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 슬픔
'뭔가 잘못됐다.'
이 생각이 들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아직 지하철 노선도를 볼 엄두도 내지 못한 내가 서울에서 구한 첫 아르바이트는 주차 요원이었다. 강남구 코엑스에서 카페 박람회가 열렸을 때였다. 내 일은 방문 차량 안내였다. 이틀에 16만 원짜리 일이었다. 그런데, 내가 받은 옷은 판매원용 앞치마였다. "오기로 한 사람이 갑자기 관뒀어. 그냥 그 일 하세요." 정장을 입은 한 남성이 알려줬다. 사람들은 그를 '실장님'이라고 했다. 커피라곤 캐러멜 마키아토밖에 몰랐지만, 갑자기 전문 커피용품들이 깔린 판매대로 내몰렸다. 처음 다뤄보는 핸드 밀이니, 핸드 드립이니 하는 물건들을 손님에게 알려줘야 했다.
다들 왜 그냥 지나치지 않으실까. 가시방석이었다. 누군가가 물어볼 때마다 신나게 버벅거렸다. 머리카락을 한껏 올린 아주머니가 '쎄라믹'으로 된 커피 그라인더를 찾았다. 그게 무엇인지, 또 있다면 어디에 있는지 알 턱이 없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창고를 뒤적였다. "어휴, 답답해. 공부를 못했으니 이런 일이나 하고 있지." 그 사람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너, 공부 안 하면 쟤처럼 이런 데서 일하는 거야." 5~6살 정도로 보이는 꼬마 아이가 기계적으로 끄덕였다. 눈물이 그렁히 맺혔다. 애써 못 들은 척했다.
그해 8월, 월세 40만 원을 벌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하던 시기였다. 취업 공부를 위해 홀로 딱 300만 원을 들고 서울에 왔다. 용산구 동자동에 있는 곰팡이 낀 원룸 보증금이 300만 원이었다. 전 재산을 털었다. 나는 바퀴벌레 퇴치 약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그 원룸 안에서 일자리를 검색했다. 온갖 구직 사이트를 띄워놨다. 단기 아르바이트뿐이었다. 그날 날씨가 어땠는지, 뭘 먹었는지 떠올릴 수 없다. 귀에 전화기를 대고 "사람 아직 구할까요?"란 말만 되풀이한 기억밖에 없다. "면접이라도 받아보시라"는 연락은 가뭄에 콩 나듯 왔다.
그달, 주차요원 아닌 주차요원 일을 마친 후 나는 한 프렌차이즈 카페에서 주중 이틀 동안은 빙수를 만들었다. 빙수가 가장 잘 팔린다는 '피크' 기간이었다. 얼음 조각들을 기계 머리통에 붓는다. 뚜껑을 닫고 버튼을 꾹 누른다. 빙수 접시 안으로 눈꽃들이 내려앉았다. 팥과 연유 크림을 두르면 끝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빙수와 물아일체가 된 때였다. 자, 이렇게 또 기계를 탈탈 돌려 오늘의 마지막 빙수를 내리려고 할 때…. "여기 점장 나오라고 해." 대학생처럼 보이는 한 남성이 내게 소리쳤다.
마감이 곧이었다. "야. 왜 팥빙수를 두 개나 갖다주냐. 내가 술에 취해 보이니까 바가지를 씌우려고?" 그 사람은 비틀거리면서 내 멱살을 잡으려고 했다. "손님, 제가 아까 분명히 팥빙수 두 개가 맞는지를 물어봤습니다." 내가 응수하자 남성은 영수증을 갖고 와보라고 소리를 꽥 질렀다. 그의 일행들은 이 모습을 애써 모르는 척했다. 그 사이, 나는 다른 직원과 손님 모두에게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했다. 영수증이 보여줬다. 진한 잉크로 '팥빙수 두 개'가 찍혀 있었다. 그는 이를 살피더니 소리쳤다. "아니, 그…그 뭐야. 이상하다는 생각을 안 했어? 나한테 세 번, 네 번은 다시 물어봤어야지!"
벌써 8월 말이었다. 나는 마지막 8만 원을 벌기 위해 결혼식장 출장뷔페 아르바이트를 했다. 장소는 교회였다. 주 업무는 하객이 먹고 비운 접시를 치우는 일이었다. 이번에는 머리가 벗겨지고 있는 한 남성이 대뜸 내 어깨를 툭툭 쳤다. 그는 내게 갈비찜이 너무 질기다고 불평했다. 자신은 30년간 음식 장사를 했고, 너처럼 음식에 양심을 판 적은 없노라고 자부했다. 내가 이 갈비찜의 탄생 과정에 무슨 도움을 줬는가. 도저히 생각나지 않아 뻣뻣하게 서 있었다. 매니저가 왔다. 우리 직원이 서툴러서 그렇다며, 내게 얼른 사과하라고 호통쳤다. 엉거주춤하게 고개를 숙였다. "교육 좀 단단히 해. 손님한테 말이야…." 맥주 기운에 눈이 풀린 그는 검지 손가락으로 내 이마를 툭툭 쳤다.
그달 말, 다행히 통장에 40만 원 넘는 돈이 쌓였다. 갖은 일을 하고, 다채로운 수모를 겪은 결과였다. 그렇게 첫 달 월세 40만 원을 드디어 입금했다. 이 돈 덕분에 이곳에서 한 달을 더 살 수 있었다. 이제 한 달짜리 호프집 아르바이트도 구한 상태였다. 속이 후련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교통사고라도 당한 듯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제 정신이 들었다. 자신을 돌아봤다. 무언가에 홀린 사람 같이 살았던 한 달이었다.
혼자서 뭘 그렇게 아등바등 살았는지. 만신창이였다. 혹시나 잘릴까 봐, 혹시나 돈을 적게 받을까 봐 겁나 스스로 상처를 준 숱한 날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래봤자 좁은 방구석이었다. 당장 교통·통신비를 따져보니 치킨 한 마리의 사치도 과분했다. 보일러 하나를 마음대로 켜지 못해 밥솥을 끌어안고 자는 날들이었다. 한 달간 정말 열심히 일했는데, 온갖 굴욕을 겪었는데 내게 남은 돈은 너무 초라했다. 부당한 일을 겪고도, 어처구니없는 일을 맞닥뜨리고도 그저 당하고만 있던 내게 미안했다.
"씨…. 그래도, 그런 말은 면전에서 하면 안 되는 거였잖아.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애한테…."
'내 편'이 그리웠다. "뭐 어때. 내가 있잖아"라는, 흔한 드라마 대사가 간절했다. 풀썩 기대 실컷 욕이라도 하고 싶은데, 이 큰 도시에서 내 등을 두드려줄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불면증의 시작이었다. 불안감에 젖어 밤새 속앓이를 했다. 겨우 잠든 꿈속에서도 혼자였다.
“그날 이후 불면증이 시작됐던 것 같아요.”
나는 의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꿈속에서도 외로웠으니, 때로는 잠들지 않았을 때보다 잠들었을 때가 더 두려워 잠을 잘 수 없었어요.” 나도 모르게 고개를 푹 떨궜다. 수모는 금세 잊었지만, 그 수모가 남긴 상처는 나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나쁜 사람들, 정말 나쁜 사람들….
“날 원하거나 사랑하는 이는 아무도 없어. 이제껏 고통을 받아왔는데도, 모두 내가 더 고통받기를 원해.” 《『시계태엽 오렌지(앤서니 버지스作)』 주인공 ‘알렉스’의 토로》
거친 터치감이 느껴지는 이 그림에는 슬픔이 덕지덕지 묻어 있습니다.
볼품없이 쪼그라든 한 여성이 몸을 웅크리고 있습니다. 헝클어진 머리, 거친 손, 투박한 종아리, 이 와중에…. 임신을 한 것처럼 부자연스럽게 불룩 튀어나온 아랫배…. 앙상히 말라비틀어진 풀과 나무들이 그녀의 속마음을 보여줍니다. 좋은 날이 올까요. 애석히도, 이 여성은 그런 희망 따위 진작에 놓아버린 것 같습니다. 신은 자신이 사랑하는 이에게 더 큰 시련을 준다고 하지요. 그 사람이 견딜 수 있을 만큼의 불행만 안긴다고도 하지요. 하지만, 때로는 그 말을 걷어차고 싶을 만큼 깊은 늪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정말, 슬프게도 말이에요.
“그녀는 마치 시든 나무처럼 늘어져 있더구나. 차갑고 메마른 바람에 시달려 새순까지 말라버린 나뭇가지 말이야.” 《빈센트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