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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율 Aug 02. 2020

그 사람, 알고보니 그 시대 '백종원'이었네?

<1. 레오나르도 다 빈치, '최후의 만찬'>

"이 이상한 자는 벽에 물감 한 번 칠하지 않았어요. 포도주만 하나 하나 맛보고 있습니다. 맛이 없다네요. 자기 작품에 담을 만한 포도주가 아니라고 합니다. 수도원 술 창고가 곧 바닥을 드러낼 것 같습니다."

   15세기 이탈리아에 있는 한 수도원 관리자의 편지였습니다.


   그는 무슨 황당한 일을 겪고 있는 걸까요? 


레오나르도 다 빈치, 최후의 만찬.

   예수가 열두 제자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마지막 식사입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의 작품, 이탈리아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에 걸린 최후의 만찬(1497)입니다.


   알고보면, 굉장히 계산적인 작품입니다.


   3개의 창문, 4개 무리의 12제자 등은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 네 복음서, 새 예루살렘의 열두 문을 각각 뜻합니다. 보는 위치별로 거리감이 달리 느껴집니다. 황금비율에 맞춰, 나름의 가상현실처럼 만든 것입니다. 


   레오나르도는 이 그림을 만드는 데 2년 9개월이 걸렸다고 합니다. 규모, 구상을 보면 그리 길지 않은 시간입니다. 한 작품에만 수십 년을 몰두하는 화가들도 있다는 점을 보면 과연 천재 중 천재가 맞는 듯합니다. 그런데 그가 '이 행동'만 하지 않았다면, 작품 제작 기간은 다시 크게 한 뼘 줄어들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무엇일까요.



  

   먹고 마십니다. 어느 날은 눈 뜨고 눈 감을 때까지 먹고 마십니다.


   돼지 기름 냄새가 폴폴 풍기고, 코를 톡 쏘는 알콜 향이 덕지덕지 붙어 있습니다. 


   "일은 안 하고 먹기만 하니 원 참!" 누군가는 레오나르도에게 일은 하지 않고 늘어져 있다면서 손가락질을 합니다. "그림을 구상 중이어서요." 레오나르도는 그때마다 이렇게 말합니다. 


   레오나르도는 이렇게 먹고 마시면서 자기 작품에 담을 음식을 찾고 있었습니다.


   예술계에 따르면 레오나르도의 '최후의 만찬' 속 음식은 거친 검은 빵, 구운 양고기, 포도주 등이었습니다. 대추, 사과, 시나몬, 헤로우세스(무화과를 넣어 만든 양고기 양념) 등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가 근 2년 6개월간 먹고 마시면서 추린 음식들입니다. 포도주를 수도원 술 창고가 바닥날 때까지 마신 것은 색깔은 물론, 마신 직후 잔 안에서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그래봤자 어차피 만질 수도, 먹을 수도 없는 음식입니다. 말그대로 '그림의 떡'이지요. 그가 그런데도 음식에 집착한 이유는 뭘까요.




   사실 레오나르도는 화가면서 동시에 실력있는 요리사로 불리길 바랐습니다.


   동시대 라이벌인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는 '천지창조'(1508∼1512)를 그리고도 자신을 조각가로 칭했지요. 두 천재의 공통점은 이런 곳에서도 찾을 수 있겠습니다. 


   레오나르도는 1470년대에 술집 접대부로 일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가 살던 동네 안 술집 '세 마리 달팽이'란 곳에서요. 그가 1473년에는 주방장이 돼 요리를 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직접 간판 그림을 그리고, 메뉴판도 만들었다고 합니다. 애정이 대단했던 모양이지만, 그의 음식은 신통치 않았습니다. 그의 그림은 시대를 앞섰다며 박수를 받았지만, 그의 음식은 시대를 '너무' 앞섰다며 조롱만 받기 일쑤였습니다.



 

  그의 요리 노트 '코덱스 로마노프'와 관련한 기록들을 보면 흥미로운 일화가 많습니다.


   레오나르도를 주방장으로 고용한 루도비코란 자는 이 괴짜 요리사에게 당시 유력 집안이던 스포르차 가문의 주방에서 각종 요리법을 실험하도록 돕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이 안에서 자동 톱과 자동 석쇠, 회전식 솥, 빵 자르는 연장, 개구리를 쫓는 도구, 인공 비를 내릴 장치 등을 고안했습니다. 그는 참외꽃을 곁들인 오리 다리, 꿀과 크림에 담긴 양 불알 요리, 빵가루를 입힌 닭 요리 등 혁신적인 요리도 내놨습니다. 그를 찾는 방문객이 왜 점점 줄었다고 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요리와 조각의 콜라보레이션도 구상합니다. 


   대표적인 게 '케이크 결혼식' 기획안입니다. 70m 천막 안에 호두, 건포도, 케이크 등으로 각종 구조물을 세웁니다. 손님들은 케이크로 만든 문을 열고, 케이크로 만든 식탁과 의자에서 케이크를 먹을 수 있게끔 했습니다. 쥐와 새가 몰려 난장판이 됐다는 설이 있는데, 실제로 있던 일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레오나르도는 많은 시행 착오를 겪습니다. 그는 그럴 때마다 그의 조력자인 베로키오(1435~1488)의 미술 작업장을 찾아 안식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도 후폭풍을 받아들이기가 쉽지만은 않았나 봅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최후의 만찬 중 일부.
레오나르도 다 빈치, 스케치 일부.

   다시 최후의 만찬입니다.


   레오나르도는 '케이크 결혼식' 이후 큰 실의에 빠졌습니다. 조력자인 루도비코는 그에게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근처에서 휴식을 권했다고 합니다. 레오나르도는 그러던 중 작품 의뢰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가 음식에 관해선 놓을 수 없던 자부심 때문에, 수도원 관리자는 그렇게 마음 고생을 하고 만 것입니다.


   레오나르도는 음식들을 모두 정한 후부터는 오직 편집증 환자처럼 그림에만 몰두했다고 합니다. 심혈을 기울여서, 열 시간을 넘게 팔짱만 끼다가 곧장 붓질을 한 적도 많다는 설입니다. 


   애초 레오나르도가 화룡점정을 찍었을 땐 예수의 손에 텅 빈 은잔만 있었다고 합니다.


   "걸작이야. 특히 예수가 손에 들고 있는 은잔이 너무 섬세하고 아름다워 눈을 뗄 수 없어." 절친의 한 마디에 은잔을 지웠다고 합니다. "예수 외에 시선이 끌리는 게 있으면 안 된다. 예수가 중심이고, 그에게 시선이 끌려야 한다"고 하면서요. 이 또한 설일 뿐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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