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 삼나무가 있는 밀밭
"남산공원은 터가 참 좋다고…. 서울에서 손꼽히는 명당 중 한 곳이라고 해."
내 또래인 서울시청 소속의 병아리 공무원이 불쑥 남산공원 예찬론을 설파했다.
얼마 전, 우리는 서울시청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시청을 잠깐 들르기로 한 날에 맞춰 잡은 약속이었다. "아이고, 얼굴이 많이 탔네." 넉살 좋은 그는 활짝 웃으면서 인사 아닌 인사를 했다. 나는 요즘 볼살이 팅팅 붙는 듯해 하루에 청계천을 6~7km씩 걷고 있노라고 했다. 또, 이사를 한 후에야 공원의 소중함을 알았다고 덧붙였다. "맞아. 특히, 우리 이 기자는 남산공원 바로 밑에 살았잖아." 그가 응수했다. "며칠 전에 과장님이 한 말인데 말이야. 남산공원은 기운이 참 좋아서 아픈 사람들도 많이 온대. 저 멀리서 비행기를 타고 오는 사람들도 있다나봐. 너, 꽤 괜찮은 곳에 터를 잡았던 거야."
꽤 괜찮은 곳….
그래, 다른 건 싹 다 차치(且置)해도, 남산공원만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는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에 있는 원룸에서 사회 초년생 생활을 했다. 알려진 바대로, 서울에서 가장 큰 쪽방촌 중 한 곳이었다. 고작 내 얼굴만 한 창문에선 하루살이와 바퀴벌레가 끊임없이 올라왔다. 살충제 한 통이 2주일을 못 갈 정도였다. 취객과 노숙인은 밤낮 구분 없이 맴돌았다. 누군가가 술에 취해 밤새도록 꽥꽥대고, 비틀거리면서 집 대문을 건드리면 주저 없이 112에 신고했다. 경찰은 생각보다 내 삶에 가까이 있다는, 그런 귀한 사실을 알게 된 시기였다. 이런 비루함이 넘쳐나는 가운데, 남산공원과 가깝다는 점은 그 동네에서 딱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었다.
"고작 이거? 너, 여태 뭐 했어."
그쯤, 그놈의 상사는 나를 얼마나 괴롭혔던가.
그는 내게 끊임없이 일을 요구했다. 팀 몫으로 함께 해야 할 일도 쉽게 떠넘겼다. 일하고, 또 일해도 불만이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는 그런 때 쓰는 말이었다. 허덕이고 허덕이는데도 채찍질만 할 뿐이었다. "이 일도 챙기고." "이거 다 할 수 있지?" 그 상사의 메신저는 항상 간결했다. 그때 정말 궁금했던 것은 두 개였다. 그는 일과 시간에 도대체 무엇을 하고, 또 어떻게 매번 혼자서만 칼퇴근을 할 수 있는지였다. 머리 위로 드론을 띄우고 싶을 정도였다. "너, 눈치가 없는 거니? 하여간, 여자애가 아니어서 더 그런가…." 상사가 해야 할 그 일을 내가 눈치껏 먼저 하지 않았다고 해서 들은 말이었다. 그래, 그런 말도 들었었다. 그때 나는 큰 잘못을 한 줄 알았다. 하지만 나름의 연차가 쌓인 후 돌아봐도 그런 말을 들을 만큼 잘못한 일은 아니었다.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 자체가 잘못한 일이 아니었다.
선선하게 감싸주는 공기, 세상 끝으로 뿜어져 나와 손 내미는 나무줄기, 모로 가든 성실하게 이어지는 길….
그 덕분에 삶이 굉장히 피폐한 때였지만, 이상하리만큼 남산공원만 다녀오면 마음속 뭉근한 무언가가 덜어지는 것 같았다. 위로가 됐다. 정말로, 남산공원의 기운을 빨아들인 양 그랬다. 밤 9시부터 10시까지, 보기 싫은 상사 생각은 걷어찬 후 그저 걷고 뛰기만 했다. 나는 백범광장을 지나 안중근 기념관으로, 그 위로 쭉 뻗은 계단을 타고 남산타워까지 가는 길을 선호했다. 내 방에서 꼭대기까지는 등산 훈련하듯 헐떡대며 오른다면 딱 30분이었다. 차라리 몸이 힘든 게 더 나았던 때였다. 하산할 땐 다른 길이었다. 남산도서관 쪽으로 계단 없는 비교적 완만한 내리막을 탔다. 길 중간에 볼 수 있는 철봉에서 턱걸이를 했다. 그렇게 망설임 없이 일정을 마무리했다.
주말에는 무언가에 홀린 듯 눈을 뜨면 일단 남산부터 다녀왔다.
해가 어슴푸레 뜨기 시작할 때 남산공원을 걷다 보면 온전히, 침해받지 않은 채로 하루를 여는 것 같았다. 잘 가꿔진 개인 정원을 걷는 듯도 했다. 아침에는 항상 소월길을 통해 내려갔다. 무뚝뚝한 나무 터널 사이로, 정갈히 이어지는 계단을 볼 수 있는 길이었다. 발 길이 많이 닿지 않은 덕에 오롯한 녹색 내음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곳이었다. 부스럭, 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틀림없이 청설모를 볼 수 있었다. 해방촌의 작은 카페에서 아침 커피를 마시고, 얇은 책 한 권까지 읽으면 완벽했다. 내 버전으로 '불금의 치맥' 같았다고 할까. 한 주 동안 겹겹이 묻혀온 너절한 것들을 씻어내는 순간이었다.
"파르마의 수도원을 예순네 번이나 읽었어요. 매번 읽을 때마다 이전보다 더 재미있었어요."
"어떻게 같은 소설을 예순네 번이나 읽고 싶어 할 수 있죠?"
"당신이 사랑에 푹 빠진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단 하룻밤만 보내고 싶겠어요?"
"그건 비교가 안 돼요."
"마찬가지예요. 똑같은 텍스트, 똑같은 욕망이라도 무수한 변주가 가능해요. 단 한 번으로 한정된다면 정말 아쉬울 거예요. 특히 예순네 번째가 최고로 좋을 때는." [아멜리 노통브, 『머큐리』 중]
중독된 사람처럼 진저리나게 찾아갔지만, 그런데도 남산공원이 지루했던 적은 없다.
나는 늘 남산공원이 있어야 했다. 꼴 보기도 싫은 상사를 털어낼 때를 빼고서도 글발이 안 설 때, 친구와 뜻이 엇갈릴 때, 엄마와 통화 중 쓸데없이 싸웠을 때, 무엇보다도 앞으로 살아가야 할 순간들이 너무 무섭고 지난 시간은 무척 후회될 때, 그때도 항상 남산공원을 갔다. 남산공원에 있는 나무줄기 몇 가닥이 튀어나와 우리가 동네북이냐고, 무슨 일만 있으면 나를 찾느냐고 멱살을 잡고 흔들어도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장담컨대 헤아려보지는 않았으나, 일 년에 남산공원을 오른 횟수는 과장 없이, 최소한 200번은 됐을 것이다. 그 시절 내가 보다 온전할 수 있었던 것은, 남산공원이 장식해준 그 시간 덕분이었다.
지금도 종종 아내와 손을 잡고 남산공원을 간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어는 날, 우리는 남산공원 둘레길을 걸으면서 둘의 미래를 그렸다. 홀로 남산공원을 뛰어다닐 땐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걷는 남녀가 참 예뻐 보였는데, 이젠 이를 대견히(?) 보지 않아도 됐다. 남산공원 꼭대기에서 순환 버스 정류장이 있는 큰길로 내려갈 때, 잠깐 멈춰 도심부를 보면 근사한 풍경을 볼 수 있다. 남산공원을 백 번 이상 왔다 갔다 한 나 혼자서 생각하는 '남산공원 1경'이다. 우리는 항상 그곳에 멈춰서, 물끄러미 아래의 세계를 바라봤다. 예쁘다는 표현보다는 아름답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광경이었다. 끝으로 갈수록 짙어지는 남색의 한강 줄기는 도시를 감싸 빙 돌고 있는 바다 같다. 위로 우뚝 솟은 건물들은 고요한 등대처럼 다가온다. 내려가면 순박한 어부들과 함께 소박한 항구, 공동묘지를 바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남산공원은 항상 아낌없이 정화(淨化)의 힘을 전해줬다.
"널 낳고 나서 모든 일이 잘 풀렸어."
엄마는 어릴 적 내 손등을 쓰다듬으며 이런 말을 하곤 했다. "남산공원 덕분에, 많은 일이 잘 풀릴 수 있었다." 나는, 남산공원에 이런 말을 전해주고 싶다.
구름 한 자락, 나무 한 줄기에도 강한 기운이 서려 있습니다. 억지로 힘을 빼고 싶은 이도, 이곳을 찾으면 되레 생명력을 한 움큼 지고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위 하나, 밀 한 가닥에도 각자 다른 사연이 담겨 있어 보입니다. '나도 한때 그런 고민을 했어. 지금의 그 걱정도 찬찬히 놓고 보면 별것 아니니까, 그냥 밀어붙이면 돼.' 가만히 앉아 귀 기울이면, 이같이 터프하게 꼬드기지 않을까요.
빈센트 반 고흐가 그토록 밀밭을 자주 찾은 이유. 그도 이곳만 찾으면 마음속 뭉근한 무언가가 덜어진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