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둘이 친하다고?" "네…니요!"

<폴 고갱, 타히티의 여인들>

by 이원율

"너희 둘이 친하다고?"


"진짜 이런 조합은 처음 본다."


나와 그 친구가 교무실 앞 복도에 엎드려 벌을 받고 있으면 교사들은 꼭 이런 말을 했다. 고등학교 2학년생 당시 우리 둘은 야간 자율학습(야자) 상습 탈주범이었다. 나는 불편한 자세로 낑낑대면서도 이 이야기만 들으면 "우리 안 친한데요"라고 질색했다. 그 친구는 이 말에 '푸흡'하고 웃었다. 그러면 어디서 말대꾸를 하고, 어디서 웃느냐며 체벌 시간만 늘어나곤 했다. "선생들, 너무 같은 말만 하니 지겨워 죽겠네." 그 친구는 입이 찢어질듯 하품했다. "아, 진짜 싫어. 좀 조용히 해." 내가 받아쳤다. 늘 이런 식이었다. 사실, 우리 둘은 꽤 친한 사이였다.


교사들은 우리 둘을 놓고 위화감을 느낄만 했다.


나와 그 친구는 모든 면에서 반대였다. 키와 외모, 덩치는 물론 성적과 수업 태도까지 영 같은 게 없었다.


스스로 직접 말하기는 그렇지만 나는 모범생에 가까웠다. 얌전했다. 그런 와중에도 이것저것 해야 할 일은 곧 잘 따라했다. 당연히 숙제도, 준비물도 잘 챙겼다. 문제는 그 친구였다. 고집스레 소위 역행(逆行)했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는 게, 그 친구는 어릴 때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잘 생겼다"는 말을 귀에 딱지가 내려앉도록 들어왔다. 과장이 아니다. 나와 같이 길을 걷다가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와, 쟤 참 키 크고 잘 생겼네"란 말을 예사로 할 정도였다.


그래서일까, 학교 안보다는 학교 밖 세상에 관심이 많았다. 내가 수학 문제집을 풀 때 내 옆에 늘어져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뛰고 있는 축구 동영상을 봤다. 어떤 날엔 "어젯밤에 너무 달렸다"는 말을 하곤 코까지 골며 졸았다. 도대체 뭘 그렇게 달렸다는 것인지. 내가 한심스럽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면 눈을 찡긋했다. "머리카락이 너무 길다"는 지적을 받고는 바로 학교에서 뛰쳐나가 새하얗게 삭발을 하고 돌아온 일 또한 당시 유명한 일이었다.


"넌 왜 맨날 열심히 하는 애 옆에 찰싹 붙어있어. 공부 방해하지 말고 좀 떨어져라."


이런 아이였다보니 우리 반에 들어오는 교사들은 우리가 붙어있는 것을 보면 이런 뼈 있는 농담을 했다. 그러면 그 친구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쌤, 진짜 그게 아니고요. 얘가 절 더 괴롭혀요."


이렇게 물과 기름같던 우린 어쩌다 이렇게 가까워졌을까.


그 친구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 해 3월 모의고사 성적표를 받은 날, 나는 그저그런 점수를 받아들곤 짐을 쌌다. 그 친구가 내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야, 영어 점수 어떻게 하면 잘 받을 수 있어." 뜬금없었다. 하지만 표정이 심각했다. 성적표를 내보였다. 외국어 영역이 9등급이었다. 어머나, 세상에…. 기습공격에 입을 틀어막았다. 심지어 석차는 전국 꼴등에 가까웠다. "문제를 찍지 말고 풀어." 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아니…. 풀어서…. 풀어서 나온 점수여서 그래." 그 친구는 머리를 긁적였다. 내 마음은 놀람 반, '그래서 뭐 어쩌라고'란 마음 반이었다. 지금 보면 시건방진 태도였다. 그렇게 뒤돌아서려고 할 때, 그 친구의 마지막 말을 듣고는 차마 그곳에서 나갈 수 없었다. "야, 좀 도와줘. 하라는 것 다 해볼게. 제발 좀."


우리의 기묘한 인연은 이렇게 이뤄졌다.


나는 가장 먼저 단어장을 만들라고 했다. 오답노트도 성실히 채우라고 했다. 야자 시간마다 단어 시험을 쳤다. 빨간 펜을 들고 오답노트도 확인했다.


"솔직히 초등학생이 너보다 영어 단어를 더 많이 알아."


나는 이런 폭언(?)에 괴로워하면서도 차곡차곡 어떻게든 해내려고 하는 그 친구에게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었다. "전날 밤 '달리지' 않고 영어 단어를 외웠다"는 그 말에 티는 안 냈지만 감동을 느낄 정도였다. 그 친구도 내게 공부 외에 '학교 밖 세계'에서 겪는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들려줄 만큼 친밀함을 표했다. "'썸'타는 누나들과 영화를 볼 때, 은근히 어깨에 팔을 두르면 심장 뛰는 소리가 콩콩 들려. 나는 영화보다 그 소리를 듣는 게 더 좋아."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뭐지, 이 변태는….' 혹은 '그 시간에 단어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그 친구의 이야기는 대개 흥미진진했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자연스레 모든 수업 시간에 짝이 됐다.


사실, 우리가 야자 상습 탈주범이 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 친구가 억울할만 했다. 내가 탈주를 주도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EBS 교육방송은 홈페이지에서 논술 무료 첨삭 서비스를 운영했다. 문제는 오후 8시부터 논술 과제를 받았고, '선착순'으로 접수를 마감했다는 점이었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홈스쿨링' 학생들만 겨냥한 것인가…. 야자가 한창인 시간이었다. 그때는 학교에서 노트북과 스마트폰 등을 대놓고 꺼내는 일은 불가능한 시기였다.


"학교에서 쉽게 담 넘어갈만한 곳 없어?"


결국 그쯤에 맞춰 PC방에 가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고 판단해, 그런 부분은 바짝 꿰고 있는 그 친구에게 이렇게 물어본 게 시작이었다. 웬 일…? 내 일탈을 부추기고 싶었던 것일까. 그 친구는 "형아만 믿어라"고 말하고는 그날 바로 나를 학교 외진 곳의 낮은 담으로 안내했다. 근데, 나는 그렇다고 쳐도 너는 왜 담을 넘는건데…. 우린 매주 수요일에 나란히 담을 넘었다. 나란히 PC방에 갔다. 나는 논술 첨삭 수업을 받고, 그 친구는 (내가 알려준)인터넷 강의를 봤다. 소위 모범생과 날라리가 나란히 야자를 빼먹고는 PC방에 가서 한다는 일이 그런 것이었다. 참 웃기는 그림이었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다. 둘 다 매번 같은 시간대에 사라지니 걸리지 않을 리가 없었다.


"쌤, 저희 PC방 간 건 맞는데…. 아니, 저희 진짜 공부하러 갔거든요." 헐레벌떡 교무실로 뛰어간 날,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교사들은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한다며 엉덩이를 더욱 뜨겁게 달궈줬다. 내가 그런 말을 하니 잠깐 멈칫하기는 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여튼, 찜질을 받고도 다음 주가 되면 우리는 사이좋게 또 사라졌다.


그렇게 몇개월간 일탈이 반복됐다.


"얘들이 뭔가 이상한 짓을 계속 하기는 하는데, 성적은 또 괜찮게 나오네요. 특히 얘 봐요. 얘가 원래 영어를 좀 했었나요?" 교사들은 우리 둘의 움직임을 보고 이렇게 진지한 논의도 했었다고 한다. 그 친구의 공이 컸다. 사고도 치지 않고, 무엇보다 성적이 계속 올라줬던 덕이었다.


그 친구는 그 해 하반기 기말고사에서 영어 과목으로 80점대를 기록했다. "별거 없네"라며 단어를 보다 지겨울 때 그냥 달달 외웠다는 도덕 과목도 평소 40~50점에서 80점대로 껑충 뛰었다. 이 정도면 대구 대봉동의 기적이었다.


주어, 동사도 모르던 그 친구는 수능 시험에선 외국어(영어) 과목에 4등급을 받았다. 특히 독해 부분에선 만점에 가까운 점수였다. 할만큼 한 셈이다.


"야. 근데, 너 수학 점수도 처참한데. 왜 그렇게 영어 공부만 하려고 해?"


언젠가 그 친구에게 물은 적이 있다.


"경찰하려면 영어가 필수라고 해서."


전자레인지에서 갓 데워져 나온 따끈한 피자빵을 한 입 크게 욱여넣은 그 친구가 웅얼거리면서 말했다.


"다른 과목도 필요할 건데?"


"야. 다른 과목은 그래도 우리나라 말이니까 괜찮잖아. 그런 건 마음만 먹으면 금방 되지 않을까?"


"아…. 그래. 우리나라 말이긴 한데 말이야…."


사회생활에 한창일 때, 그 친구에게 청첩장을 받았었다. 부모님 다음으로 가장 먼저 전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결국 꿈에 그리던 경찰은 되지 못했다. 하지만, 한 무역회사에서 나름대로 자리를 잡아 행복을 다져가고 있다. 입사할 때 높은 토익 점수가 도움이 됐다고 한다. 청첩장 속 사진에선 잘 생긴 그 친구가 담을 폴짝 넘던 그때 모습처럼 씩 웃고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그 미소가 나오는데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기를. 결혼도, 취업도, 앞으로의 생도 늘 응원한다. 내 친구야.



230_81966_132216.jpg 폴 고갱, 타히티의 여인들

왼편에 있는 여성은 흰색이 티아레 꽃무늬가 수놓인 '파레오'라는 전통 의상을 입고 있습니다. 반면, 오른편에 있는 여성은 좀 더 근대적인 분홍색 원피스 차림입니다. 서로 다르지요. 그래도, 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두 사람은 실은 꽤 친한 사이가 틀림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서로를 향해 기울어진 자세에서 알 수 있지요. 무엇보다 이 그림이 나왔다는 건, 폴 고갱이 붓질을 하는 동안의 긴 시간을 거부감 없이 바짝 붙어 보냈다는 뜻일테니까요.


또, 고갱이 좀 까칠한 사람인가요. 분명 자세니, 표정이니 시비를 툭툭 걸었을텐데 “아, 나 안 해! 둘이서 재밌게 해보셔”라고 하지 않고, 한 마음 한 뜻으로 잘 이겨냈잖아요.


의외의 조합. 서로에게 틱틱대면서도 떨어지지 않는 사이. 시간이 지날수록 ‘둘도 생각보다 잘 어울리네?’라며 인정할 수밖에 없는 관계. 돌이켜보면 우리 둘도 이런 느낌의 '찐친'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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