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선생님, 저는 피아노를 치고 싶어요

스타니슬라프 쉬코프스키, 피아노가 있는 거실

by 이원율

아내와 바닷가 어느 작은 마을에서 야채 카레집을 운영하는 것 말고도 당장 소망이 더 있는데, 바로 집 안에 피아노를 두는 일이다.


번쩍이는 하얀 그랜드 피아노는 바라지 않는다. 건반을 눌렀을 때 그 자리에 맞는 음만 내어주면 충분하다. 주말에 잠깐 시간을 내어주고, 연말쯤 마음 맞는 친구들과 홈 파티를 할 때 감초(甘草) 역할을 해줄 수 있다면, 그 이상 바랄 게 없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Love affair', 이루마의 'When the love falls', 'River flow in you',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시간을 넘어서'…. 사실 나는 좋아하는 몇몇 곡을 피아노로 곧잘 쳤다. 제대로 배울 기회는 없었지만, 틈만 나면 배우려고 노력한 덕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한 카페에서 근 10년 만에 피아노를 접했을 때, 좋아하는 윗 곡들을 겨우 한두 소절만 더듬더듬 기억할 뿐이었다. 피아노는 언제든 탈 수 있는 자전거 같은 게 아니었다. 아, 옛날이여. 세월이 야속하다.


피아노를 처음 접한 건 초등학교 4학년생 때였다.


한 친구의 집에 피아노가 두 대 있는 것을 보고, 또 그 친구가 이를 기깔나게 치는 것을 본 나는 엄마에게 피아노 학원에 다니게 해달라고 칭얼댔다. 얼마 전 내게 축구공을 사준 엄마는 또 시작이냐는 투로 못 이기는 척 웃었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안나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 동네 꼬마 아이들을 가르치는 아주 작은 곳이었다. 학원 문을 열면 쇼팽 음악이 늘 반겼다. 피아노가 있는 작은 방은 4곳 정도였다. 그중 한 곳에서 마음껏 건반을 만질 수 있었다.


다만, 당시 피아노 선생님은 이미 노쇠한 상태였다. 학원은 얼마 지나지 않아 개인 사정을 이유로 무기한 휴업을 했다. 그리고는 영영 문을 열지 못했다. 그때 맛본 피아노가 너무 좋았던 탓에, 초등학교 5학년생 때는 혼자 학교 합주부의 문을 두드렸다. 어린 마음에, 피아노와 비슷하게 생긴 오르간이라도 배우고 싶어서였다. 합주부 선생님은 오르간은 자리가 다 찼으니 알토 리코더를 배워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오르간에 빈자리가 나면 1순위로 추천하겠다는 조건이었다. "좋아요. 쌤. 근데 정말 약속 지키셔야 해요." 하지만 내가 졸업할 때까지 선생님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하필 오르간을 맡은 아이들은 학교에서 최고로 성실한 친구들이었다. 한 명쯤은 성질내고 때려치울 법도 한데, 진짜 2년 내내 끝까지 갔다.


이 때문에 나는 주야장천 알토 리코더만 불어댔다. 뜻하지 않게 알토 리코더로 바흐의 미뉴에트를 완창할 수 있는 능력을 얻었지만, 내가 원한 건 그게 아니었다. 당시 전국 대회에서 찍힌 사진들을 보면, 나는 오르간을 곁눈질하면서, 뽀로통히 알토 리코더를 쥐고 있다. 선생님, 이제는 오르간을 치고 싶어요…. 라는 표정을 짓고서다.


이쯤 되면 포기할 법한데, 이상하리만큼 피아노는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만화책 《노다메 칸타빌레》를 완독하고,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영화 《피아노의 숲》을 독파하고 나니 짝사랑의 감정만 더욱더 진해졌다. 피아노 노래를 불러서인지, 대학생 땐 동기 중 한 명이 같은 학교의 피아노과 선배를 데려왔다. 그 선배에게 일주일에 두 번, 한 시간씩 음악대학에서 1대1 피아노 수업을 받았다. 가르침은 어릴 적 다닌 피아노 학원과 비슷한 곳에서 이뤄졌다. 선배는 웃음이 많았고, 나는 피아노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했다. 선배는 치는 것만큼 듣는 게 중요하다면서, 요한 파헬벨과 이루마의 세련된 곡을 알려줬다. 피아노를 꾸준히 치고 싶다면 손가락의 힘을 길러야 한다며 따로 시간을 내 하농도 가르쳤다. 그해 연말에 있던 유키 구라모토의 방한 콘서트는 꼭 가보라며, 돈이 없으면 그달 수업료는 받지 않겠다고 선언키도 했다. 또 내게 선심 쓰듯 자신의 연습실 출입증을 공유해준 덕에, 그때의 나는 원 없이 피아노를 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배우고 싶었던 엔니오 모리코네의 'Love Affair'를 익히고는 민망한 박수를 받았다. 내가 치는 음을 내가 감상했다. 거기 푹 빠져들었을 때, 괜히 목울대가 후끈해졌다. 처음 겪는 느낌이었다. 돌아보면 '대2병'을 앓던 때였다. 이 수업은 내게 의미 있는 위로를 전해줬다.


피아노를 마지막으로 마주했던 곳은 군(軍)부대였다.


군부대에 피아노가 어디 있느냐는 생각을 할 법하지만, 감사히도 중대 바로 옆 교회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었다. 군인이 어디 피아노를 칠 시간이 있었느냐는 역정도 들 법하지만, 눈이 오지 않는 휴일에 쉬는 시간을 쪼개면 1~2시간 정도는 가능했다. 물론, 계급으로는 상병이 꺾이고 난 이후, 분대장을 달고서였다. 내 생애 가장 암흑기였던 때, 피아노를 마주하고 건반에 손을 올릴 때만큼은 알 수 없는 위안을 받곤 했다. 다들 그랬듯 나 또한 속상하고 억울한 일이 한가득이었다. 이루마의 'River flow in you'를 수백 번은 쳤을 것이다. 때로는 맑은, 때로는 격정적인 선율이 내 머리 위를 맴돌았다. 그 덕분에 살 수 있었다.


군 전역을 하고는 곧장 취업 준비를 하다 보니, 그때부터 피아노를 깨끗이 잊었다. 여러 위대한 예술가들과는 달리, 나에게는 예술보다 삶이 먼저였다.


사람의 기억력은 참 보잘것없다. 사실 카페에서 피아노를 쳤던 얼마 전 그날, 적잖게 당황했다. 피아노를 마주하지 못한 지 꽤 시간이 흘렀다고 해도, 이렇게 깔끔하게 모든 것을 잊을 줄은 몰랐다. 그런데 사람의 감정은 참 입체적인 게 그 당황 안에는 묘한 설렘도 함께 있었다. 역시 피아노를 좋아하는구나. 이 감정은 좋은 사람을 만나는 일, 기대되는 일정을 마주하는 일과는 또 다른 종류의 설렘이었다.


늘 그랬듯, 언젠가 다시 피아노를 마주할 것을 안다.


친구의 집, 학원, 대학 강의실, 연습실을 넘어 이제는 가정집이 되지 않을까. 한 악기에 대해 짙은 여운을 품을 수 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내 인생 악기님, 곧 보게 될 그때부터는 더는 헤어지지 말고 오랜 기간 함께 하는 것으로 해요.


퍄노.jpg 스타니슬라프 쉬코프스키, 피아노가 있는 거실

누군가는 넓은 거실 한 가운데 그랜드 피아노를 놓고, 그 아래 고급스러운 원형 카펫을 깔아두는 것을 로망으로 심어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멋진 상상입니다.


하지만 무척이나 무던한 저는, 이미 많은 이의 손을 거친 듯한 작은 피아노와 등받이가 있는 나무 의자 정도면 충분합니다. 볕 잘 드는 창가에서, 제라늄 화분을 올려놓은 이 피아노로 좋아하는 겨울 곡을 연주하고 싶습니다. 동네 사람들을 몇몇 초청해 간이 연주회를 열 일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참 동화 같은 순간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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