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도 짧았던 코로나 격리, 그리고 일상으로의 복귀
길고도 짧은 격리기간이 끝나간다.
내일이면 나는 공식적으로 코로나를 다 앓고 난 사람이 된다.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백이진 대사를 빌리자면
조금 세게 아팠고, 금방 일어났다.
약을 먹은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날 정도인데
오랜만에 타이레놀도 먹었고,
아껴먹던 배달음식도 마음껏 시켜먹고,
오늘은 주간육아 이윤선을 구독했다.
그동안 못 쉬었으면 뭐 얼마나 못 쉬었다고
이번 격리기간동안 미친듯이 누워서 주구장창 빈둥댔다.
화장실 외에는 방에서 나가지도 못하니 밥 먹을 때 외에는 허리를 펼 수 있는 게 바로
눕는 것 뿐이었기도 하고, 꽤 열도 나고 땀도 나서이기도 했다.
아무도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거 계절독감이라 하기엔, 너무 아프잖아.
쉬는 내내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 흠뻑 빠져있던 나는
결국 김태리 덕질을 시작했고 끝내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 안착했다.
지금은 오디오에 블루투스를 연결해서 <리틀 포레스트> OST를 틀어놓고 글을 적고 있다.
이 영화를 왜 이제야 봤을까? 아니, 모든 것에는 때가 있고 이유가 있나니.
그동안 아껴놓고 오늘 본 나를 칭찬하고 싶다.
내가 앓아누운 시점이 세상이 바뀌고 난 직후여서 그랬는지,
그동안 고생한 게 좀 억울했던 것인지,
드라마를 보면서도, 영화를 보면서도 눈물이 왈칵왈칵 쏟아졌다.
내가 몸은 돌봤어도 마음까지 어루만지지는 못 했었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쉬는동안 다른 고양이들은 다행히 나와 거리를 유지했지만
영원한 엄마 껌딱지, 나의 첫 룸메이트 마리는 격리기간 내내 처음부터 끝까지 내 곁을 지켰다.
마리가 나를 볼 수 없어서 우울증에 걸리는 건 도저히 (서로) 못 견디겠어서
어쩔 수 없이 내린 선택이었다.
덕분에 나는 방 안에서도 내내 마스크를 쓰고, 자면서도 마스크를 쓰게 되었다.
(그래서 더 일찍 나았나? 싶기도 하고.)
마리가 이렇게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이번에 더욱 알게 되었다.
지금도 마리는 내가 쌓아둔 옷 더미 위에서
몸을 동그랗게 말고 새근새근 자고 있다.
이제 곧 출근을 해야될텐데. 나 없는 시간을 이 친구가 과연 잘 보낼 수 있을까?
벌써부터 걱정이다.
재택근무가 가능한 직종을 알아봐야 하는 건가.
내가 화장실에 가면 화장실에,
옷방에 가면 옷방에,
부엌에 가면 부엌에
마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우리 마리.
네가 강아지였다면 데리고 출근했을지도 몰라.
좀 덜 예민한 고양이였으면 또 몰라, 데리고 갈 수 있었을까?
마리는 지금 여섯살에서 일곱살로 접어들었다.
앞으로 10년 그리고 좀 더, 우리에겐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때도 이렇게 내 옆에 꼭 붙어있어주면 좋겠다.
내가 회복을 해서 기운이 생기기 시작하니
지선이, 고찬이, 백호도 나를 반겨준다.
백호는 지금 거실에서 글을 쓰고 있는 나와 정면으로 앉은 채 졸고 있다.
지선이는 어제 오랜만에 감은 내 머리카락 냄새를 흠뻑 맡으며 손수 솜방망이로 쥐어뜯어줬고,
고찬이는 자꾸만 내 방을 들락날락 거렸다.
모두 나를 사랑해주는구나.
쉬는 내내 배달음식으로 연명했던 나는
이제 설거지도 직접 하고, 빨래도 하고, 음식도 해먹을 수 있을 정도로
기력이 회복이 되었다.
그동안 밖으로 새어나가기만 했던 나의 에너지가
바닥부터 천천히 채워지는 느낌이 든다.
그 느낌을 알아챌 수 있었던 데는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역할이 아주 컸다.
격리 기간 내내 꼭 붙어있던, 내가 잊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은 나의 단짝친구들.
관심을 주고, 의지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그렇게 솔직하게 드러냈던 게 언제적이었을까.
이야기의 힘을, 이렇게 느린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받아들인 게 과연 얼마만의 일일까.
미루고 미루다 오늘에야 보게 된 <리틀 포레스트> 속 송혜원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어쩔 수 없이 하게되는, 귀찮기도 하지만 사실은 좋아하는 두 가지, 농사와 요리.
그걸 그 아늑한 시골집에서, 친구들과 같이 할 수 있었던 혜원이 참 부럽다.
나는 매년 운 좋게 구청에서 운영하는 텃밭에 당첨되어 농사를 짓는 도시농부인데,
힘들다 하면서도 이걸 해마다 하게 되는 걸 보면 나도 참 농사가 체질에 맞는 게 아닌가 싶다. (생계를 위한 거 말고)
생각해보면, 대학때 했던 무슨 성격 유형 검사에서 나온 가장 잘 맞는 직업이 예술가와 농부였다.
결국 사람은 태어난 이유가 있고, 그 이유를 찾아가거나, 받아들이는 과정이 삶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도 언젠가 내가 좋아하고 잘 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수 있을까? 아니, 그 일을 하면서 과연 행복할까?
인생에는 답이 없다는 걸
두 드라마와 영화를 보며 잔잔하게 느낀다.
그게 그렇게 안타까운 일은 아니라는 것도.
그런 생각이 내 체질에 맞는다는 것도.
아무리 아등바등 살고 멋지게 답을 찾아가면서 살아보려고 해도,
결국 돌아오는 곳, 위로받는 곳은 혜원의 시골집 같은 따스함이다.
남들과 다르면 뭐 어때. 나는 이렇게 살려고 태어난 건데.
그렇다고 돈을 벌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고,
성공하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나는 다른 이들과 나를 비교하지 않기로 했다.
그것이 언제가 됐든, 나는 나의 길을 가겠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많이 하고, 싫은 일에는 덜 스트레스 받으며,
그런 힘을 기르고, 그런 생각을 많이 만들어서, 그런 마음을 많이 가져야지.
지금 거실에 가득 들어오는 햇살처럼,
내 안에 빛이 가득한 생각만을 하기로 한다.
격리 기간동안 나를 도와준 모든 존재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그 고마움을 갚기 위해 나는 어제보다 오늘 좀 더 심호흡을 하고,
오늘보다 내일 더 나와 친해지겠다.
기가 죽을 땐 기지개를 켜고, 힘이 떨어질 땐 몸을 움직여 에너지를 재충전하겠다.
좀 더 정성들인 요리를 하고, 해야하는 일들을 가지런히 해내보겠다.
올해는, 가지런하고 단정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런 일상을 보내야겠다.
한 해가 바뀌고, 입춘이 지났는데도
계획을 세울 틈도 없이 바쁘게 살던 나에게
하늘이 내려준 쪼금 댓가가 있는 휴가동안 얻은 깨달음이자, 올해의 목표이다.
- 격리해제를 맞이하는 어느 오후. -