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서 날 잡으러 온 저승사자, 한포진
출산 후 4개월쯤 되던 어느 날, 서류를 떼러 간 주민센터에서.
본인 인증을 하려고 엄지손가락을 기계에 갖다 댔는데 지문 인식이 되지 않았다. 손가락 각도를 조금씩 바꿔 보고, 문질러도 보고, 몇 번이나 애먼 입김만 후후 불어봤지만 끝내 실패했다.
집에 돌아와 보니 엄지손가락에 작은 기포가 두 개. 깨소금만 한 크기로 돋아 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모기 물린 듯 간지러워지더니 긁을수록 부풀고 번져 갔다. 호은이를 데리고 병원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아, 사진을 찍어 맘카페에 올려 정체를 물었다. 혹시나 비슷한 경험이 있는 엄마들이 낫는 법도 알려주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한포진인 것 같아요… 빨리 병원 가보세요…
대상포진은 들어봤지만 한포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걱정 가득한 댓글 아래로 비슷하게 "..."이 많은 댓글들.
'왜 이렇게 걱정하지?' 했는데, 지나 보니 알게 되었다.
지옥에서 온 저승사자 같은 병.
한두 시간에 한 번씩 갈아주는 기저귀가 손 끝에 스치기라도 하면 사포에 손이 사정없이 베이는 듯했다.
기포는 온 손가락에 번지다 못해 발가락까지 퍼졌다. 진피가 한 겹 두 겹 벗겨지더니 폭발 직전의 용암지대처럼 엄지발가락이 갈라졌다. 외출할 때 양말을 신으면 피와 진물이 안쪽에 말라붙어, 벗을 때마다 뜯겨나갔다. 피부와 양말이 한 덩어리가 되어.
좀처럼 낫질 않아 다녔던 병원만 네 군데.
늘 원인은 같았다. "피곤해서. 아기를 낳고 호르몬이 변하고 면역력이 떨어져서".
처방은 “잠을 잘 자야 한다, 물을 최대한 쓰지 말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말뿐.
1년 동안은 모유수유를 하고 싶었던 나는 스테로이드 처방을 받을 수가 없었다.
매일 자기 전 1시간씩. 한포진 퇴마의식처럼 약을 먹고, 바르고, 거즈를 둘렀다. 몇 달을 그렇게 지냈지만 기포는 손톱 아래로 파고들며 조갑박리증까지 생겼다.
하루 종일 열 개 손끝이 화상 입은 듯 뜨겁고, 전기 고문받는 듯 찌릿했다. 온 신경을 빨아 삼키며 영혼이 손끝으로 흘러나가는 기분이었다.
나부터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모유수유를 끊기로 했다.
파워 J라 계획을 세우면 좀처럼 바꾸지 못한다.
단유를 하겠다 마음을 먹었지만, 1년을 채우고 싶은 미련이 공존했다.
호은이가 분유를 오랫동안 거부해서 내 스테로이드 처방도 차일피일 미루어졌다.
혼자는 단유가 어려워서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했다. 소아과에 접종하러 갔을 때 단유 고민을 꺼냈다.
선생님이 우리를 번갈아 한 번씩 보더니,
"지금껏 했는데 뭐 하러 단유 해요? 모유가 아이한테 좋잖아. 웬만하면 계속하세요"
요즘 엄마들은 아이보다 자기 몸부터 챙기려 한다는 둥 구시렁댔다. 그 눈빛과 말투에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양손을 펼쳐 들이대며 말했다.
제가 손이 이모양이라서요
신발도 벗어 발가락도 보여드리고 싶은 걸 참을 수 있었던 건 손만 보고도 선생님이 "헉" 놀라며 단유 방법을 알려주셨기 때문에.
단 3일. 스테로이드 주사와 약으로 말끔하게 가라앉았다. 엑스맨의 울버린처럼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이 실시간으로 보이는 듯했다가도 며칠만 쉬면 다시 돋아났다.
첫 아이라 잘하고 싶다는 마음에 매일 쫓기듯 살았다. 나의 부족함이 아이의 운명을 흔들까 두려워, 걱정을 키우다 못해 스스로를 미로에 가두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스테로이드로도 고쳐지지 않던 한포진이 회사에 복직 후에야 서서히 사라졌다.
아이와의 분리가 필요했었던 것 같다.
육아를 하다 보면 출산 후유증이 각자 다르게 찾아온다.
나는 한포진이었고, 친구 란이는 온몸에 닭살이 돋듯 피부가 거칠어져 밤마다 살이 벗겨질 때까지 긁는다고 했다. 아이가 10살이 된 지금까지도.
또 은희는 샤워하는데 누군가의 가발이 발밑에 둥둥 떠있어서 놀랐는데, 알고 보니 한 움큼 빠진 자기 머리카락이 뭉쳐진 거였다고. 원형탈모로 숭덩숭덩 생긴 구멍에 매달 주사를 맞으러 다닌다.
난청이 온 친구도 있다. 오른쪽에서 부르면 왼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왼쪽 귀로만 들리니 내가 왼쪽에서 부른 줄 알았다며 멋쩍게 웃으며 얘기하는데, 그 얘길 양쪽 귀로 들은 나는 웃을 수 없었다. 그 친구 아기는 9살이다.
마음이 무너지는 경우도 많다.
언니가 산후 조리원에서 퇴소 절차를 밟는데 언니 옆에 있던 산모는 내내 울고 있었다. 포대기에 아이를 싸안고 나가면서도 주룩주룩 비 오듯 눈물을 쏟던 모습을 잊지 못한다.
춤추는 걸 좋아하는 경이는 먼 회사를 다니는 남편 때문에 평일은 매일 독박이란다. 어느 날부터 무기력증이 찾아와 멍 때리는 일이 많아지고 춤도 끊었다.
이럴 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계속 아이와 집에만 있다면?
멈춰있는 시공간에 갇혀 우울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걸 막을 수 없다. 그러다 보면 스스로를 아끼고 존중하지 못하는 자신을 원망하다가 자존감이 바닥을 친다.
나는 내가 챙겨야 하더라.
힘들 땐 잠깐 도피해도 된다.
엄마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복직 후 손이 깨끗해진 것처럼 한 발짝 떨어져 육아를 바라볼 필요도 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기와 더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한발짝 떨어져서 보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출산 후 2년이 지난 지금도, 잠이 부족하면 손끝에 바로 신호가 온다. 근본적인 치료는 아니었기에, 나는 여전히 그것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