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코 고야, 아들을 잡아먹는 아버지
“그러고 보니, 어제 좋지 않은 꿈을 또 꿨어요.”
마주 앉은 후배가 김이 올라오는 순대국밥을 떠먹다 말고 갑자기 생각난 양 이야기를 했다. 우리의 이날 점심시간 대화 주제는 직업병이었다. 꿈 속에서도 식은땀을 흘리며 기삿거리를 찾아다닌다는 실없는 소리를 할 때였다.
후배는 그 꿈을 말로 설명하면 감정 소모가 심할 것 같다고 했다. “잠깐 읽어볼래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 아이는 신문 한 면을 거뜬히 채울 수 있을 듯한 분량의 글을 보여줬다. 후배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잊을만 하면 친한 사람들이 떠나가는 꿈을 꾼다고 했다. 그 꿈을 통해 지금 내가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을 정도라는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분명 꿈이 분명한데, 그 속에선 떠나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차갑고 매몰차 상처를 받는다고 했다. "그런 꿈을 한 번 꾸면, 그 날에는 일어나도 아무 것도 못해요. 하루종일 울 때도 있었어요." 후배는 함께 취재원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가도 딱한 사연을 들으면 눈시울이 붉어지는 기자였다. 그런 애가 냉정한 꿈 속 상대에게 고개를 떨구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만큼, 그 아이에게는 더욱 치명적일 터였다.
그래봤자 환상인데….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나 또한 그런 꿈이 사람의 기운을 얼마나 뺄 수 있는지를 안다. 나쁜 꿈이라는 건 실제보다 더 생생히 나쁜 상황에 빠져들게 만들기에 나쁜 꿈인 것이다.
지금보다 단단하지 못했을 때, 나도 한 악몽에 오랫동안 시달린 적이 있다. 나는 그 꿈을 종종 ‘개미 굴’이라고 표현했다.
꿈 속 나는 힘껏 하늘을 향해 손을 뻗어봤다. 굴 안은 어둠 뿐이었다. 천장은 뻥 뚫려 있었지만, 벽을 타고 올라가기에는 너무 가팔랐다. 눈이 시도 때도 없이 내렸다. 한기로 채워지는 밤이 되면 손발을 자르고 싶을 만큼 추웠다. "넌 2년을 버텨야 해. 여길 빠져 나가봤자 또 다른 개미 굴이거든. 아 맞다, 다른 곳이 좀 더 넓고 따뜻할 수는 있겠구나." 가끔 저 위에서 누군가가 이렇게 외쳤다. 아니, 사실은 내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환청일지도 몰랐다.
그런 와중에, 이 개미 굴에서 또 다른 아이를 만났다. 나와 마찬가지로, 그간 살기 위해 허우적거렸는지 만신창이였다. 서울 말을 쓰는 몸집 작은 아이였다. 몸은 약했지만, 예의가 바르고 두뇌 회전도 빠른 친구였다. 우리는 그 개미 굴에서 살기로 단념하고, 살아남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가끔은 뻥 뚫린 하늘을 보며 옛 이야기를 했다. 탈출에 서서히 단념할 때였다.
갑자기 천장에서 밧줄 대여섯 개가 천천히 내려오는 게 보였다. 느리지만 착실히 내려오던 중이었다. "시간을 다 채우지 않는 한 이 굴 속에서 완전히 빠져나갈 수는 없어. 하지만, 다른 굴이 여기보단 넓고 따뜻하다니까…." 갑자기 희망이 생겼다. 추위로 엄지 발가락의 발톱이 쏙 빠졌다. 꿈 속이지만 이 밧줄이 탈출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적어도 이런 무자비한 곳에서는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아 안도했다.
"이제, 이곳에서 벗어나자."
나와 그 아이는 손에 닿을 만큼 내려온 밧줄들 중 하나씩을 골라 꽉 쥐었다. 힘겹게 매달렸다. 한 뼘, 한 뼘 올라갈 때마다 생소한 공기가 몸을 휘감았다.
이제 한 뼘만 더 올라가면…. 마지막으로 힘을 주는 순간, 내가 쥔 밧줄이 뚝 끊어졌다. 그 아이는 이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고지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사라졌다. 그 아이는 나도 당연히 뒤따라왔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그 이후로 그 아이를 본 적은 없지만 보다 나은, 보다 따뜻한 굴로 빨려들어간 것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아직 밧줄은 많았다. 다시 기운을 차려 또 다른 밧줄에 매달렸다.
고지를 찍을 때쯤 또 다시 툭 끊어졌다. 세 번째도, 네 번째도, 마지막 밧줄도 모두 손만 뻗으면 되는 지점에서 모두 끊어졌다. 이성을 잃고 소리를 내질렀다. 미친 듯이 벽을 박박 긁었다. 밧줄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차에 치인 듯 잠에서 덜컥 깼다. 그날 새벽이 되면 제발 이 꿈만은 드리워지지 않기를 간절히, 아주 간절히 바랐다. 제물을 바쳐야 한다면 내 가방 속 무엇이든 꺼내고 싶었다.
‘개미 굴’ 꿈은 내 초기 군생활을 요약해 그려주는 꿈이었다.
군복 차림의 나는 그 개미 굴 같던 강원도 양구 최북단의 산꼭대기에서 서럽게 울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세 번, 네 번…. 다른 동기들이 모두 ‘탈출’하는 가운데, 나홀로 간절한 희망이었던 밧줄을 모두 놓쳤다. 그럴 때마다 용암 같은 눈물을 내뱉었다.
카투사, 운전병, 정보병…. 당시 나는 소위 더 나은 곳으로 '이직 합격' 통보를 받았는데, 항상 막판쯤 알 수 없는 이유로 내 자리만 없어지는 일을 겪는 중이었다. 결국 내게 주어진 건 모두가 피하려고 하는 6.86kg의 K3 경기관총이었다. 기진맥진했던 나는 고작 53~54kg을 왔다갔다 하던 중이었다. "아빠가 대단하지 못한 사람이라 미안하다"는 편지에 공중 전화기를 붙잡고 "아빠가 왜 미안해하는데"라면서도 원망의 표적을 찾지 못한 서러움을 감추지 못해 함께 꺽꺽 울 때였다.
한 사람을 완전히 나락으로 몰고 싶다면 처음부터 절망을 심어주지 마라.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희망을 심어주고, 낚아채기 직전에 눈 앞에서 짓밟아버려라. 《군주론》의 구절이다. 그들은 차라리 내게 밧줄을 내려보내지 말았어야 했다.
그 시기에 평생 흘릴 눈물을 다 흘렸다. 그리고, 지금도 종종 개미 굴에서 빠진 내게 썩은 밧줄 대여섯 개가 내려오는 꿈을 꾼다. 그 후배가 꿈을 통해 지금 자신이 아끼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된다면, 나는 꿈을 통해 내가 가장 힘들었던 때가 언제였는지를 강제로 돼새기게 된다.
그 꿈을 꾸면 십중팔구 혼이 쏙 빠진다.
미스트를 헤어 스프레이인 줄 알고 머리에 뿌리거나, 가방을 활짝 열고 지하철에 오르는 등 꼭 이상한 짓(?)을 한다.
종종 힘든 시절을 환기하면 지금에 더 감사할 수 있으니, 나름 의미가 있지 않은가. 또 누군가는 이렇게 미화할 수 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굳이 예고 없이 그 시절에 다시 치여 아파하고 싶지 않다. 아무리 지난 일이라고 한들, 그 기억에 젖어 가슴이 꽉 막힌 상태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일은 유쾌하지 않다.
그 후배의 마음도 같지 않을까.
"스멀스멀 다가오는 꿈을 발로 걷어찰 수 있으면 이미 수십번은 걷어찼겠지요. 잠들기 직전에요. 또 그 느낌이 드는 거 있죠? 그래서 눈 딱 감고 걷어차보기도 했어요. 하지만 꿈이 아니라 침대 끝 모서리가 걷어차였어요. 그 덕에 발가락에 실금이 가 병원 신세를 져야 했어요."
이렇게 입을 뗀 그 아이는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내뱉고는 다시 생각을 풀어냈다.
"성격 버린 소꿉친구처럼, 싫어도 안고 가야 하는 그런 꿈이 있겠죠? 요즘은, 언젠가는 걔가 먼저 지쳐 나가떨어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그 꿈을 애써 걷어차려고 하거나 괴로워하지 않으려고 해요."
이는 자신에게 하는 말이면서, 나에게 하는 말 같기도 했다. 이런 때면 사람마다 저마다의 우주가 있다는 말을 실감하곤 한다. "그래, 그게 맞는 말이네." 나는 시선을 바닥에 내려놓은 후배를 봤다. 아주 잠깐 사이, 아픔이 빚어낸 수십 개의 나이테를 스쳐 본 듯했다.
시간과 농경의 신 사투르누스가 자신의 자식을 모조리 잡아먹고 있는 모습입니다. 시간을 관장하는 신의 형벌에는, 자기 피가 섞인 아이마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무리 있는 힘을 다해 발버둥을 친다고 해도요.
“지금은 내가 다 끊어먹을 수밖에 없어.”
개미 굴 같던 그 곳에서 하나, 둘 밧줄이 끊어지는 것을 보고, 불행의 부스러기조차 걷어찰 힘이 없어졌을 때는 이 그림을 떠올렸지요. 정신줄을 놓지 않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습니다. 전지전능한 신이 내 희망을 하나씩 씹어먹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벌어지고 있는 모든 불행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신의 뜻으로 합리화한 것입니다. 그렇게라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머릿속 나사 두 어개가 픽 하고는 떨어질 것 같았거든요.
누군가는 이를 '정신승리'라고 조롱하지만, 정말 절박했던 사람들은 알 것입니다.
정신승리가 아니라, 미치지 않기 위한 절박한 생존 본능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