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터너, 비-증기-속도-그레이트 웨스턴 철도
덜커덩….
지금은 무궁화호 안.
이리저리 흔들리면서도 차근차근 제 갈 길을 가는 나의 무궁화호를 위해 건배라도 하고 싶었다. 이른 아침 동대구역에서 출발한 무궁화호가 멈췄다가 나서기를 반복했다. 잠깐 내달린다 싶더니 얼마 못 가 힘이 빠진 마냥 풀썩 주저앉고 다시 기운을 내 바퀴를 굴렸다. 이제 대전이다. 서울역까지는 한참이다. 어릴 적 부모님의 라디오를 통해 '서울·대전·대구·부산 찍고'란 노래를 들을 때는 서울·대전이 대구·부산 정도의 한 뼘 거리인 줄 알았다. 당연히도 그게 아니었다. 상관없었다. 되레 이 시간이 더 길게 이어지기를 바랐다. 진심이었다.
취업 준비생이 되니 서울에 가야 할 일이 많아졌다. 최종 면접에선 결국 몇 명 추리지도 않는 그 기업들은 서류 합격만은 턱턱 시켜줬다. 덕분에 팔자에도 없던 서울 땅을 매주 밟아야 했다. 그런가 하면 그렇게 자주 가야 했다는 건 그만큼 면접에서 '폭풍 탈락'을 반복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생에서 그리 유쾌한 시기는 아니었다. "철도에 돈 깔아주러 갑니다." 나는 엄마에게 농담 삼아 이런 말을 하며 집 밖으로 나서고는 했다. 그래도 딱 하나, 기차를 실컷 탈 수 있다는 것 자체는 즐거웠다. 기차는 내게 영감과 휴식을 전해주는 시(詩)였다. 서울로 가는 주말에는 새벽바람을 맞고 나와선 가장 느린 무궁화호를 잡아탔다. 그땐 KTX를 펑펑 타고 다닐만한 돈도 없긴 했다. 하지만 그보다도 내겐 엉금엉금 가는 그 기차가 품는 감성이 특별했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겨울 새벽 첫 버스에서 졸고 있는 사람들 틈 앉아있는 것 같다고 할까. 먼지 향이 폴폴 나는 두꺼운 책 한 권을 천천히 공들여 읽는 느낌이라고 할까. 많은 사람은 늘어지는 기차 안을 견딜 수 없다고 하지만 내게 기차는 만족스러운 나무 위 아지트 같은 존재였다. 구겨진 채 앉아 잠을 늘어지게 잤다. 물론 잠만 잔 건 아니었다. 책도 많이 읽고 음악도 많이 듣곤 했다. 시험공부도 많이 했다.
그때는 기차를 3시간 반 타고 서울 땅을 밟았다. 5~10분 정도의 면접을 마치고 근처 해장국 집에서 밥을 먹었다. 그리곤 다시 기차를 3시간 반을 타고 대구로 돌아갔다. 면접의 순간들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기차 안 7시간 동안은 행복했다.
늘 그랬다.
그런 데서 귀가 빠지지도 않았는데 오랜 시간 기차를 타는 것을 좋아했다. 어렸을 때부터 장난감 자동차는 휙 던지고 장난감 기차만 조물딱 거렸을 정도니, 이 정도면 운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할 정도였다. 좌석에 몸을 싣고 있으면 그대로 긴장을 풀어도 된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나는 붕 뜬 순간을 견디지 못한다. 잠깐 틈이 비면 그사이에 꼭 무언가를 해야 마음이 놓였다. 시간을 허비하면 안 된다는 일종의 강박 증상이다. 그런데 이 안에선 바퀴가 알아서 돌아가서인지 이상하게 멍하니 있어도 전혀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고맙게도 기차는 글 쓰는 직업을 갖게 된 내게 일을 건너뛸 수 있는 핑곗거리도 돼줬다. "그때 제가 기차를 타고 있어서 그 일을 못 했어요." 이 말은 회사 상사 혹은 동료에게 충분히 납득되는 변명이었다. 웬만큼의 공감 능력 결여자가 아닌 이상 애초 기차에서 평소만큼의 퍼포먼스를 못 냈다고 해 혼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물론 그런 사람이 없지는 않았다). "어휴, 좀 쉬어." 내지 "피곤했겠다." 대체로 이 정도의 반응이었다.
'사실은 이미 기차에서 다 쉬었습니다. 저는 기차에서 더 잘 쉽니다.'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고 마음속에서 읊조리는 말이었다.
아예 대학생 때 그러니까 취업 준비생조차 되지 못한 그때는 기차를 마음껏 탈 수 있다는 말에 끌려 '내일로' 표를 샀다.
만 25세 이하만 6만 원 정도 돈을 내면 1주일간 KTX를 뺀 모든 기차를 자유롭게 탈 수 있는 표였다. 나는 그때 20살이었다. 기차에 몸을 기대 전국 일주를 했다. 돈이 많지 않은 나이였다. 당시에는 값싼 게스트하우스도 흔치 않았다. 마땅한 찜질방을 찾지 못했을 땐 주저 없이 야간 기차를 잡아탔다. 지금도 그대로일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기에는 어느 역에서든 여수행 야간 기차가 많았다. 좌석은 늘 넉넉했다. 객실에서 책을 읽고 여행기를 썼다. 알랭 드 보통의 책 《여행의 기술》, 벤 폴즈의 음악 《더 럭키 리스트(The Luckiest)》는 이 순간을 맞이하는 나를 위해 만든 작품처럼 느껴졌다. 느릿느릿 움직이는 창문 밖에서 소금처럼 흩뿌려진 별을 봤다. 그리고는 여수에 도착할 때까지 얌전히 쿨쿨 잤다. 내려서는 역에서 잠깐 또 졸았고 해가 뜨기 전 운행하는 다른 기차를 타고 다시 자면서 이동했다.
"예천 회룡포가 절경이었잖아. 대천 해수욕장은 또 어떻고. 남원에서 자전거 타고 한 바퀴 돌 때도 즐거웠는데. 그렇지?"
그때 함께 간 친구는 지금도 다채로운 순간을 기억한다. 그 시절 전국 각 도에 있는 많은 도시를 돌았다. 그런데도 내게 있어 여행이 끝난 후 가장 기억나는 것은 기차에서 누린 달콤한 새우잠이었다. 사진도 수백 장을 찍었는데, 대부분은 기차역 내지 기차 안에서 본 바깥 풍경이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내 책상 서랍에는 러시아 시베리아 횡단 기차를 타는 계획이 잠들어 있다.
배낭을 둘러메고 방콕 카오산 로드도 가고 싶고, 튼튼한 운동화와 함께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도 돌고 싶지만, 몸을 자유롭게 놀릴 수 있을 때 행하고 싶은 영원한 1순위는 찬 바람을 뚫고 나아가는 기차 여행이다. 일주일을 기차에 틀어박혀 9,900㎞를 달릴 수 있다니…. 소위 '기차 끝판왕'이다. 상상만으로도 설레는 일이다. 덜컹대는 창문에 몸을 기대고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 따위를 끊김 없이 읽을 수 있다. 낡은 열차 특유의 시큼한 녹(綠) 향에 갇혀 차를 홀짝이고 은빛 자작나무 숲을 스치며 비틀스의 《노르웨이의 숲(Norwegian Wood)》을 들을 시간도 있을 것이다. 이동수단에서 허용되는 모든 일을 잔뜩 할 수 있는 꿈의 순간이 이어지는 셈이다. 비로소 ‘성공한 덕후’가 되는 것이다.
종종 아내에게 잔뜩 들뜬 목소리로 이런 말을 하곤 한다. 그런데 표정이 그리 좋지만은 않다. 기차에서 며칠 동안을 어떻게 먹고 살 수 있느냐며 고개를 갸웃한다. 역시 ‘성덕’의 길은 멀고도 험한 법이리라.
기차가 비바람을 뚫고 우직하게 달립니다.
세찬 물방울이 유리 창문을 때리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젖은 바퀴와 둔탁한 레일이 맞닿으면서 생겨나는 진동이 다가오는 듯도 합니다. 구름을 보니 성질이 난 하늘은 당분간은 화를 풀어줄 리가 없어 보입니다.
이런 기차 안에 몸을 실었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저라면 물 폭탄을 막는 한편 오롯이 정해진 길을 향해 나아가는 기차를 보고 묘한 쾌감과 안정감을 느꼈을 것 같네요. 다른 어느 곳도 아닌 그런 기차 안이라서 다행이란 생각도 했을 것입니다.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튼 채 책을 읽었겠지요.
그래서인지 윌리엄 터너 특유의 거친 붓 터치가 가득한 이 그림이 그저 매섭게만 보이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