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바르트 뭉크, 멜랑콜리
막 문을 연 빵집을 맴도는 버터 냄새, 복사기에서 갓 빠져나온 따뜻한 종이 냄새, 짭쪼름한 계곡물을 품고 있는 가을 갈대 냄새, 핑그르르 돌돌 몸을 터는 잠에서 깬 강아지의 털 냄새….
코가 그리 민감한 편은 아니지만, 인상적인 냄새는 곧 잘 기억한다. 그런 내가 가장 각별히 떠올리는 냄새는 비에 흠뻑 젖은 흙 냄새였다.
나의 첫 '인생 수업'에 함께 했던 냄새였기 때문이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생 당시 육상부에 속했다.
한글을 외우기 전부터 시골 들개들과 경주하며 뛰어놀았다. 그런 만큼 달리기 하나만큼은 귀신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체육 시간 정도는 괜찮은데, 반 대항 이상의 큰 시합만 나가면 틀림없이 퍽하고 넘어졌다. 너무 긴장하고, 큰 부담을 떠안을 때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이다. 일종의 징크스였다. 아직 기억한다. 어느 날, 선두권에 있는 이어달리기의 마지막 주자로 뛰다가 얼굴을 땅에 처박았다. 너무 성질이 나 쌍코피가 줄줄 흐르는 것조차 몰랐다.
"쟤는 빼. 또 자빠질 거잖아."
가을 운동회를 1주일여 앞 둔 어느 날, 한 남자 애가 운동회 '라인 업'을 의논하는 학급회의 시간에 나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그저 지기 싫은 어린 애의 별 뜻 없는 말이었을텐데, 그땐 한껏 화가 치밀었다.
"절대로 안 넘어질테니까, 그냥 내 이름 넣어."
그 애를 째려봤다. 육상부가 운동회 날 달리기에 출전하지 않는 일은 치욕이다. 김밥에 사이다를 챙겨올 부모님을 볼 낯도 없어진다. 잔뜩 고집을 부렸다. 그렇게 내 뜻을 굳히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아…. 근데 또 넘어지면 어떡해. 그 나잇대에 무슨 다른 걱정을 하겠는가. 그땐 달리기를 갖고도 하루종일 걱정을 할 수 있던 시기였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난 후 곧장 운동장에서 연습을 했다. 그때는 그런 일에 왜 그렇게 목숨 걸 듯 달려들었는지…. 철은 없고 승부욕만 있는 꼬마 망나니였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다. 혼자 불안해서, 또 지기가 싫어서 거듭 내달렸다.
이어달리기의 마지막 주자가 된 모습을 상상하며 뛰었다. 이상하게 머릿속으로 그런 그림을 그린 후 뛰면 영 속도가 나지 않았다. 흙에 얼굴을 다이빙을 할까봐 두려웠다. 실제로 몇 번은 넘어질 뻔하기도 했다. 스스로에게 성질이 나서 뛰고 또 뛰었다. 또 비틀댔다. 그러면 또 뛰었다.
마지막 연습 날, 그러니까 내일이 결전의 날이었던 날, 때 늦은 소나기가 억수 같이 쏟아졌다.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오늘 뛰지 않으면 내일 틀림없이 넘어질 것 같았다. 그냥 비를 맞으면서 뛰었다. 처음으로 한 번도 넘어지지 않은 날이었다. 양껏 뛴 후 흙탕물이 고인 운동장에 그대로 팔 다리를 쭉 뻗은 채 누웠다. 속옷과 양말까지 흠뻑 젖은 상태였다. '하드 트레이닝'은 종료였다. 눈썹과 코 끝에 굵은 빗방울이 톡톡 떨어졌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 살면서 처음으로 스스로 무언가 해냈다는 생각을 했다.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때, 비에 젖은 흙 냄새가 코 끝으로 훅 들어왔다. 알 수 없는 향수(鄕愁)를 불러 일으키는 그 냄새에 몸이 붕 뜨는 듯했다.
운동회 당일, 나는 당연히 한 번 비틀거리지도 않고 최선두로 뛰었다. 손등에 드디어 1등 도장을 찍었다. 부모님과 반 친구들은 환호했다. 박수 소리가 이어졌다.
비가 쏟아지는 날 몇 시간씩 맨 몸으로 뜀박질을 연습하는, 그 정도 진심을 담은 정성이 있으면 많은 일을 해낼 수 있겠구나…. 새삼스럽게 그런 생각을 했다.
수학 공식과 영어 문법이 아닌, 당장 시험에 써먹을 수 없는데도 무언가 배웠다는 느낌이 든 첫 순간이었다.
그 이후 중학생 때, 고등학생 때도 내일이 두려워 잠이 오지 않으면 촉촉한 흙 냄새를 맡으러 정처없이 걸었다.
그땐 이 냄새가 좋았다. 그때부터 장마는 나만의 축제 기간이 됐다.
"서울에서 무엇하러 이까지 왔어?"
엄마가 물었다.
"그냥. 울려고 왔어요."
나는 두꺼운 전공 책을 잔뜩 침대 위로 던지면서 말했다.
"하이고…."
엄마가 안타까움에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몇번 째였던가. 서류·실무 전형에 1차 면접까지 척척 붙던 나는 최종 면접에서 늘 떨어졌다. 힘들었다. 일은 풀릴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고작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인가라며 자책했다. 각종 시험지가 악당이 돼 나를 마구 걷어차는 꿈도 꿨다. 이번에는 진짜 합격할 줄 알았는데…. 서울의 손바닥 만한 작은 방에 누워있자니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 고향으로 왔다. 정확히는,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필요하면 통제도 해줄 수 있는 곳으로 도망쳤다.
때마침 비가 추적추적 왔다.
가슴을 누가 빨랫감마냥 쥐어짜내는 듯 답답했다. 우산을 펼쳐들고 골목길을 걸었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그대로 녹아내릴 것 같았다. 저 멀리 베란다에서 엄마가 나를 걱정스레 배웅하는 중이었다.
새삼스럽게도 동네는 참 변한 게 없었다.
아무 생각없이 걷다보니 초등학교 등굣길이었다. 그때 흐릿하게 그 냄새가 났다. 익숙한, 비에 흠뻑 젖고 있는 흙 냄새였다. 벌컥 튀어나오는 오토바이처럼 향수(鄕愁)가 찾아왔다.
넘어지는 게 너무 무서웠지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비에 흠뻑 젖은 채 그렇게 전력 질주를 하던 때가 있었다. 잊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런데,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상처 받기를 두려워하는 겁쟁이가 돼 버렸을까.
옛 초등학교 운동장이 보이는, 비에 젖은 벤치에 앉아 그때를 돌아봤다. 나는 진심으로 힘을 쏟았는가. 괜히 눈치를 보고, 지레 겁을 먹고 움츠러들지는 않았던가. 조금 더 힘껏 부딪혀야 할까…. 그 흙 냄새가 아니었다면, 아마 다시 서울로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세상 모든 게 밉고 무서운 상태였다.
우산을 내려놨다.
운동화 끈을 질끈 매고 그때처럼 다시 뛰어봤다.
이렇게 수월한데, 그때는 왜 그렇게 뛰면서 넘어지는 게 두려웠을까. 지금의 내 상황도 멀리서 보면 별 것 아닌게 아닐까. 얼만큼은 뛰었는지 알 수 없다. 차오르는 울컥함을 수차례 억누르면서 내달렸다. 누군가가 미친 사람으로 오해해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홀로, 그 흙냄새를 온종일 맡았다.
그날 밤, 비에 홀딱 젖어 돌아왔지만 몸은 한층 가벼웠다. 어색하게나마, 부모님과 마주하며 미소를 띄울 수 있을 만큼 녹아있었다.
간만에 깊이 잠들었고, 그날 간만에 꿈을 꿨다.
그 꿈에는 10살 짜리인 내가 길목 틈에서 쪼르르 나와, 그새 폭삭 늙어버린 내 손을 잡고 뛰는 장면이 있었던 것 같다.
한 남성이 생각에 잠겨 있습니다.
힘 없이 탁 풀어진 얼굴, 축 늘어진 자세, 밑도 끝도 없이 거무죽죽한 옷차림이 눈길을 끕니다. 이날만큼은 바다와 모래마저 끈적해보이는 게 영 유쾌하지 않습니다. 정확히 무엇을 떠올리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다지 반갑지 않은 일이 머릿속에 맴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남성은 저 멀리 나무데크 위에서 한껏 분위기를 잡고 있는 두 사람과도 대조됩니다.
어릴 적 부모님과 흙장난을 하던, 혹은 첫 연인과 손 잡고 나란히 걷던…. 혹시 이 남성에게 이 장소는 어떤 사연이 있는 곳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다시 찾은 이 곳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었기를. 시대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면요. 이 사람을 만나 서로의 좋았던 그 시절을 말하고 싶어요. 좀 더 친해지면 잊지 못할 냄새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