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으려고, 또 뜀박질을 한다

조르주 쇠라, 인적 없는 길

by 이원율

앞으로 제대로 살아갈 자신이 없던 그 날, 나는 일단 뛰었다.


일을 끝내고 들어오니 새벽이었다. 여전히 돈은 없고, 날은 추웠다. 800원짜리 컵라면을 후룩후룩 먹었다. 세끼를 연달아 거른 이후 첫 식사였다. 싸구려 롱패딩을 꾸역꾸역 껴입고, 펄펄 끓는 물도 화들짝 놀랄 만큼 차게 식은 방바닥에 따뜻한 밥솥을 끌어안고 누웠다. 우울감이 8t 트럭처럼 달려오는 그런 날이 있다. 당장 지금 내 삶은 욥의 인생이 떠오를 만큼 안쓰러워졌다. 앞으로 살아야 할 수십 년을 떠올렸다. 내 삶은 지금보다 도저히 나아질 것 같지 않았다. 자신을 동정하는 일은 지푸라기 하나 없이 깊고 푸른 바닷속으로 몸을 던지는 일과 같다. "사람은요, 죽을 용기가 있어서 죽는 게 아니에요. 살아갈 용기가 없어서, 그래서 극단적 선택을 하는 거예요." 연탄불을 피워 생을 끊으려고 한 어느 동생의 말이 괜히 생각났다. 무언가의 씐 것처럼, 우울감은 폐부까지 뿌리내렸다. 이대로 우울감에 푹 고아 들고 나면 스스로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신발을 대충 구겨 신고 밖으로 나갔다. 그저 살기 위해서였다. 남산공원의 꼭대기를 향해 다짜고짜 뛰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분명한 건, 거친 숨을 내뱉을 때마다 그런 악(惡)의 기운도 몸 밖으로 흩뿌려졌다는 것이다. 팔·다리가 천근처럼 느껴질 정도로 한창 달렸을 때 비로소 예전의 나를 되찾았다. 내 마음의 밑바닥을 반복해 쓸어내리던 날카로운 추도 사라졌다. 더는 눈물도 나지 않고, 콱 죽어버려야겠다는 생각도 옅어졌다.


정화(淨化)라고 표현해야 할까.


달리기는 삶이 나락으로 가는 것을 막아주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나은 세상을 알려주는 인도자의 역할도 했다. 이는 인생 최고의 러닝을 한 덕에 더욱 진하게 느낄 수 있는 감정이었다. 홀로 일본 오사카 땅을 밟았다. 어느 가을의 이른 새벽, 얇은 빗방울이 숙소의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 한 시간을 뒤척여도 졸음이 찾아오지 않아 그대로 길 위에 섰다. 처음에는 오롯이 동네 한 바퀴만 걸으려고 했다. 장담하건대, 나뿐 아니라, 이 세상의 어떤 사람이 봤다 해도 도저히 달리기를 하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는 풍경이었다. 새벽 공기 특유의 청아함 속 야트막한 빗물 냄새가 배겨있는 일만으로 이미 끝이었다. 주황색 해가 어슴푸레 뜨는 중이었다. 나무 벽에서는 낡은 책에서 맡을 수 있는 먼지 향이 났다. 빗물을 머금은 돌길은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반짝였다. 바람에 흩날리는 민들레와 강아지풀은 있는 동안 순간을 만끽하라고 꾸벅 길을 터주는 듯했다. 담 넘어선 다리 짧은 아기 강아지가, 담 위에선 통통한 치즈 고양이가 꾸벅꾸벅 조는 중이었다. '존재하는 게 허무해 울어도 지나면 그뿐/나대로 가고 멈추고 풀었네….' 때마침 가수 이소라가 시를 쓰듯 노래하는 '트랙 9(Track 9)'이 이어폰을 타고 귓가에 닿았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져 하늘을 날 수 있을 듯했다. 10분, 20분, 30분…. 숨이 턱밑으로 차오를 때까지 전력 질주했다. 비로소 멈췄을 때, 뛰기 전 나와 뛴 후의 나는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성장을 느낀 것이다.


지금도 달리기를 인생 운동이자, 삶에 있어 최고의 항(抗)우울 약으로 취급하고 있다.


낯을 가리고 붙임성도 없는 내게, 입 다물고 끈덕지게 뛰면 되는 달리기는 상당히 잘 맞는 운동이었다. 자립하고서는 본격적으로 마라톤을 했다. 무엇이든 한 분야에 빠지면 진심이 돼버리는 천성 탓인지 10km, 하프를 넘어 어느새 헐떡이면서도 풀코스를 뛸 정도가 됐다. 탁 트인 길, 볼을 간질이는 바람, 말을 해야 한다는 강박 없이 쉴 수 있는 입, 그 대신 자유롭게 파닥일 수 있는 팔과 다리…. 마라톤의 시간은 순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이었다. 지긋한 오르막길, 욱신대는 내리막길을 마주하다 보면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자연스레 비루해 보이는 내 삶을 돌아보고, 그 속에 파묻힌 무언가의 가치를 찾아볼 수 있는 순간들이었다. 마라톤은 내게 세상 모든 일에는 항상 4분의 1지점에 "그만둬"라고 유혹하는 악마가 있다는 점, 이를 넘어서면 완주할 때까지 더 큰 유혹은 많지 않다는 점, 모든 일이 막막하게 느껴질 땐 억지로 그 끝을 보지 말고 내 발끝만 보고 성큼성큼 뛰면 된다는 점 등도 알려줬다.


"지난주에 안 오셨죠? 빼먹지 말고 오세요. 확 티가 나니까."


총총 다가와선 내게 던진 그 말.


나는 명절 보너스로 받은 돈을 갖고 고깃집에 가지 않는 대신, 동네 체육관에서 운영하는 러닝 수업을 등록했다. 20~30대 열대여섯 명 사람들이 마라톤 선수 출신의 트레이너에게 소위 '팔치기' 등 달리는 자세를 익힌 후 함께 5~10km를 뛰는 것으로 이뤄지는 2개월짜리 수업이었다. 우리는 매주 토요일에 모였다. 숫기 없는 나는 그때도 얌전히 시키는 대로 하고, 얌전히 뛰기를 반복했다. 교육 과정이 중간쯤 닿았을 때, 때마침 일이 있어 한 주의 수업을 쉬었다. 그 다음 주에 와서 다시 입 다물고 뛴 후 해산을 할 무렵, 수업을 함께 듣는 몇몇이 정수기 앞에서 헐떡이는 내게 와선 "별말 없이 잘 뛰어서 많이 의지했었어요. 그런 사람이 마음대로 결석하면 어떡해"라며 장난스레 콕 찌르고 인사했다. 얼굴만 마주하고 나란히 뛰기만 했을 뿐, 말 한 마디 한 적 없는 사람들이었다. 당황한 내가 "죄송해요"라고 대답하자 이들은 익살스러운 미소를 띠었다. 옆에 있던 한 사람이 말했다. "다음 달쯤 서울숲에서 같이 뛸래요?"


"달리기 없이 사교 모임 같은 데서 만났으면 어떻게 이야기나 할 수 있었겠어. 너 같은 얌전한 애가 그런 데 올 리도 없겠지만."


그 날 서울숲 러닝 대열 중 선두에서 뛴 턱수염 형이 순대국밥을 먹으며 한 말이었다. 함께 뛴 사람들은 모두 건강하고 열정적이었다. 말이 서툴러 사람들과 친해지기 힘든 내게 달리기가 안겨준 선물 같은 인연들이었다.


"네 뜻을 펼쳐봐." 아내는 지난해 생일에 내게 운동복 상·하의와 바람막이, 신발에서 양말까지 '러닝 풀세트'를 선물했다. 지금은 이를 만지작거리며, 언젠가 제약 없이 두 다리로 나아갈 수 있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떠다니는 공기를 마음껏 끌어안고 집 앞 공원부터 지방 행사, 매년 미국·호주 등에서 열려왔던 국제 대회까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뜀박질을 하는 상상을 한다. 가끔씩 밀려들어오는 우울감은 훅 밀어버리고, 배가 터질 만큼 실컷 뛸 수 있는 그 날이 곧 올 것이라.



조르주 쇠라 인적 없는 길.jpg 조르주 쇠라, 인적 없는 길

이런 곳에 있으면 우울할 틈이 없을 것 같아요.


녹색 향을 뿜어주는 나무, 발등 위로 이슬을 또르르 흘려보내 줄 것 같은 기다란 풀, 돌부리 없이 적당히 푹신한 흙…. 나뭇잎 무리가 그늘을 덕지덕지 만들어줍니다. 고개를 살짝 들어보니, 저 멀리서 푸른 바다가 넘실거립니다. 햇빛이 하나, 둘 모래알처럼 부서져 온 세상에 내려앉았습니다. 조르주 쇠라가 즐겨 쓴 특유의 점묘법이 그림에 포근함을 더합니다. 웅크리고 있을 이가 있을까요. 뛰어야겠다는 생각, 아니 그보다도 풍덩 빠져들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친 사람들을 위한 궁극의 러닝 코스가 있다면, 이런 곳이 아닐까요.


언젠가 이런 곳에서 나아가고 싶습니다. 때로는 혼자서, 또 가끔은 당신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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