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브 카유보트, 낮잠
땅만 보고 걸었다. 빨리 꼭대기로 올라가야 했다. 내게 산은 그런 존재였다. 힘들수록 더 달려들어 극복해야 하는 상대였다. 고통을 빨리 끝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머릿속에는 내가 도착해야 할 목적지밖에 없었다. 그렇게 정상을 찍고 나면 그제야 뿌듯함에 취하고는 했다. 나는 변태나 그런 건 진짜 아니지만, 어쨌든 산을 탈 때는 그랬다.
어느 겨울, 대학생이었던 우리는 눈 쌓인 한라산을 만끽하기 위해 제주도로 갔다. 이른 아침부터 출발해서 하루 만에 백록담을 찍고 오는 코스였다. 고글에 아이젠까지 챙겼으니 제법 본격적이었다. 총총 걷다 보니 그 버릇이 또 도졌다. 나도 모르는 새, 숨이 거칠어질수록 내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자연스레 대열에서 떨어졌다. 몇 시간 동안, 누가 시키지도 않은 외로운 싸움을 했다. 정신없이 정상에 올랐다. 친구들은 한참 후에 볼 수 있었다. 아이참, 어차피 도착해야 할 곳이 있는 만큼, 중간중간 샛길로 빠지지 않고 빨리 오는 게 속이 후련하지 않을까. 지금보다 더 어렸던 나는 그런 생각밖에 하지 못했다.
산을 탈 때만 어련히 그런 행태가 뿜어져 나왔을까.
그저 길 위에 있을 때도 그랬다. 걸어서 10분 거리라고 하면 늘 그보다 일찍 도착했다. 주위를 보지 않고, 한 눈도 팔지 않은 채 가야 할 곳만을 봤기 때문이다. 마라톤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걷고 뛰는 일을 좋아하는 나는 적지 않은 대회에 참석했다. 강원 춘천, 양구에도 꾸역꾸역 찾아갔다. 내 관심사는 기록 단축뿐이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게 참 신기해서, 저 멀리 보고 달리면 ‘저기를 또 언제 가…’란 생각이 들어 금방 지치고 만다. 나는 산을 오를 때와 마찬가지로, 땅(정확히는 내 신발의 앞 코)만 보고 뛰곤 했다. 내게 멈춤이란 건, 정한 일을 끝까지 매듭지은 후 잠깐 누릴 수 있는 보상 같은 것이었다. 한참을 뛰다 말고 멈추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고작 스무 살을 막 넘겼을 때, 나는 자전거로 제주도를 한 바퀴 크게 둘러봤다. 일정은 3박 4일로 했다. 공원에서 나들이할 때 깔짝댄 경험밖에 없었지만, 일주 시간표는 타이트하게 짜고 싶었다. 내 성격상 어차피 딴짓 없이 자전거만 탈 게 뻔해서였다. 그때 내가 탐이 났던 건 다른 것 아닌 일주 수료증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밥만 먹고 자전거만 탔다. 눈만 뜨면 페달을 밟았으니 당연히 꿈에서도 페달을 밟곤 했다. 마지막 날이 다 돼 갈 무렵, 트럭과 정면으로 콩 박고 앰뷸런스에 실려 갈 때까지 내 발은 페달과 붙어 있었다.
“얘는 지독히도 한결같구나.”
그때 어떻게 일이 잘못돼 하늘나라에 잠깐 ‘터치다운’이라도 했었다면, 그곳에서 나를 지켜보던 조상님 중 한 분은 이렇게 타박했을 것 같다.
그런 나는, 아내와 함께 첫 휴가로 일본 오이타를 다녀온 후 처음 숨 고르기의 즐거움을 알게 됐다. 사진을 좋아하는 그녀는 여행지에 있는 모든 것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봤다. 길가에 있는 꽃의 이름을 알아맞히고는 까르르 웃곤 했다. 이 골목에는 앞서 지난 골목과는 다른 향이 난다면서 한참을 서서 킁킁댔다. 카메라를 목에 건 아내는 어느 곳을 가든 기가 막히게 예쁜 구석들을 찾아냈다. 걸음을 멈춰 필름에 소중히 눌러 담았다. 그 일대가 마음에 들면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 듯 어깨를 살랑였다. 아내에게 10분 거리는 나와는 반대되는 의미에서 10분이 아니었다. 산을 오를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조바심을 낼까 하면 그녀는 내 옷깃을 끌어당겼다. 그 일대에서 자신이 찾은 가장 예쁜 무언가를 가리키곤 했다. 우리는 너럭바위 위에 앉아 계란빵과 따뜻한 보온병을 꺼냈다. 꼭대기를 찍지 않고 이리 본격적으로 샛길에 빠져드는 일은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내는 목동이 밤하늘에 별자리를 그리듯,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남색 밤바다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짙은 하늘색이 쏟아졌다. 한 줄기 산바람이 흙냄새를 머금은 채 맴돌았다. 가만히 앉아 주위를 둘러봤다. 나무와 꽃, 들풀은 저마다의 기분에 맞춰 흔들거렸다. 기적같이 흘러내려 오는 시냇물은 삶의 이치를 알려주는 선생이었다. 엉금엉금 기어가는 풀벌레들조차 정겨웠다. 어느 한쪽에서 모험을 떠난 용사 무리가 약초를 캐고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산꼭대기가 어디 도망가겠는가. 중간에 잠깐 멈춘 덕에 느낄 수 있는 경이로움이었다. 아내가 왜 길을 걷던 중 동백꽃을 지나치지 못하는지, 왜 강아지, 고양이와는 모두 인사를 해야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간 수많은 산을 극복하듯, 고집스레 땅바닥만 보며 올랐다. 시간이 흐른 후, 정작 곱씹고 싶을 때 꺼내 먹을 수 있는 기억들은 많지 않았다. 지금도 산이라고 할 때 퍼뜩 생각나는 때는, 아내와 함께 오르다가 계란빵을 꺼내먹은 그 순간이다. 그랬다. 잠깐 쉰다는 건 누군가에게, 무언가에 지는 일이 아니었다. 무엇이든 쉬지 않고 빨리 끝낸다고 해서 그게 능사인 것 또한 아니었다.
나와 함께 한라산을 탄 친구들은 지금도 한라산을 오르던 중 눈싸움을 하고, 작은 눈사람 가족을 만든 추억과 함께 산다. 조바심만 냈던 나는 겪을 수 없던 장면들이다. 당연히, 서로에게 눈을 잔뜩 먹이고 있는 사진에 저 멀리서 홀린 듯 걷고 있는 내 모습을 붙여넣을 수 없는 것이다. 그 누구도 정상에 올랐을 때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아마 당장 나부터도 그렇듯, 그 기억 자체가 흐릿할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10분 거리라면, 좀 더 시간을 둬 10분보다 더 늦게 도착하려고 한다. 아내와 손을 잡고 걸을 때면 의식을 하지 않고서도 그럴 수 있다.
그 사이 길가에 피어있는 꽃을 본다. 손수건처럼 깔린 단풍잎을 보고, 이를 모으느라 힘쓰는 환경미화원을 본다. 비가 오면 괜히 크게 숨을 들이쉬고 특유의 쌀쌀맞은 공기를 만끽한다. 눈이 내릴 때면 흰 도화지 위를 뛰어노는 아이들과 강아지를 본다. 많은 사람은 참 다양한 이유로 반가운 표정을 짓고 있다. “평화로워. 그렇지?” 아내가 말을 건다. 이 덕분에, 내 삶은 좀 더 여유로워진다.
"에이, 될 대로 되라지 뭐."
이 남성 옆으로 슬쩍 다가가면 이런 혼잣말이 들릴 듯하네요. 누가 뭐라고 할쏘냐. 얼굴마저 푹 가리고는 시원하게 늘어집니다. 어떤 이들에겐 이 사람이 땅바닥에 뻗어있는 자체가 민폐겠지만, 이렇게까지 끝내주게 쉬고 있는 모습을 보면 혀만 끌끌 차고 풀어줄 것(?) 같습니다. 딱 하나는 확실해 보여요. 이 남성은, 그래도 푹 쉬는 법만큼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란 것을요.
“이봐. 너도 가끔은 아무런 죄책감 없이 푹 쉴 수 있어야 해.”
누군가가 지긋이 쳐다보면, 모자를 푹 내리곤 이런 말을 하며 윙크를 찡긋하지 않을까요. 숨 가쁜 게 최고인 줄 알았던 그때, 조금 더 가까이 뒀으면 좋았을 그림이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