 뭉근하게 녹아드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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