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 날,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구스타프 클림트, 포옹

by 이원율

아…. 이 한 마디로 끝이었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맑은 겨울의 어느 날이었다. 아버지가 할머니의 영면(永眠) 소식을 전해왔다. 흔한 가족 영화의 장면처럼 눈물이 왈칵 쏟아질 줄 알았다. 그런데, 심장은 의외로 담담했다. "아이고, 저 놈 보소." 하늘 위 할머니가 역정을 내도 이상할 게 없을 만큼 그랬다.


할머니의 죽음.


우리 가족은 이미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모두가 입 밖으로 꺼내기를 자제했을 뿐,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런 말을 하면 누군가는 버르장머리 없는 자식이라고 욕할지도 모르겠다. 할머니는 충분히 늙었다. 사실, 손(孫)을 볼 때쯤부터는 건강이 좋을 때보다 나쁠 때가 더 많았다. 그 시기에 맞춰 이른바 '건강의 줄'을 탁 놓아버린 것 같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버린 할머니에게 감기는 폐렴 같았다. 넘어지면 틀림없이 뼈가 부러졌다. 언젠가부터 눈병을 달고 살았고, 막판에는 귀까지 어두워져 대화조차 거의 안 될 정도였다.


그런 할머니가 나를 좋아했다는 것을 안다.


아니, 눈에 담고 싶어할 만큼 있는 기력을 다해 끔찍이 아꼈다는 것을 잘 안다. 네 살, 다섯 살쯤이었나. 나는 할머니의 치맛폭을 좋아했다. 아버지는 공사장에서 일을 했고, 엄마는 삯바느질을 했다. 두 분 다 바빴다. 할머니는 내 응석을 받아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돌이켜보면, 할머니는 내 '처음'의 순간에 늘 함께였다.


할머니는 강아지풀을 꺾어 풀 피리를 만드는 법부터 동네 고양이와 친구가 되는 법, 소에게 여물을 먹이는 법을 가르쳤다. 연 날리는 법도 배웠고, 비가 올 때 어떤 길을 가야 지렁이를 볼 수 있는지도 알려줬다. 그 뿐인가. 어느 날 고장난 자전거를 들고 온 할머니는 이를 뚝딱 고치고는 작은 보조 바퀴까지 달아 내게 자전거 타는 법도 알려줬다. "할머니, 손 떼지 마. 나 무서워. 진짜. 손 떼면 안 돼." 내 뒤에서 자전거를 밀어주던 할머니는 그때마다 "저, 저…. 하이고, 앞에 봐라. 그러다 무릎 깨진다"며 함께 다급해했다.


하지만 그 당시 추억에는 이미 먼지가 가득 내려앉았다.


할머니에 대한 비보를 들었을 때, 나는 삼십대의 사회 초년생이었다. 내가 전혀 특별할 것 없는 일개 사회 구성원에 불과하다는 것을 밀물처럼 받아들이고 있던 도시 직장인이었다. 옛 추억을 떠올리며 감상에 젖기에는 너무나 빠듯한 하루의 연속이었다. 그 시기를 곱씹을 여유 따위, 이미 마음 한 켠 창고 안으로 걷어찬 상태였다.


할머니의 장례식은 조용히, 담담히 마무리됐다. 정말 끝이었다.




그런 다음 갑자기 그 직후의 휴가 이야기를 꺼내려는 까닭은, 거기서 할머니에 관한 이상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간만에 산 속 한 가운데 틀어박힌 숙소에서 휴가를 보냈다. 할머니의 장례식이 끝난 후 한 달쯤이 흘렀을 때였다. 잘 다듬어진 풀과 나무 뿐인 별장 하나를 통으로 빌렸다. 몸과 마음 모두 비루해진 내게 주는 보상으로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휴가는 아주 제대로 망치고 말았다.


느낌은 좋았다. 가는 동안 길도 크게 헤매지 않았다. 근처 식당에서 싸온 음식들도 하나같이 맛있었다. 눈이 시릴만큼 큰 창으로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는 숙소는 포근했다. 전화기를 끄고 낮잠부터 늘어지게 잤다. 읽고 싶던 책, 듣고 싶던 음악들을 맥주 한 캔과 함께 배가 터질만큼 즐겼다. 나는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은 내가 대견했다. 사람과 말에 지쳐 스스로 고립을 택한 것이었다. 이런 삶을 몇개월에 한 번씩이나마 보장해준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 만큼 달콤했다.


그 날, 이른 저녁부터 눈만 오지 않았다면 좋았을까. 아니, 그렇다고 해도 저 멀리서 눈사람만 보이지 않았다면 괜찮았을까.


하고 싶던 일을 양껏 하고 나니 괜히 멍해졌다. 커튼을 활짝 쳤다.


나도 모르는 새, 온 세상이 희다 못해 창백해진 설국(雪國)이었다. 천사의 날개가 폭삭 내려앉은 것 같았다. 눈꽃 몇 송이가 손바닥 위에서 찬란히 꽃피웠다. 성스러움마저 느껴지는 그 풍경에 숨을 크게 들이쉬고 저 멀리를 내다봤다. 그때, 휘날리는 눈발 사이에서 커다란 눈사람이 보였다. 옆 동 숙박객이 급하게 만든 것일까. 아무 장식 없는, 그저 흰 눈사람 그 자체였다.


나는 이 광경을 멍하게 봤다. 차츰 목울대가 뜨거워졌다. 그러다가, 안전핀이 뽑힌 양 무언가를 토해내듯 울음을 터뜨렸다.


갑자기 왜…? 유성처럼 쏟아지는 할머니 생각으로 코 끝이 시려워져 견딜 수 없었다. 그러는 동안, 소금가루 같은 눈이 머리칼 위로 쉴새 없이 떨어졌다.


할머니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 후부터, 그 일 때문에 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릴 적 키워준 사람이 죽었는데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고, 그렇게 독한 줄 몰랐다고 수군대도 어쩔 수 없었다. 정말 눈물이 나질 않았다. 그런 내가 장례식이 끝난 지 한 달 후, 또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게워내듯 울었다. 통곡하듯 꺽꺽 눈물을 흘렸다. 오늘은 좋은 날이었다. 상사에게 시달릴 일 없고, 불안한 미래에 멱살 잡힐 일도 없는 날이었다. 눈을 질끈 감고, 입술을 꽉 깨물어도 눈물샘은 이미 고장난 수도꼭지였다.


할머니와 함께 한, 아주 짧은 장면 하나가 산 속 홀로 있는 눈사람을 보고 떠올렸다. 내 머릿속 가장 끄트머리에 간신히 매달려있던 기억이었다. 할머니는 눈이 억수같이 쌓인 그 날, 결심한 듯 내 손을 꼭 쥐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 당시, 할머니 목을 감싸주던 그 얇은 손수건을 기억한다. 목도리 하나 없는 할머니가 감기에 걸렸을 때 쓰던 천이었다. 어릴 적 나는 갓 눈을 뜬 아기 강아지마냥 눈을 좋아했다. 그 날, 나와 할머니는 실컷 눈싸움을 했다. 큰 눈사람과 작은 눈사람도 만들었다. 넓지 않던 옥상이었지만, 눈을 갖고 노는 게 너무 행복해 그 위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할머니는 내 손을 더 꼭 쥐고, 무릎을 굽혀 내게 눈높이를 맞추고는 말했다.


"할미가, 너랑 눈 장난을 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


그때는 몰랐지만, 할머니는 이를 위해 내색 없이 추위를 참았던 것 같다.


할머니는 어릴 적 소원이 눈을 갖고 노는 것이라고 했다. 갖은 집안일을 하고, 다섯이나 되는 동생들을 뒷바라지하다보니 남들 다 하는 일도 제대로 해본 게 없었다고 했다. 손 호호 불며 아궁이 앞에서 죽을 쑤고 있을 때, 동생들이 까르르 웃으며 눈싸움을 하는 모습이 그렇게 부러웠다고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이 세상에 없는 할아버지와 처음 눈을 뭉쳐 던지고 놀았을 때 느낀 행복감을 잊을 수 없다고도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별 것 아니지만, 어린 계집애 때는 그게 한이었어. 밤새도 좋다며 같이 눈사람이나 하나 참하게 만들자고 했을 정도니까….”


눈을 갖고 논 할머니는 그 다음 날 약속한 것처럼 앓아누웠고, 철 없는 나는 혼자서 라면을 끓어먹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무던한 아이였다. 이런 생각이 드니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그 다음부터는, 눈사람을 볼 때마다 열병처럼 할머니가 생각났다. 어쩌면 우리 할머니, 하얀 눈을 핑계로 자신을 평생 기억해주길 바랐던 것 아닐까. 행복했던 그 추억 속에서 평생을.


"왜, 왜 그렇게 꼼짝없이 늙고나서야 병원을 가셨어요. 도대체 왜…."


그렇게 울다보니 하루가 다 지나갔다.


숙소를 떠난 날, 나는 문 앞에 눈사람 하나를 만들어뒀다. 짚을 엮어 제법 그럴듯한 목도리도 둘러놨다. 이것은 오직 할머니와 나만 아는 의식일 것이다.



클림트 포옹.jpg 구스타프 클림트, 포옹

"정말 힘든 것은 외려 사소한 것이다. 우연히 보게 되는 옷가지, 한 밤중에 잠이 깰 때마다 솟구치는 그리움, 이젠 쓸모 없어진 애정…." 어디선가 읽고, 마음 속에 품게 된 문장이었습니다.


한 남성이 눈을 꼭 감은 한 여성을 꼬옥 안고 있지요. 고개를 푹 늘어뜨린 것을 보니,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는 것 같아요. 너무나 잔잔해보이는 이 여성은, 어쩌면 죽음이 드리워진 상태가 아닐까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비현실적으로 꼬부랑한 나뭇가지, 저승세계로 흔히 묘사되는 아기자기한 꽃밭이 슬픈 직감을 더욱 분명히 합니다.


이 남성의 등을 보세요. 꽃, 새, 나무, 물고기…. 어쩌면 이 여성과 함께 한 모든 추억들을 짊어진 것 아닐까요. 처음에는 '내가 이래도 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 만큼 별 감정이 없던 남성이, 어느새 그 추억에 잠식돼 뒤늦게 그녀를 찾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깊은 슬픔이란, 왜 항상 한 발짝 늦게 오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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