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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율 Aug 09. 2020

'벨라스케스 코드'…그림인가, 수수께끼인가

<3. 디에고 벨라스케스, '시녀들'>

   "이건 그림인가, 수수께끼인가."


   왜, 어떤 마음으로 그린 그림인가. 누구를 주인공으로 놓았는지 짐작하기 힘듭니다. 분위기도 보는 각도마다 달라집니다. 많은 학자들이 "이건 왜…?"라고 말하고는 끝을 맺지 못했습니다. '다빈치 코드'에 이은 '벨라스케스 코드'라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시녀들.

   왕족 소녀, 그리고 그녀 옆에 하녀 둘이 있습니다.


   왼쪽에는 화가, 오른쪽에는 여자 난쟁이와 큰 개가 보입니다. 뒤편에도 사람들이 있고, 거울에는 남녀 한 쌍이 따로 비칩니다. 벽면에는 갖은 그림들이 붙어 있습니다.


   스페인 출신의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가 그린 '시녀들'(1656)입니다. 


   1666~1843년 사이 스페인 마드리드 알카사르 왕궁 내 문건을 보면 원래 그림의 제목은 '시녀·여자 난쟁이와 함께 있는 마르가리타 공주의 초상화', '펠리페 4세의 가족' 등이었습니다. 


   이 문건에 따르면 근 200년간 그림이 걸린 곳 또한 왕의 집무실, 응접실이나 복도 등 거듭 바뀌었습니다. 


   얼핏 보면 그림마저 시끄럽습니다. 모든 이가 눈맞춤을 통해 "나를 보라!"고 외치는 것 같습니다. 큰 흐름조차 잡기 힘든 작품입니다.




   "벨라스케스는 자신을 위해 이 그림을 그렸다."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왕족과 난쟁이들을 뒤로하고, 결국 스스로의 안위를 위해 그렸다는 것입니다. 


   같은 시대의 화가 안토니오 팔로미노(1653~1726)의 기록을 보죠. 그는 1678년 스페인 마드리드를 찾았을 때, 벨라스케스와 친분 있던 궁정 인사들을 마주했습니다. 안토니오의 당시 쓴 글을 보면 그가 이들에게 들은 그림 '시녀들'의 등장인물들도 소개되는데요. 


   왼쪽부터 벨라스케스, 시녀 도냐 마리아 아우구스티나 데 사르미엔토, 공주 마르가리타, 다른 시녀 도나 아시벨 데 벨라스코, 난쟁이 마르바르볼라와 니콜라시토 페르투사토, 거울 속 왕 펠리페 4세와 왕비, 왕비 시녀장 도냐 마르셀라와 수행원 돈 디에고 루이스, 시종 돈 호세 니에토 벨라스케스입니다.


   먼저 왕과 왕비에게 눈길을 줘볼까요.


   벨라스케스는 이 그림에 "나 이런 사람이야~"란 속마음을 은근히 깔아놓았습니다. 궁정 화가에게 왕과 왕비는 당연히 챙겨야 할 1순위 인물인데, 이들을 거울 속 들러리로 만들었습니다. 한참 작업 중인 그를 보러온 흔한 손님으로 묘사한 것 같기도 합니다. 자기가 이런 대접을 받는 사람이란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 다음 벨라스케스의 옷을 볼까요.


   벨라스케스는 많은 이의 '아이돌'이었던 산티에고 기사단 표식을 달고 있습니다. 그는 그림을 그릴 당시 그 기사단과 전혀 관련 없는 사람이었는데(벨라스케스는 그림을 그린 후 3년 후인 1659년에 기사단원이 됩니다), 마치 이미 그 일원이었던 것처럼 자랑한 것이지요. 


   그림을 그린 장소는요. 이 그림의 배경 공간은 자기 화실이 아닌 왕자의 방이었다고 합니다. 왕족과의 깊은 연을 과시하려는 뜻이 물씬 묻어납니다. 


   벨라스케스는 이 그림을 오직 왕과 귀족, 성직자들에게만 보여줬다고 합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초상.

   그렇다면 벨라스케스는 왜 이렇게 '있는 척'을 하는 데 몰두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출신 배경부터 따져봐야 할 듯합니다.


   벨라스케스가 태어났을 때쯤 스페인은 16세기 내내 꽃을 피웠던 황금시대 끝자락에 있었습니다. 앞서 스페인은 15세기 말 신대륙을 개척한 후 부를 쌓았지요. 벨라스케스가 태어난 세비야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주도였습니다. 스페인의 황금시대 내내 인구가 가장 많았던 중심지였지만, 17세기부터 급격히 쇠퇴 길을 걷습니다. 벨라스케스는 자신이 한때 잘나가던 세비아 출신의 '귀한 집안'임을 알리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원래 허영심이 많은 성격이었는지, 어떤 일을 겪은 데 따른 컴플렉스였는지는 모릅니다.


   당시 스페인은 부모의 성 중 마음대로 하나 이상을 골라 쓸 수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포르투갈 출신의 후앙 로드리게즈 데 실바, 어머니는 세비야 출신의 예로니마 벨라스케스였지요. 지금 알려진 바대로 벨라스케스는 굳이 어머니의 성을 선택했습니다. 세비야인이란 뜻의 '이스팔렌시스'(Hispalensis)란 말을 이름에 곁들이기도 했습니다.


   벨라스케스는 그런 노력에도 늘 귀족 바로 아래의 계급인 이달고(HIdalgos) 취급을 받았다고 합니다. 1623년, 그림 실력을 인정 받아 궁정 화가의 길을 걸을 수 있었고, 결국 왕자의 방을 찾아가 '시녀들'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권력을 쥐게 된 셈이지요. 그림으로 그간 쌓은 욕망을 마음껏 펼쳤다고 해도 이상한 게 전혀 없어보입니다.




   '시녀들'이 사랑받는 이유는 수수께끼 때문만은 아닙니다.


   작품성도 한 몫을 합니다. 앞서 설명했듯 중구난방인 듯하면서도 묘하게 조화롭습니다. 


   위엄을 갖췄지만 앳된 공주, 이를 존경 어린 눈빛으로 보는 시녀, 크고 못생긴 얼굴에서 왠지 모를 슬픔이 묻어나는 난쟁이, 정면으로 당당함을 뿜어내는 화가 등 개성이 뚜렷한 인물들이 완전히 따로 노는 것 같지만은 않습니다.


   벨라스케스가 카라바조를 따른 탓일까요. 특유의 음울한 분위기도 보는 이의 심금을 울립니다. 빛이 창을 통해 실내를 비추는 모습은 루벤스, 주요 인물들을 거울로 비춘 것은 얀 반 에이크(1395~1441)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 그림은 그 자체로 사실주의의 대표작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부터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 파블로 피카소(1881~1973), 살바도르 달리(1904~1989), 페르난도 보테로(1932~) 등 시대 구분 없이 많은 대가들도 사랑했습니다. 특히 피카소는 이 그림을 보고 50점이 넘는 재해석판을 내놨습니다. 미셸 푸코(1926~1984)는 그의 책 '말과 글'에서 이 작품을 다루기도 했습니다.




   박민규(1968~) 작가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2009)란 소설을 썼습니다. '시녀들'을 책 표지로 썼습니다. 공주 마르가리타보다 난쟁이 시녀 마르바르볼라를 더욱 조명한 게 특징입니다.


   소설 속 주인공도 기품 있는 공주가 아닌, 괴이한 시녀를 닮은 못생긴 여성입니다.


   익히 알려진 박민규의 소설처럼 통통 튀지 않습니다. 되레 담담하고, 쓸쓸하고, 애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사랑하는 이들의 모습을 그린 책입니다.


   이번 글에 이 소설의 한 구절을 덧붙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나가는 거야. 이쁘지도 않은 서로를, 잘난 것도없는 서로를…. 평생을 가도 신문에 기사 한 줄 실릴 일 없는 사랑을…. 그런데도 불구하고 해나가는 거지. 왜, 도대체 왜 그런 일을 하느냐 이 얘기야, 기적은 바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 한 줌의 드라마도 없이…. 어디 좋은 곳 한번 가보지 못한 채…. 어딜 가 봐야 눈에 띄지도 않고, 딱히 내세울 것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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