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윤리학 7장
<모형을 통해 도출가능한 추가 내용 정리>
1. 나의 자아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2. 나의 정신적 내적 기제는 ‘우주적 존재만이 인지가능한 개연적인 운명’뿐이다. 나의 물질적 내적기제는 나를 구성하는 나만의 물질적인 것뿐이다.
3. 외적기제는 필연적으로 구현되지 않으며, 내적기제는 필연적으로 구현되지 않는다. (상관관계) : 정신적 내적기제(개연적인 운명) 또한 마찬가지이다. 내 앞에는 무수히 많은 운명이 존재한다. 나는 계속해서 운명이란 개연적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 이유는 운명은 피할 수 없지만 그것이 오직 하나만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것은 운명의 가능성에 가깝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매 순간 무수히 많은 운명의 굴레 속에 존재한다. 예컨대, 내가 현재 행하고 있는 행위가 A라는 운명과 큰 상관관계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B, C라는 운명 또한 내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운명이 그렇게 무수히 많고, 나에게 필연적인 결과를 야기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운명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가?’ 라는 질문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에 대한 답변에 대해서는 운명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서 다르다고 생각한다.
4. 내가 생각하는 운명이란, 절대적인 우주적 존재가 인지 가능한 한 양태가 걸어갈 수 있는 길이다. 절대적인 우주적 존재는 한 양태에 대해서 하나의 운명만을 인지하는 것이 아니다. 다중우주와 같이, 무수히 많은 길이 그 양태의 앞에 놓여져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한 양태의 운명은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가능성이라는 척도 하에 무수히 많은 운명들이 앞에 존재한다. 그렇다면 동시에 이런 의문이 들것이다. ‘내적기제는 자기유래, 자기원인, 자기특성, 자기유지를 충족해야하는데, ’개연적인 운명‘이라는 정신적 내적기제는 이것을 다 충족하는가?’
5. 우주의 시작은 나의 시작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러므로 우선 ‘개연적인 운명’이라는 정신적 내적기제는 (1) 자기유래를 충족한다. 또한, 그 양태만을 존재원인으로 여긴다는 점에서 (2) 자기원인 또한 충족한다. 남들과는 구분된다는 점에 있어서도 자기 특성을 지닌다. 그러므로 (3) 자기특성 또한 충족한다. 문제는 외부의 영향을 받는지 않은지 <(4)자기유지>이다. 나의 행동에 따라 무수히 개연적인 운명이라는 A운명이 B운명, C운명으로 변화한다면 ‘자기유지’를 충족하지 않는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개연적인 운명’이란, A 운명, B 운명, C 운명을 모두 다 포괄하는 운명의 집합체이다. 즉, 어떠한 양태가 살아가면서 운명이란 정해져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가 아니다. 그 양태가 겪을 수 있는 운명은 무수히 많이 존재한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그러한 운명의 나뭇가지 수는 우리는 감히 상상할 수 없지만, 절대자의 존재가 본다면 어느 정도 그 개수가 정해져 있을 것이다. 예컨대 ‘나’라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운명은 하나의 순간에 100만개 정도 존재할 수 있다. 당연히 인간은 이러한 운명의 가짓수를 파악할 수 없다. 그러나 절대자의 입장에서, 운명의 개수는 분명히 정해져있다. 경우의 수와 마찬가지이다. 그것을 ‘운명의 집합체’라고 한다. 이러한 운명의 집합체로써의 개연적인 운명은 분명히 이미 우주적 입장에서 존재해 있고, 그렇게 사유할 경우 내가 어떠한 행동을 해서, 어떠한 외부적인 사건으로 인해 나의 개연적인 운명‘A’가 개연적인 운명 ‘B’로 바뀌었다고 할지라도, 이는 외부의 영향을 받아서 운명이 ‘변화’하였다기 보다는, 이미 우주적 존재의 입장에서 존재하는 운명의 나뭇가지 A에서 나뭇가지 B로 ‘이동’하였다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 그러므로 결국 이렇게 사유할 경우 ‘(4)자기유지’또한 충족한다.
6. 정신적 내적기제를 ‘우주적 존재만이 인지가능한 개연적인 운명’이라고 가정하더라도, 그것이 외적기제가 내적기제로 치환되어야 한다는 것을 함축하는 것은 아니다. : 외적기제와 내적기제의 가장 큰 차이는 그것의 기원이라고 언급한 적 있다. 나의 모형에 따르면, 외적기제들은 외적기제 나름의 각각의 개연적인 운명을 지니고 있다. 그러한 개연적인 운명은 외적기제의 내적기제로 불릴 수 있다. 그러나 외적기제의 내적기제는 나라는 자아의 내적기제와는 다르다. 예컨대, 해변가에 있는 모래 한 알이 지니는 개연적인 운명과 나의 개연적인 운명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렇기에 나의 입장에서 다른 사람의 내적기제는 외적기제일 뿐이다.
<자기탐구 1 : 내적기제와 외적기제의 합>
1. 내적기제와 외적기제의 합은 무엇인가?
내적기제와 외적기제의 합은 나에게 주어진 개연적인 운명이 이동하는 과정이다. 나는 특정 시점에서 특정한 우주적인 운명의 요구를 강요받는다. 그러나 나에게 존재하는 물질적, 정신적 내적기제와 나의 외부에 존재하는 외적기제와의 합을 통해 그러한 운명은 이동한다. 이러한 내적기제와 외적기제의 합은 나의 사유 속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진다. 이를 통해 나에게 주어진 수많은 운명들 속에서 나만의 운명을 찾아나간다. 그러한 운명 속에서 나의 자아는 형성된다.
2. 내적기제와 외적기제의 합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내적기제와 외적기제의 합은 내면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리고 인간에 한해서 내면화는 대게 기억(인상)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한 인간에게 영향을 주는 외적기제에는 상당부분 ‘과거의 자아’가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기억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과거의 자아와 끊임없이 소통한다. 그러한 기억과 나의 내적기제의 합을 통해 나는 어떠한 느낌 내지는 감정을 형성한다. 과거의 자아는 현재의 자아의 입장에서 가장 강력한 외적기제이다. 그러므로 자아가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그 자아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 이유는 과거의 자아 또한 나에게 외적기제로써 작용하기 때문이다.
3. 나의 내적기제와 외적기제의 합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나의 과거의 자아는 앞서서 말한 것처럼, 가족과 여자친구, 그리고 해양경찰, 각종 학문들에 대한 나의 기억 등이 있다. 그러한 기억들은 현재 나의 내적기제와 합쳐지면서 계속해서 나의 자아를 형성해나가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나의 자아에 큰 영향을 주는 외적기제와 내적기제의 합은
1) 인간에 관한 기억 + 나의 내적기제 -> 자아
2) 경험에 관한 기억 + 나의 내적기제 -> 자아
3) 지식에 관한 기억 + 나의 내적기제 -> 자아
로 분류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이 글에서는 나의 현재의 자아를 바탕으로 나의 외적기제에 관한 기억과 내적기제가 어떻게 합쳐졌는지 추측해보고자 한다. 다만, 여기서 나열하는 나의 자아는 글을 쓰는 현재 시점의 나의 자아이며, 이는 점차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언급하고자 한다.
(1) 인간에 관한 기억 + 나의 내적기제
나는 가족, 여자친구, 친구들이라는 외적기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러한 외적기제들은 나의 내적기제와 합쳐져 나의 자아를 구성하고 있다.
- 나는 상처받는 것을 무서워하는 자아를 지니고 있다. : 과거에 나는 중학교 1학년 시절 친한 친구들의 무리와 불화를 겪고 배제된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기억, 경험은 자존심이 세고 잘 운다는 나의 내적인 특성과 맞물려서 내가 인간의 무리에서 상처받고 비난받는 것을 무서워하는 자아를 형성하게 하였다. 이는 동시에 내가 혼자 있는 것을 즐기고 좋아하게 하는 자아를 형성하게 하였다. 아울러 인간에게 상처받기를 두려워하기에, 동물을 좋아하는 나의 자아를 형성하게 하였다.
- 나는 동시에 사랑받기를 원하는 자아를 지니고 있다. : 인간의 무리에서 배제당한 기억과 동시에 나는 가족과 여자친구로부터 사랑받은 기억이 존재한다. 과거 한번 인간에게서 상처를 받았지만, 동시에 나는 가족과 여자친구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어찌보면 매우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너그럽고 따뜻한 사람이었으며, 나의 여자친구는 나를 온전히 나로 사랑해주었다. 그러한 기억은 공감을 잘하고 자존심이 세고 잘 웃는 나의 내적인 특성과 합쳐져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며 사랑받기를 원하는 나의 자아를 형성하게 하였다.
(2) 경험에 관한 나의 기억 + 나의 내적기제
현재 인간을 제외한, 가장 큰 기억이라는 형태로 남아있는 경험에는 미국에서의 생활과 해양경찰이라는 조직 내에서의 경험에 대한 기억이 있다.
- 나는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좋아하는 자아를 지니고 있다. : 과거 대학교를 입학하고 1학년때까지 나에게 그렇다 할 경험은 존재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매우 아쉽게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의 자아는 외부의 영향에 취약했으며, 그렇다할 확고함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는 나에게 영향을 주는 외적기제의 절대적인 양이 매우 적었기 때문이며, 이로 인해 나의 현재의 자아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과거의 자아가 확립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새로운 경험을 두려워하였고, 새로운 사람을 두려워했다. 혼자있는 것을 즐기고, 자연스럽게 이는 외적기제와의 상호작용을 줄이면서 나의 자아의 기쁨을 늘리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지금 내가 생각하기에, 미국에서의 경험과 해양경찰에서의 경험에 대한 기억은 호기심이 많은 나의 특성과 귀가 얇은 나의 특성과 합쳐져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좋아하는 자아를 형성하게 하였다.
- 나는 가만히 있는 것을 싫어하는 자아를 지니고 있다. : 나는 과거에 혼자있는 시간이 많았다. 대학교 1학년 때까지 새로운 도전을 무서워했으며 그렇기에 학교생활말고는 새로운 일을 하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혼자만의 생활을 했던 경험에 대한 기억과 그것과 상충되는 여행을 다니고, 조직생활을 잠깐이나마 해본 경험에 대한 기억, 그리고 호기심이 많고 귀가 얇은 나의 특성과 합쳐져 나는 가만히 잘 있지 못하고 그것을 싫어하는 자아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혼자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특성과 역설적으로 대비가 되는 자아이다.
(3) 지식에 관한 기억 + 나의 내적기제
지식과 같은 경우 내가 지금까지 배웠던 지식들 중에서 철학, 역사, 사회학이 주로 그 기억을 차지하고 있다. 아직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만큼, 그 기억은 계속해서 바뀌고 있다.
- 나는 개인의 자유를 좋아하는 자아를 지니고 있다. : 내가 처음 읽은 철학책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이다. 철학에 대해 잘 모르던 나는 해당 책에 큰 영감을 받았다. 그 이후 근대의 계몽주의자들의 여러 서적들을 접했다. 또한 나는 해양경찰이라는 억압적인 조직 내에서 생활을 해본 기억을 지니고 있다. 그러한 지식과 경험에 관한 나의 기억은 귀가 얇은 나의 특성과 가만히 있기 싫어하는 나의 과거의 자아와 결합하여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고, 또 좋아하는 나의 자아를 형성하였다.
- 나는 공동체를 중시하며 좋아하는 자아를 지니고 있다. : 나는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면서 동시에 공동체를 중시한다. 공동체로써의 생활은 억압적인 경험임과 동시에 공동체가 굴러가기 위해서는 일정정도의 공동체의식이 필요하다는 인상을 남겼다. 또한 최근 사회학과를 이중전공으로 정하고 사회에 대한 고전들을 접하며 개인의 자유가 중요하지만 동시에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느정도의 소속감과 일체감 또한 중요하다는 나의 자아를 형성하였다.
나는 객관성을 좋아하고 주관성을 싫어하는 자아를 지니고 있다. : 지식을 배우며, 모든 사물과 현상은 본질상 모순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특히 헤겔의 변증법은 나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모든 현상은 긍정성과 부정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현재 어떠한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현상이 나에게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긍정적으로도 바라보려고 노력하며, 긍정적인 현상이 나타나더라도 그것을 부정적으로도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그것을 바라보려는 자아를 형성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