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내 강아지 엄지였는데

피에르 보나르, 작은 세탁소 여주인

by 이원율

우리는 경북 고령군에 있는 한 개울가를 '쪽배천'이라고 불렀다. 말 그대로 쪽배 한 척이 동동 떠다니기 좋은 작은 물줄기라는 뜻이었다. "눈을 감고, 하나…. 둘…. 셋…." 어머니는 이제 여섯 살이 된 나를 데리고 그곳에서 수영하는 법을 가르쳤다. 통통한 호빵 같은 얼굴을 물속에 푹 담그면 마른 낙엽 같은 물고기 몇 마리가 볼을 간질였다. 그럴 때마다 까르륵 웃었다. 우리는 때로는 나무 그늘에 있는 널찍한 돌 위에 누웠다. 콩콩 뛰는 풀벌레와 또랑또랑 떨어지는 산딸기가 말을 걸어왔다. 저 멀리서 다슬기가 신기한 듯 살금살금 다가왔다. 산과 강, 바람과 작은 생명체는 모두 친구였다. 말을 걸고 놀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해가 뉘엿뉘엿 떨어지고, 언덕 너머에서 구운 옥수수와 고구마 냄새가 흘러들었다. 노을빛 윤슬이 쪽배천을 떠다니던 그때, 하늘을 올려다본 어머니는 내게 물속에서 누가 더 오래 숨을 참는지 내기를 걸어왔다. 하나…. 둘…. 셋…. 나는 입을 앙 다물었다. 스물다섯…. 스물여섯…. 이쯤이었을까. 어머니가 나를 번쩍 들어 올리고는 생긋 웃었다. 그리곤 따라 해보라는 듯 고개를 천장을 향해 비스듬히 올렸다. 그때, 한 점 구름에서 막 벗어난 채 수줍게 고개 내민 달을 마주했다. 생애 처음 보는 완전한 보름달이었다. 토끼가 곧 절구통을 매고 나올 것 같았다. 머리카락에서 흘러내린 물방울이 입술 아래로 떨어졌다. 보름달의 한 귀퉁이를 찔끔 베어먹은 느낌이었다.


시골 생활을 하는 어린이는 자연 속 갖은 마술(魔術)적 체험을 할 수 있는 특권을 갖고 있다.


가령 긴 억새가 이슬을 떨어뜨리면서 인사하고, 청개구리가 물웅덩이 앞에서 부산스레 뛰며 조심하라고 일러주는 등의 경험이다. 복슬복슬한 호박벌도 나에게만큼은 침을 감춘 채 얌전히 맴돌았다. 은은한 달빛은 내가 다음에 내디딜 걸음에 맞춰 길을 비춰줬다.


그쯤 나는 온 세상을 향해 "엄마, 이게 뭐야?"라는 말을 달고 다닌 사고뭉치였다. 엄지는 그런 나를 졸졸 따라오는 갈색 털의 시골 개였다. 쫑긋한 귀, 초코볼 같은 눈, 짧은 주둥이를 갖고 있던 엄지는 포실한 내 양 볼을 핥는 것을 좋아했다. 짓궂은 내가 흰색 아카시아꽃을 갖고 코를 간질여도 드릉드릉 씰룩이기만 할 뿐이었다. 노을을 본답시고 흔한 언덕 중 한 군데에 자리 잡아 앉아 있을 때면, 엄지는 어떻게 알았는지 찾아와 내 무릎 위에 주둥이를 턱 하니 올리고는 했다.


어느 날은 매일 놀던 그 동네가 지루했다. 이른 아침, 장난감 칼을 하나 들고서 엄마 몰래 옆 동네로 모험(?) 길에 올랐다. 엄마 품에 안겨 탄 자전거로는 깜빡 졸면 갔었는데, 혼자서는 기를 쓰고 가도 도저히 도착할 기미가 안 보였다.


얼마나 걸었을까. 큰 길가에는 가끔 자동차만 요란하게 지나갈 뿐 사람 한 명 없었다. 앞도, 뒤도 걸어야 할 도로만 있을 뿐이었다. 집에 돌아가는 길도 잊어버린 나는 왈칵 겁이 났다. 그 자리에 주저앉고서는 앙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쭈그린 채 청승맞게 눈물을 뚝뚝 흘릴 무렵, 무언가가 내 볼을 찹찹 핥아댔다. 엄지였다. 불쑥 주둥이를 들이대고, 내 무릎 위로 폴짝 들어왔다. 처음부터 몰래 따라왔던 건지, 내 냄새를 따라 쫓아왔던 건지, 지금도 엄지가 나를 어떻게 찾았는지는 알 수 없다. 엄지가 앞장섰고, 나는 훌쩍이며 늠름한 그 갈색 꼬리를 따라갔다. 엄지는 네 발로 걷는 동안 종종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는 나를 정확히 집 대문 앞까지 데려다줬다. 엄마는 늦은 점심밥을 내어줬다.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를 뻔했는지를 전혀 모르는 듯했다. 나와 엄지, 둘만의 비밀이었다.


그런 엄지는 갑작스레 병에 걸렸다.


흔한 시골 개의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았다. 처음에는 걸음걸이가 조금씩 느려졌다. 차츰 털이 빠지더니, 숨을 다할 즈음에는 웅크린 채 자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때는 지금과 달리 동물병원이 귀했다. 특히, 시골은 더욱 그랬다. 엄마와 나는 엄지를 보내주기로 했다. 그러는 동안, 엄마는 엄지에게 평소 좋아하던 북엇국과 단호박 죽을 내어줬다. 언젠가부터 엄지가 보이지 않았다. "원래 동물은, 정을 나눈 사람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곤 해." 엄마가 말했다.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정말로 그렇다면 엄지를 찾아 나설 수도 없는 일이었다. 엄지가 죽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몇 개월 뒤였다. 해가 중천에 떴을 무렵, 엄마와 나는 쪽배천을 찾아 물장구를 치는 중이었다. 나는 그때 분명 억새 사이로 엄지를 봤다. 털도 풍성했고, 기운도 좋아 보였다. 귀를 쫑긋 세운 채 이내 품 안으로 올 기세였다. 하지만 그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내가 다가가려던 사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엄마, 저기 엄지가 있었어. 엄지." 물에 젖은 엄마의 치마를 붙잡고 말했다. "응. 엄마도 저기서 엄지를 봤어." 엄마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나는 엄마가 다슬기를 따고 있을 때, 엄지가 보였던 곳으로 갔다.


당연히 엄지는 흔적조차 없었다. 나무 한 그루와 억새 풀이 전부였다. 왠지 모르게 그 나무를 안고 싶었다. 짧은 내 팔로는 쭉 뻗어도 몽땅 품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크게 숨을 쉬고 끌어안았다. 얼굴을 나무껍질에 묻고 눈을 꼭 감았다. 어디선가 엄지가 "왕!"하고 짖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공기가 갑자기 따뜻했다. 나무가 내게 체온을 전해주는 것 같았다. 꺽다리 식물이 내게 주는 위로였다.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그날 이후 엄지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엄지.jpg 피에르 보나르, 작은 세탁소 여주인

점박이 강아지는 기다란 장우산, 자기 덩치만 한 세탁 바구니를 들고 오는 이 소녀를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익숙한 냄새를 찾아 성큼 발을 뗀 결과, 터덜터덜 돌아오는 소녀를 만나게 된 것이지요. 말을 할 수 있다면, '이제 그만하고, 집에 가서 어서 쉬자'고 다독였을 듯합니다. 강아지를 보고 코끝이 시렸을 소녀의 표정이 설핏 그려집니다. 풍부한 조화와 묘사로 이름을 날린 피에르 보나르의 이 그림을 보면, 생의 이치를 너무 일찍 알게 된 소녀와 특별한 것 없는 강아지의 이러한 이야기가 상상됩니다.


동물과 함께 유년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알지요. 어린아이와 강아지는, 그 누구보다도 잘 통하는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요.

keyword
이전 08화"또 왔냐"…남산공원이 내 멱살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