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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희원 Jan 09. 2023

자아

자기윤리학 9장


1. 나는 앞서서 내적기제와 외적기제의 합은 자아와 인과관계를 갖고 있다고 표현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자아 = 외적기제와 내적기제의 합”과는 다르다. 


이를 논리학적으로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 외적기제와 내적기제의 합 -> 자아 (o)

자아 -> 외적기제와 내적기제의 합 (x)


이를 벤다이어그램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이렇게 구분을 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기에 중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외적기제와 내적기제의 합은 자아의 영역에 포함된다. 그러나 자아의 영역 속에서 외적기제와 내적기제의 합으로 표현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의지가 있다.


외적기제는 ‘내가 아닌 것들로부터 유래된 나에게 영향을 주는 모든 것들’이며, 내적기제는 ‘ 오직 나로부터 유래되어 다른 사람들과 구분되는 나의 자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모든 것, 외적기제로부터 타인과 다른 나만의 관점,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매커니즘의 기원이며 외적기제를 해석하는 내적 매커니즘을 창조한 선험적인 무언가’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자아는 이러한 ‘외적기제와 내적기제의 합의 창조물’이지만 동시에 그들(외적기제와 내적기제)의 손을 벗어난 야생마와 같다. 외적기제와 내적기제를 어머니와 아버지로 비유한다면, 자아는 그들의 아들 혹은 딸과 같다. 외적기제와 내적기제는 자아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닌 것이다. 외적기제와 내적기제가 자아라는 하나의 형태를 만들어냈지만, 자아는 자신의 운명의 굴레 속에서 발버둥친다.



2. 자아는 좋음과 싫음이라는 의지에 의해 작동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만물의 자아는 좋음과 싫음이라는 물질적, 정신적 의지에 의해 작동한다. 나는 앞서서 좋음에 대해서 원함과 구분한 적이 있다. 싫음에 대해서는 나쁨과 구분한 적이 있다. 그렇게 구분한 이유는, 내가 여기서 말하는 좋음과 싫음은 자신의 보존과 관련된 개념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모든 개체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그들의 존재를 유지하는 것을 자아의 제1 원칙으로 세우게 된다. 오직 그러한 존재 유지와 관련되어 있어서 선한 것이 좋음이며, 악한 것이 싫음이다.


그러나 인간을 포함한 모든 개체들은 자신의 좋음과 싫음을 완벽하게 인지하지 못한다. 즉, 각 개체의 자아는 불완전하다. 완벽한 자아를 지닌 것은 모든 것을 아는 절대자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많은 인간들이 마약을 좋음이라고 착각하며, 오직 잘 먹고 자는 생리적인 만족을 좋음이라고 착각한다. 동물 또한, 자신에게 진정으로 좋은 것과 싫은 것을 명석판명하게 구분하지 못한다. 오직 생리적인 만족을 좋음이라고 여긴다.


자아가 자신의 보존에 한하여 자신의 좋음과 싫음을 명확하게 판단하고 의지하도록 돕는 것이 나는 이성이라고 생각한다. 이성이란, 좋음과 싫음을 자기보존과 연관지어 판단하도록 도우며, 여러 운명의 나뭇가지 속에서 하나의 나뭇가지가 자기보존에 있어서 나의 좋음을 극대화하고 싫음을 극소화시킨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자아의 노력, 자아의 의지이다.



3. 자아의 의지(이성)는 능동적인 상호작용을 이끈다.


앞서서 나는 능동적인 상호작용은 물리적으로 능동적인 상호작용과 정신적으로 능동적인 상호작용이 있다고 쓴 바 있다. 물리적으로 능동적인 상호작용은 외적기제와 자아의 상호작용이며, 정신적으로 능동적인 상호작용은 내적기제와 자아의 상호작용이다.


자아는 자기보존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각 개체의 자아는 한계를 지니기 때문에 명석판명하게 자기보존을 향해 행동할 수 없기에 그러한 상황에 가까워지기 위해 더더욱 노력하고 의지한다. 그러한 노력 내지 의지가 클수록 외적기제와 내적기제와의 능동적인 상호작용의 비중이 커지게 된다. 그러면 그 개체는 행복에 가까워진다.


4. 자아의 의지를 높이기 위한 단계


그렇다면 행복에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능동적인 상호작용의 비중을 늘려야 하고, 그러려면 자아의 의지가 높아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자아의 의지를 높일 수 있는가? 내가 생각하기에 다음과 같은 과정이 필요하다.


1) 인지

우선 자아를 인지해야한다. 자아를 인지한다는 것은, 자아의 필요조건인 내적기제와 외적기제를 인지하고, 각각의 상호작용을 인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2) 이해

이해한다는 것은 이유를 탐구하는 것과 같다. 나의 자아의 이유를 탐구하고, 외적기제와 내적기제의 이유를 탐구하고, 상호작용의 이유를 탐구해야한다.


3) 연구

여기서 연구해야할 것은 자아의 의지이다. 만약 자아와 외적기제, 내적기제, 그리고 각각의 상호작용을 이해하였다면, 이제 자아의 의지를 어느정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렇다면 그 다음에 해야할 것은 자아의 의지가 무엇인지 연구하는 것이다. 즉, 연구는 나의 이성이 외치는 목소리가 무엇인지 듣는 것이며, 나의 자기보존에 있어서 좋음과 싫음을 인간의 능력 안에서 최대한 명석판명하게 하는 것이다.


4) 노력

노력은 자아를 둘러싼 상관관계의 절대적인 개수를 늘리는 것을 노력하는 것과 상관관계를 표상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 두 가지의 노력이 존재한다. 전자는 미래에 대한 노력이고, 후자는 과거에 대한 노력이다.


나는 행복에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능동적인 상호작용을 늘려야 한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이미 자아를 둘러싼 상호작용은 대부분의 개체의 경우 한계가 존재한다. 예컨대 나는 이미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태어났으며, 학교를 이미 다녔고, 초,중,고등학교 친구관계는 이미 존재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황에서 능동적인 상관관계의 비중을 늘리려면, 미래에 집중을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수학적인 예시로 표현하자면, 과거 2학년때까지의 나의 대학교 성적이 안좋은데 전체적인 성적의 평균을 늘리려면 3학년때부터 좋은 성적을 받으면 되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다. 즉, 미래에 내가 만들어내는 상관관계를 능동적인 상관관계로 만들고 그것들의 절대적인 개수를 늘려나감으로써, 나는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상관관계가 나의 행복에 있어서 매몰 비용과 같은 것은 아니다. 인간정신은 표상이라는 방식으로 물자체를 현상으로서 인식한다. 같은 물자체라도, 어떤 인간에게는 좋음이라는 현상이 될 수도 있고, 다른 인간에게는 나쁨이라는 현상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행복을 위해 내가 해야할 일은 과거의 상관관계를 이성을 이용하여 자기보존에 있어서 ‘좋음’이라는 방향으로 표상하면 될 일이다. 예컨대 내가 태어난 가정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기보다 그것이 나의 존재자체에 있어서 어떠한 좋음을 선사하였는지 그것에 집중할 수 있다. 모든 것은 표상하기 나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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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탐구 끝



<중간정리>

정리를 해보자. 

‘자기이해’에서는 주로 형이상학적인 탐구를 하였다. 자기이해를 위한 무한한 상관관계 모형을 바탕으로, ‘좋음’, ‘싫음’, ‘내적기제’, ‘외적기제’에 대한 인지와 이해를 하였다.

‘자기탐구’에서는 앞서서 ‘자기이해’에서 한 인지, 이해를 바탕으로 ‘내적기제와 외적기제의 합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자아와 외적기제, 내적기제의 상호작용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마지막으로 모든 것들을 종합하여 ‘자아는 무엇인지, 나의 자아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탐구하였다.

이제 몇 번밖에 남지 않았지만, ‘나의 자기교육’으로 넘어가고자 한다. 앞선 자기이해와 자기탐구를 바탕으로 이제는 나의 자아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해야할 것이 무엇이 있을지 지극히 현실적인 나의 고민과 이야기를 하고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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