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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율 Aug 02. 2020

내 생애 첫 미술책

<0. 머릿말>

아마데오 모딜리아니, 큰 모자를 쓴 잔 에뷔테른.


소위 심리분석가로 칭해지는 많은 사람들은 이탈리아 화가 아마데오 모딜리아니(1884~1920)가 그린 그림 '큰 모자를 쓴 잔 에뷔테른'(1918~1919) 등의 작품 속 눈동자가 불완전한 것을 놓고 '여성 모델 눈도 제대로 못 본 소심한 사람'이라고 평가했지요. 몇몇은 동공이 없는 그림 자체가 괴괴한 것이라며, 그에게 변태적 성향이 있었던 것 같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를 옳은 해석으로 볼 수 있을까요.


사실 모딜리아니가 에뷔테른의 동공을 비운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1917년 햇볕이 내리쬐던 여름의 어느 날 프랑스 파리에서 마주했습니다. 모딜리아니는 32세, 에뷔테른은 고작 14세였습니다. 윤기 나는 검은 머릿결, 깊은 눈매를 타고 내려오는 날카로운 콧날 등 귀공자의 면을 갖고 있던 모딜리아니와 반듯한 요조숙녀였던 에뷔테른은 약속한 듯 사랑에 빠졌습니다.


두 사람은 곧장 동거를 시작합니다.

 

모딜리아니는 그 3년의 시간 동안 에뷔테른에게 많은 빚을 집니다. 그는 애초 살아가는 데 서툰 사람이었습니다. 몸과 정신 모두 온전하지 않았지요. 모딜리아니는 오랜 기간 폐결핵을 앓았습니다. 당초 오래 살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는 콜록대면서도 놓지 않은 게 딱 두 개 있었는데, 하나가 붓이라면 하나는 술병이었습니다.

 

돈이 넉넉히 있을 리도 없었지요.

 

모딜리아니는 에뷔테른에게 얹혀 살다시피 했습니다. 그런데도 술만 들어가면 그녀를 종종 후려치려 했고, 또 술기운이 옅어지면 울면서 상처를 보듬어주는 짓을 반복했습니다. 에뷔테른은 그런 버러지와 같던 '파리의 귀공자'를 매번 안아줍니다. 천사의 미소로, 우유에 젖은 카스텔라 같은 부드러움으로 불안한 영혼을 감싸줬습니다.

 

"그녀의 영혼을 완전히 이해하기 전까지는, 차마 그 눈에는 붓을 가져다 댈 수 없었다."

 

모딜리아니의 고백이었다죠. 눈도 바로 보지 못할 만큼의 숙맥이었던 게 아니라, 감히 눈을 맞추지 못할 만큼의 미안함과 고마움을 안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얼핏 보면 이게 왜 명화인가 싶던 '큰 모자를 쓴 잔 에뷔테른'이 새롭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미술에 대해, 적당히 아는 척은 하고 싶은 당신에게.

 

그간 미술을 알려준다고 하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무슨 파 내지 무슨 주의 등을 끊임없이 읊었겠지요. 심리학은 물론 역사학과 심지어는 수학, 과학 이론까지 쏟아져나와 괴롭힘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는 관심 있어 다가오는 사람들도 슬금슬금 멀어지게 만들기에 탁월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저 관심 있는 작가들의 놓치면 안 될 작품 몇 점을 알고, 이 작가가 그때 왜 이런 작품을 만들 수밖에 없었는지 등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을 뿐인데요. 온·오프라인에서 그런 작품들을 마주했을 때 반갑게 손 흔들고, 가끔은 사람들 사이에서 스토리를 아는 척 설명할 수 있는, 그 정도로 충분한 데 말입니다.

 

이 책은 '쉽게 글을 써야 하는' 저널리스트이자, '복잡한 이론과는 서먹한' 미술 비전공자의 시선에서 쓰였습니다. 

 

작품 이해를 돕기 위해 대놓고 단편 소설처럼 쓴 글도 있습니다. 다만, 그 시대적 배경에는 벗어나지 않도록 나름 최선의 고증을 했습니다. 설명 중간 중간에는 분명히 확인되지 않은 '썰'도 있지만, 터무니 없는 내용은 진작 배제시켰기에 완연한 의심의 눈초리는 거두셔도 됩니다.

 

저에게 이 책이 제 생애 첫 미술책이듯, 당신에게도 이 책이 당신 생애 첫 미술책으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적당히 아는 것을 넘어, 제대로 알고 싶은 마음이 생길 계기가 될 수 있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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