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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율 Aug 05. 2020

수배된 살인자, '악마의 재능' 갖고 튀어라!

<2. 카라바조, '다윗과 골리앗'>

   폭행, 탈옥, 기물 파손, 불법 무기 소지, 그리고 살인.


   갖은 고생을 다 한 모양인지, 퀘퀘한 냄새가 폴폴 날 것 같은 비루한 한 남성이 골목길에 앉아 현상 수배지를 보고 있습니다. 분명 풍채 좋은 젊은 사람인데, 세월을 정면으로 맞은 양 얼굴에는 주름살이 가득합니다. 손과 다리 등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이 흉터 투성입니다. 이 남성은 자기 얼굴이 그려진 이 종이를 구기고는 몸을 들썩거립니다. 꽉 다문 입술 사이로 신음 소리가 새어나옵니다. 웃음인지, 울음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는 취한 목소리로 욕지거리를 내뱉습니다. 그러고는 얇은 비닐 몇 장으로 어설프게 감싼 그림 한 장을 꼭 쥐고는 자리에 일어섭니다. 사실 그 그림은 절벽으로 몰린 그가 쥔 최후의 생명줄이자, 침몰하는 배 안에서의 마지막 구명조끼였습니다.



카라바조, 다윗과 골리앗.

 

   소년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물리친 후 그의 머리를 들고 있습니다.


   중세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화가들은 익히 알려진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의 장면들을 즐겨 그렸습니다. 신세력이 기득권의 구세력을 물리칠 때가 됐다는 등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요.


   그런데, 그런 뜻을 담아내기 위한 목적으로 이 그림을 그렸다고 보기에는 너무 잔인하고 노골적입니다. 게다가 요즘 시대도 아닌, '종교의 성역화'가 남아있던 17세기에 그려진 것이지요.


   결투에서 이긴 다윗의 표정은 영 좋지 않습니다.


   싸움을 건 골리앗을, 결국 목을 벨 수밖에 없던 현실을 원망하는 듯합니다. 사실 다윗보다 목이 뎅강 잘린 골리앗의 얼굴이 더 눈길을 끕니다. 결국 그가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는 점, 그 스스로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불렀다는 점을 아는 듯합니다. 다윗이 들고 있는 칼만이 짙게 깔린 어둠 속에서 번쩍거립니다.


   카라바조(1573~1610)가 이 그림을 그릴 땐 구세력의 견제, 성역화된 종교 타파 등 그런 비장한 생각 따위를 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치는 그는 오직 살기 위해, 목숨을 구걸할 때 흥정품으로 쓰기 위해 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완성하기 전에 잡힌다면 사형장의 이슬이 될 것이란 절박함을 안고서요. 카라바조가 남긴 영혼의 그림인 셈입니다. 


   17세기를 '회화의 세기'로 만든 첫 장본인, 키아로스쿠로(그림을 그릴 때 명암의 대비 효과를 활용하는 기법)의 개척자인 페테르 파울 루벤스와 렘브란트 등 화가들의 정신적 지주로 칭해지는 그는 어쩌다가…?




   '악마의 재능'에 가장 잘 어울리는 화가, 행실이 너무 흉악했던 탓에, 빛나는 업적은 가려진 채 미술사에서 지워졌던 화가.


   이탈리아 출신인 카라바조의 풀 네임은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였습니다. 본명은 미켈란젤로 메리시였지만, 본명보다는 출신지에서 딴 카라바조라는 이명으로 더 알려진 인물입니다. 


   성인이 되기 전 부모님을 모두 잃은 그는 평생 불안증에 시달렸고, 술을 마실 때면 더욱 제멋대로 움직였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분노조절장애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는 20살을 막 넘겼을 때 로마로 옵니다. 돈이 없다보니 이 공방, 저 공방을 다니면서 허드렛일을 합니다. 카라바조의 구원자는 당시 메디치가의 정치적 대변인으로 있던 델 몬테 추기경이었습니다. 재능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었던 것입니다. 카라바조는 이 덕분에 대저택 안 작업장을 얻습니다. 그는 보답하듯 곧장 '메두사'를 그렸고, 이후 이탈리아 전역의 스타로 발돋움합니다.


   사실 카라바조는 그때부터 이미 구설수에 오르고 있었습니다. 


   재능은 출중한데, 하는 짓은 영 이상했습니다. 


   르네상스 때의 미켈란젤로도 괴팍한 게 둘째가라면 서러운 이였지만, 이 거장은 사생활에 있어선 결벽증 환자처럼 깔끔했습니다. 그 이름을 이어받은 카라바조는 그마저도 엉망진창이었지요. 방세를 흥정하다가, 테니스를 치다가, 밥을 먹다가 등 온갖 상황에서 싸워댔습니다. 


카라바조, 의심하는 토마.


   그의 그림은 분명 인기를 끌었지만, 상당한 논란도 끌고 왔습니다.


   그림 자체가 완벽하지 않았다면 진작 쓰레기통에 처박힐만큼 주제나 표현기법이 불경스럽다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머리통이 덜렁 들려있는 '다윗과 골리앗' 그림만 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겠지요. 카라바조가 살았던 때의 핵심 화풍은 '예쁘고 아름답게'였습니다. 특히 성경 속 인물이면 희고 매끈하게, 예수의 손길이 닿는 물건이면 크고 듬직히 그리는 게 정석이었지요. 그의 손을 거친 성인들은 늙고 거칠었습니다. 대머리에 굳은 살이 덕지덕지 묻은 이도 있죠. '있는 그대로' 그려버리고 마는 반항을 한 것입니다. 몇몇은 카라바조의 그림을 놓고 자연주의(naturalism)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추한 그림을 그렸다는 조롱 섞인 말이었습니다.


   카라바조는 이런 버르장머리(?)에서 그림조차 잘 못 그렸다면 아예 막장 인생을 살았을 것입니다.


   카라바조는 결국 제 성질을 죽이지 못해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넙니다.


   그는 1606년 라켓 경기에 출전했습니다. 상대편은 라누치오 토마소니란 이름의 건장한 청년이었습니다. 카라바조는 경기 도중 그가 부정 행위를 벌였다고 항의합니다. 결국 두 사람 간 목숨을 건 결투로 판이 커집니다. 카라바조는 그를 죽여버리고, 놀란 사람들을 뒤로한 채 그대로 도망칩니다. 그의 조력자도 이번 일만은 막아주지 못합니다. 이미 폭행, 탈옥, 기물 파손 등 숱한 전과가 있던 그는 그때부터 4년간 숨가쁜 도피 생활을 합니다.




   카라바조는 생에 대해 불굴의 의지를 가진 이였습니다.


   애초 맨손으로 대도시에 와 우여곡절 끝 초신성이 된 인물입니다. 어쨌거나 보통내기는 아닌 셈입니다. 그는 가장 먼저 나폴리에 몸을 숨깁니다. 아마 유명화가였던 그는 귀족들에게 환영을 받습니다. 밥 주고 잠자리도 내줄테니 그림 한 장만 그려달라고 한 이가 줄을 섭니다.


   카라바조는 기사 작위를 얻어 살인에 대한 불체포 특권을 얻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어딜 가도 쉽게 숙소를 얻었고, 그 덕분에 이탈리아 남단의 작은 섬인 몰타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도 숱하게 싸웁니다. 신경쇄약·피해망상증이 끊임없이 따라다닌 탓입니다. 시칠리아 근방 어딘가에선 집단 폭행을 당해 얼굴에 큰 상처가 나기도 합니다.


   그래도 일이 잘 풀릴 것 같았습니다.


   결국 몰타 땅을 밟습니다. 영주 알로프 데 비냐코트가 기사 작위 수여를 약속합니다. 이어 1608년 교황 바오로 5세로부터 준사면을 전제로 한 기사 작위를 받는 데도 성공합니다.


   그런데, 그 성질이 어디 가겠습니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그는 기사 작위를 받은 후 고작 3개월만에 동료 기사와 싸웁니다. 기사직을 빼앗기고, 다시 도망자의 몸이 됐습니다. 구제불능의 삶이라고 해야 할지, 말 그대로 '분노는 나의 힘'인 사람이었는지…. 이 정도면 삶 자체가 분노를 동력으로 움직인 것 같습니다. 나름 억울한 면은 있었겠죠. 그는 최종 목적지로 다시 로마를 고릅니다. 바오로 5세의 조카 스키피오 보르게세 추기경을 만나 다시 사면을 요청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카라바조 초상.


   어디서든 한 번만 더 참았다면….


   그도 사람인 이상, 지난 삶을 거듭 후회했겠지요. 그의 삶은 공포와 죄책감이 착실히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다시 그의 그림 '다윗과 골리앗'을 볼까요.


   사실 그는 자신의 자화상을 이 그림에 담았습니다. 다윗도, 골리앗도 모두 자기 자신입니다. 순수함이 있던 젊은 카라바조가 늙고 찌든 카라바조를 죽인 후 그 얼굴을 들어올린 것입니다. '지금 당장 굴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삶은 없다.' 젊은 카라바조가 늙은 카라바조의 머리통을 들고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이미 늦었다는 점을 알고 있지만 이를 애써 외면하면서요. 카라바조는 적어도 이 그림을 그리는 순간만큼은 처절하게 반성했습니다. 당시 그는 잘 때 칼을 옆에 두고 신발을 신어야 할만큼 신변에 위협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자해하는 고통으로, 절박감을 안고 이 그림을 그린 것입니다. 죄책감에서 구원받고자 한 살인자의 몸부림이 그대로 묻어납니다. 



다윗이 들고 있는 칼에 쓰인 라틴어가 보이나요. 'H AS OS'. 이는 'HUMILITAS OCCIDIT SUPERBIAM'(겸손은 교만을 이긴다)의 약자입니다. 겸손히 살겠다, 더 이상 교만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새긴 것입니다. 카라바조는 이 그림을 보르게세 추기경에게 바칠 생각이었습니다. 


   그간 지은 죄가 업보로 돌아왔을까요.


   카라바조는 마지막 생명줄은 허망히 놓칩니다. 나폴리에서 로마행 배를 탄 카라바조는 뜻밖에 다른 범죄자로 오인받고 체포, 구금됐습니다. 그가 발이 묶인 동안 그의 '구명조끼'였던 그림만이 로마에 도착합니다. 그는 끝까지 근성의 사나이였습니다. 탈출하고는 로마를 향해 걷기 시작했죠. 무모한 일이었습니다. 카라바조는 이질과 말라리아로 생을 마감합니다. 납 중독, 기사단에 의한 암살 등의 설도 있습니다. 그는 이름 없는 공동 묘지에서 잊혀지고 맙니다. 


   명예로운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없는 카라바조의 이름은 오랫동안 미술사에서 지워졌습니다. 그는 죽은 후 근 400년이 지나서야 바로크 미술의 선구자로 재조명 받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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