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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율 Aug 12. 2020

앳된 이 소녀를 찾아주세요!

<4. 요하네스 베르메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내가 살면서 이런 그림을 단 한 장이라도 그렸다면, 나는 그 자체로 평생의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했을거야." <어빙 스톤, 빈센트 빈센트 빈센트 반고흐 일부 발췌>

  

  호메로스(BC 800?~BC 750)의 일리아스, 카이사르(BC 100~BC 44)의 갈리아 전쟁기, 셰익스피어(1564~1616)의 리어 왕, 괴테(1749~1832)의 파우스트….


   마치 '이것'을 남기기 위해 세상에 보내진 것 같은 이가 있지요.


   빈센트 반 고흐도 그 중 한 사람일 수 있겠지만, 그보다도 200년 먼저 네덜란드에서 그런 소임을 다한 이가 있었습니다.


   요하네스 베르메르(1632~1675)는 단지 이 인물화 한 점으로 네덜란드의 자랑으로 자리매김합니다.


   그의 숙명으로 평가받는 이 그림은 무엇일까요. 그는 일을 하기 전 어떤 '계시'를 받았으며, 누구를 모델로 이 작품을 그린 것일까요.



요하네스 베르메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앳된 소녀가 비스듬히 고개를 돌려 앞을 봅니다.


   은은한 눈빛, 살짝 벌린 입술, 가녀린 목…. 허름한 복장의 그녀는 그 분위기와 달리 값진 진주 귀걸이를 차고 있습니다.


   소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사연이 많아보입니다. 그녀가 어떤 상태인지는 쉽게 짐작가지 않습니다. 그녀 또한 쉽게 털어낼 것 같지 않습니다. 텅빈 배경 사이에서 진주 귀걸이만 반짝거립니다. 몰입할수록 '나와 소녀만이 이 공간에 있다'는 등의 생각이 따라옵니다. 말 없이 촉촉한 눈망울만 보여주는 소녀, 오랜만에 만난 엄마가 손을 감싸주면 그제서야 품어왔던 이야기를 하나 둘 꺼내놓을까요.


   '북유럽의 모나리자'로 칭해지는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1665·추정)입니다.


   소녀는 매혹적입니다. 전혀 그럴 분위기가 아닌데도 그렇습니다. 스푸마토 기법(안개처럼 색을 미묘하게 바꿔 색깔 사이 윤곽을 명확히 구분할 수 없도록 자연스레 옮아가게끔 한 명암법)에 따른 흐릿한 윤곽선, 눈보다도 부드러울 것 같은 색감에 따른 것입니다.


   베르메르는 미묘한 빛의 표현에 집중했습니다.


   '단순함이야말로 가장 아름답다'(Simple is the Best)란 말이 생각날 만큼 단순한 구성이지요.


   소녀도, 고작 두 번의 붓터치로 그려진 것으로 알려진 제2의 주인공인 진주 귀걸이도 온기를 머금고 있습니다. 왼쪽 윗부분은 밝은 색, 아랫 부분은 흰 옷깃을 반사시켜 맑은 느낌을 주게끔 했습니다. 옷과 터번의 주름을 볼까요. 빛과 어둠이 찰떡 같이 대비돼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베르메르가 살던 시기에는 루벤스가 있었지요. 스페인에는 벨라스케스, 프랑스에는 푸생(1594~1665)이 있었습니다. 같은 국경 위에는 렘브란트(1606~1669)와 프란스 할스(1581~1666)가 살았습니다. 


   이 가운데 지금 대중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이가 베르메르며, 미술의 문외한도 그의 신비로운 소녀만큼은 알고 있다는 데 부정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의 미술계는 베르메르가 단지 이 그림을 그렸다는 것만으로 그를 '17세기의 비너스'를 만든 창시자로 부르고 있을 정도입니다.




요하네스 베르메르, 회화 예술

   베르메르의 숙명으로 남은 그녀는 누구였을까요.


   지금까지의 정답은 '아직은 알 수 없다'입니다.


   베르메르의 삶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는 평생을 네덜란드 델프트에서 산 은둔형 화가였습니다. 그가 그린 것으로 알려진 작품은 고작 32~36점 정도입니다. 1년에 겨우 2~3점을 그린 셈입니다. 정확한 작품 수는 모릅니다. '미스터리'의 화가였던 만큼 위작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의 삶은 그리 넉넉치도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등으로 19세기 중반이 돼서야 솔솔 주목을 받기 시작한, 시대를 초월한 대기만성형 화가였습니다.


   트레이시 슈발리에(1962~)는 베르메르가 자신의 집에 있는 하녀를 놓고 이 그림을 그렸다는 내용으로 소설을 썼습니다. 1653년, 베르메르가 카타리나 볼네스와 결혼했고, 슬하에 15명(4명은 어릴 때 사망) 자녀와 몇 명의 하녀를 거느리고 살았다는 기록에 따른 것입니다. 이런 점 말고는 크게 알려진 바가 없고, 진주 귀걸이 소녀에 대해선 정말 전해지는 바가 없으니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에 되레 좋았다고 합니다.


   슈발리에의 소설 속 베르메르와 하녀 그리트는 서로에게 묘한 감정을 갖습니다.


   말 없고 무심한 베르메르, 똑 부러지고 때로는 도발적인 그리트는 서로를 향한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베르메르가 그리트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겠다고 말합니다.


   그는 뭔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원하는 걸 주지 못하고 있다는 두려움으로 인해 긴장되기 시작했다.   

   "그리트."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가 한 말은 그게 다였다. 내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제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래, 움직이지 마라."

   그는 나를 그리려 하고 있었다. <트레이시 슈발리에, 진주 귀고리 소녀 일부 발췌>


   슈발리에는 진주 귀걸이 소녀의 눈빛에서 화가를 향한 사랑을 읽었기에, 이같은 장면을 상상한 것 같습니다. 반면 베르메르는 그리트를 자신이 꿈에 그리던 뮤즈로, 사랑보단 동경의 감정을 가진 것처럼 묘사합니다.


   슈발리에의 소설은 같은 이름의 영화(2004)로 나왔습니다.


   피터 웨버 감독이 제작했고, 콜린 퍼스(베르메르)와 (그리트), 스칼릿 조핸슨킬리언 미퍼(페터) 등이 출연했습니다. 잔잔하고 부드러운 영화입니다. 제7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미술·촬영·의상상 후보작으로 꼽힐 만큼, 그 시대의 색감과 의상을 잘 살렸습니다. 영화의 명대사는 "제 마음까지 꿰뚫어보셨군요…." 그리트가 베르메르에게 그림을 받아든 후 애틋한 목소리로 전하는 말입니다.




   베르메르가 단지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상을 그렸다는 설도 있죠.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모델이 돼 준 이는 세상이 없었다는 의견입니다. 


   소녀의 속눈썹이 없다는 것, 주근깨나 머리카락 등 신체의 세부사항 중 상당 부분이 생략됐다는 데 따른 것입니다.


   베르메르는 애초 넉넉치 못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결혼 후 잠깐 평화로운 시기를 보냈을 뿐, 대부분의 삶은 불안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결혼 뒤 7년이 지난 다음부터는 돈이 없어 처갓집에 얹혀 살아야 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 그가 흔들리지 않기 위해 '인내'의 뜻을 품은 진주, '순결'의 뜻을 가진 아름다운 소녀를 그렸다는 말도 있습니다.


   최근 이 주장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도 나왔지요.


   2020년 4월,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 소녀를 소장 중인 네덜란드 마우리츠하이스미술관의 연구진은 엑스레이(X-ray)와 디지털 현미경 기술 등으로 그림을 살펴본 결과 그림 속 소녀의 눈에서 속눈썹을 발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베르메르가 그림을 완성하기 전 소녀의 귀, 머리를 둘러싼 스카프, 목의 뒷부분 등의 위치도 달라고도 했지요. 어두운 색의 배경도 원래는 짙은 녹색의 커튼이었다고 합니다.


   "소녀가 누구인지, 그녀가 실제로 존재했는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녀와 조금 더 가까워졌다." <마틴 고셀링크, 마우리츠하이스 미술관 이사>


   소녀의 정체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베르메르가 이 그림을 그리는 데 숙고에 숙고를 거듭했다는 것 자체는 확인된 셈입니다.




요하네스 베르메르, 저울을 든 여인

   소녀의 존재 유무를 떠나, 이 그림 자체가 별 의미 없는 습작에 불과하다는 말도 있습니다. 


   베르메르가 바로크 양식의 초상화를 공부하기 위해, 연습 삼아 하녀 등 눈에 잡힌 인물 내지 상상의 인물을 그렸다는 설입니다.


   당시 베르메르는 주로 편지를 읽는 여인, 우유를 따른 여인 등 상인계층의 동적인 일상을 즐겨 그렸습니다. 현재 연구자들이 추정하는 바에 따르면, 베르메르가 여성의 얼굴만 클로즈업해 그린 것은 이 진주 귀걸이 소녀와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있는 '소녀를 위한 연구' 뿐입니다. 실제로 17세기에는 많은 화가들이 인물의 특징과 골상을 연습하기 위해 가슴 높이의 인물화, 트로니(Troni)를 많이 그렸습니다.


   이 그림에는 오직 'IVMeer'란 서명만 있을 뿐, 년도를 쓴 기록을 찾을 수 없다는 점도 이 설에 힘을 싣습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강력한 신비를 내뿜는다. 소녀의 표정에 사로잡혀 소설을 썼지만, 나는 아직도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결코 알지 못하기를 바란다." <트레이시 슈발리에, 소설 '진주 귀걸이 소녀' 작가>


   아마도 이 소녀의 정체는 앞으로도 밝혀지는 데 꽤 지난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런데 트레이시의 말처럼 이제 와서 그런 걸 목숨 걸고 따질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이 소녀는 단지 보는 것 그 자체로도 예술의 기쁨을 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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